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 문무대왕수중릉.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데다, 각각 특징이 있어 다양한 해돋이를 경험할 수 있다. 해돋이의 일번지 동해에서는 검푸른 바다 위로 장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남해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고요한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으며, 일부이기는 하지만 서해에서는 거친 갯벌 위로 뜨겁게 떠오르는 해돋이를 경험할 수 있다.
한 해를 갈무리하는 지금, 술 한 잔보다 더 가슴을 채워주는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은 어떨까. 위로와 용기가 솟구치는 해돋이 명소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갯벌 위로 떠오르는 태양, 서해 해돋이
해넘이는 몰라도 해돋이를 서해에서 볼 수 있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정말 그렇다. 이미 많이 알려진 당진의 왜목마을도 있지만 서천의 마량포구야말로 서해의 해돋이를 멋지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서해의 매력이 듬뿍 담긴 마량포구는 수려한 풍광과, 해가 떠오르면서 거친 갯벌 위에 퍼지는 황금빛이 특별하다.
마량포구에서 해돋이를 감상하기 좋은 시기는 12월 중순에서 2월 중순까지. 이 시기에는 태양이 남쪽으로 많이 이동한 터라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시기에는 육지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만난다.
마량포구가 해돋이 명소가 된 것은 순전히 지형 때문이다. 육지에서 툭 튀어나와 반도처럼 길게 늘어져 동쪽으로나 서쪽으로나 바다를 끼고 있는 형상이라 해돋이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것. 이 같은 지형적 이점을 지닌 것은 당진의 왜목마을도 마찬가지다.
서해의 갯벌은 생명의 보고다. 이 갯벌을 터전 삼아 마량리 사람들은 지금까지 삶을 의지해왔다. 마량포구에서 보는 해돋이는 바로 이들의 삶과 같이한다. 마량포구 해돋이에는 장엄한 해를 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면 어디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을까. 마량리 해돋이마을에 있는 방파제와 서천 해양박물관 입구 해안도로가 포인트. 마량포구에 갈 생각이라면 꼭 기억해두자.
화려한 동해 해돋이는 옵바위에서
마량포구에서 진한 여운을 남기는 해돋이를 만날 수 있다면 동해에선 화려한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동해 최북단인 고성에 가면 공현진 해변이 나온다. 간성읍에서 택시로 기본요금 안팎이면 닿는 거리다. 이곳에는 바다 위로 솟아오른 옵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배경으로 한 해돋이가 일품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작은 배가 지나가고, 바위에서 거친 파도에 맞서며 낚시를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새벽을 깨운다. 바위 사이로 태양에 일렁이는 수면을 보고 있으면 시력마저 앗아가버릴 것 같다.
편안하게 해돋이를 즐기고 싶다면 해변 바로 앞에 있는 옵바위모텔에 숙박하길. 바다로 향한 커다란 창을 열면 눈앞에 푸른 물결이 펼쳐진다. 눈뜨자마자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최고의 명당자리인 셈이다.
1 서천 마량포구 해돋이.2 고성군 공현진해변 옵바위. 3 울산 방어진항 슬도등대. 4 남해 금산 보리암.
고성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울산의 방어진항이 나온다. 울산 제일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간절곶이지만, 좀더 호젓한 곳으로 들어가보자. 방어진항 안쪽에 있는 슬도등대가 그곳이다. 다른 등대에 비해 초라하고 작은 무인등대지만 남부럽지 않은 해돋이를 보여준다.
등대가 있는 슬도는 1990년대 말에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섬 아닌 섬이 됐다. 이 섬에 등대가 들어선 것은 1958년. 이후 등대는 방어진항을 찾는 수많은 어선의 길잡이가 됐다. 찾는 이가 드문 만큼 갈매기와 낚시꾼, 마을사람들이 외로운 등대의 친구가 된다. 바로 옆 방어진항의 활기찬 모습에 비하면 정적인 풍경이 발길을 잡는다.
방어진항에서 나와 조금 더 내려가면 경주시에 속한 감포읍 봉길해변이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아는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곳이다. 수많은 사진가에게 각광을 받는 곳이 바로 이 해변이다. 이곳의 해돋이는 해무가 있어 특별하다. 문무대왕 수중릉 주변으로 스며드는 해무는 해돋이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 웅장한 풍경을 선사한다. 해무 사이로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이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희망의 바다로 보인다.
삶이 느껴지는 남해 해돋이
남해의 대표적인 해돋이 명소는 금산 보리암이다. 금산의 기암절벽에 지어진 보리암은 68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낙산 홍련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 중 하나다. 이곳에서 해돋이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정상 부근의 금산산장 가는 길에 있는 제석봉, 관음봉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훌륭하다.
보리암과 함께 유명한 해돋이 명소로 여수의 향일암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매년 이 시기에 많은 관람객이 몰리기 때문에 호젓하게 감상하긴 힘들다. 그래서 향일암에 가기 전에 만나는 돌산의 무슬목을 추천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전승지다. 현지에선 동백골로 부르는 몽돌로 이뤄진 작은 해변이다. 무슬목 해돋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해변 바로 앞에 있는 형제섬과 몽돌해변이다. 안개에 싸인 몽돌해변과 몽돌 사이를 오가는 파도에 눈길을 주다 보면 마음이 절로 차분해진다.
고요함으로 따지자면 장흥의 남포마을 소등섬 해돋이도 빼놓을 수 없다. 남포마을 입구에는 정남진과 함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주요 무대였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다.
한겨울 남포마을의 특산물인 자연산 굴 구이로 배를 채우고 겨울밤을 보내고 나면 소등섬 뒤로 솟는 고운 빛깔의 해돋이를 맞이하게 된다. 제방 앞으로 작은 어선들이 갯벌 위에 무심하게 자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촌의 소박한 풍경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곳곳에 설치된 비닐하우스에선 굴 더미와 새벽부터 굴을 손질하는 부지런한 아낙네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자는 해돋이로 한 해를 시작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이미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부지런한 정도를 따진다면 그들이 첫 번째다. 후덕한 동네 인심을 뒤로하고 떠나는 여행자에게 소등섬 해돋이는 마음을 다독여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애착까지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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