주간동아 706

2009.10.13

화장을 하는 고향의 가을 그냥 네가 참 좋아!

황금빛 추석에 떠나는 가족여행

  • 채지형 여행작가 www.traveldesigner.co.kr

    입력2009-10-07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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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을 하는 고향의 가을 그냥 네가 참 좋아!

    <B>1, 2</B> 꽃무릇이 한창인 선운사.

    추석은 황금이다. 눈부시게 찬란한 황금빛 들판이 그렇고, 오랜만에 손을 붙잡는 가족과의 시간이 그렇다. 추석은 감이다. 동네 어귀를 돌면, 부끄러운 새색시처럼 감나무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햇살을 받은 감나무는 얼마나 그 빛이 아름다운지. 진한 갈색 톤의 몸통과 예쁜 감색이 어우러져 추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올해 추석연휴는 겨우 2박3일. 기간도 짧고 신종플루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여행에는 왠지 마음이 안 간다.

    이번 추석에는 무심코 흘려보냈던 우리 고향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풍경들에 눈을 돌려보자. 모처럼 가족들과 손잡고 편안한 나들이를 해보는 건 어떨까. 밤처럼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아이들, 그윽한 눈으로 가족을 기다리시는 부모님,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떠나는 근교 여행은 황금빛 추석연휴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이다.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꽃구경

    가을이 시작되면 남도의 절집들은 하나둘씩 붉은 옷을 입는다. 그중에서도 전남 고창군에 있는 선운사는 애틋한 마음의 상사화로 뒤덮인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달려 있을 때는 꽃이 없는 상사화. 상사화라는 이름은 꽃과 잎이 서로를 간절하게 그리워해서 붙여진 것이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상사화 군락지가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화려하게 펼쳐진다.

    상사화의 진한 붉은빛은 너무도 매혹적이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을의 선운사에서는 꽃무릇이 가장 유명한 스타지만, 선운사는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고창의 유서 깊은 전통사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 선운사의 말사인 도솔암은 기도의 효험이 높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이 찾는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3.2km 정도.



    꽃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상사화를 바라보며 시어머니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다 보면, 함께하는 행복이 마음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산 좋아하는 가족이라면 조무락골

    경기도 가평군 석룡산과 조무락골.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추석을 보내는 이들에게 2박3일은 짧지 않다. 이 중 딱 하루만 시간을 내서 가평군 석룡산과 조무락골에 가보자. 멀지 않은 곳에 원시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가평군청에서 조무락골에 들어가는 길은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드라이브 코스. 조붓한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져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차를 타고 즐기는 삼림욕이라고나 할까.

    75번 국도를 따라가다 용수목 마을 38교라는 다리가 나오면 그곳에 차를 두고 조무락골에 오르기 시작한다. 조무락은 산새들이 재잘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름만큼이나 산길도 경쾌하다. 오르다 보면 복호동 폭포가 나온다. 높이 30m, 폭 5m의 복호동 폭포는 물줄기가 중간에 한 번 꺾이고 부챗살처럼 퍼져 독특한 모습을 뽐낸다. 또 계곡과 폭포 앞 바위산 구석구석에서 만나게 되는 푸른 이끼는 조무락골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다. 정상까지 오르기 힘들다면 복호동 폭포에서 2km 정도까지만 산책해도 좋다. 경사가 완만해 가족과 가볍게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화장을 하는 고향의 가을 그냥 네가 참 좋아!

    <B>3</B> 석룡산을 내려오는 사람들. <B>4</B> 융단처럼 이끼 낀 조무락골의 바위들. <B>5</B>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B>6</B> 현충사 진입로의 호젓한 은행나무길.

    오랜만에 가족과 케이블카를!

    경상남도가 고향이라면 통영에 들러서 케이블카를 타보는 것은 어떨까. 미륵산에 있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의 길이는 1975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입구에서 출발해 10분이면 정상에 닿는데, 여기에서 한려수도 풍경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통영의 8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보석 같은 풍광이다.

    일단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미륵산 자락과 통영시내 강구안, 남망산 공원,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와 답답했던 마음이 절로 후련해진다. 멀리 바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미륵산 아래 다랑이 논도 찾아봐야 한다. 추석 음식 준비로 스트레스가 쌓였다면, 또는 가족들에게 서운한 게 있었다면 함께 미륵산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 뒤에는 근처의 전혁림 미술관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아름다운 통영을 담은 작품들이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아이들이 있다면 추천할 만한 곳이 ‘동피랑’ 마을이다. 강구안의 중앙시장 뒤쪽에 있는 달동네인데, 알록달록한 벽화가 재미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즐거운 그림들, 빼꼼 얼굴을 내미는 길 고양이들, 통영 사투리를 배울 수 있는 아기자기한 간판들에 눈길을 주며 걷다 보면, 잠시 멈춰 있던 동심과 상상력을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향수 찾아 떠나는 정선 운탄길

    강원도 정선에 있는 운탄길은 1960∼70년대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다. 몇 해 전, 운탄길은 트레킹 코스로 개발돼 걷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운탄길이 인기가 높은 이유는 풍경 때문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 침엽수림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게다가 경사가 심하지 않아 트레킹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자연도 좋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폐광 흔적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석탄 알갱이가 흩어진 땅에서 생명의 싹을 틔우는 나무들을 보면 그들의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운탄길 중에서도 정선 고한과 영동 상동을 잇는 화절령길이 특히 아름답다. 온갖 야생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절령 사거리를 지나면 맑은 도롱이 연못이 나온다. 지하탄광이 무너지면서 땅이 꺼지고 지하수가 올라와 생긴 연못이다. 도롱이못 주변은 수수한 이름과 달리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호젓한 아산 송곡리 은행나무 가로수길

    충남 아산 송곡리 가로수길에는 아직 진한 황금빛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터널을 이룰 정도로 웅장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들은 그 색에 상관없이 황홀함을 안겨준다. ‘송곡리 은행나무길’로 불리는 이 길은 송곡리에서 충무공의 얼이 서린 현충사 진입로까지 약 1.2km에 걸쳐 이어진다. 은행나무 길 옆에는 새로 만들어진 도로가 있지만 옛 도로를 이용해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이 더 많다.

    2000년과 2001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에 선정된 이 길의 묘미는 속도를 늦출 때 맛볼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손을 잡고 서로의 마음에 다가가보자. 송곡리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2009년 추석의 잊지 못할, 잔잔한 추억을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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