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미르코 멘카치와 친구들이 함께 만든 ‘동화극’은 이 영화의 백미다.
크리스티아노 보르토네 감독의 ‘천국의 속삭임’은 소박한 힐링 시네마(healing cinema·치료효과가 있는 영화)인 동시에, 소리라는 실로 직조한 한 편의 ‘음향시’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보다 더 관능적인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각사각 되살아나와 귀를 간질이는 ‘사운드 파라디소’의 황홀한 천국이 느껴진다.
축구를 좋아하고 동네 아이들과 장난치기 좋아하는 여덟 살 소년 미르코 멘카치는 어느 날 엽총 사고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자상한 부모의 사랑 속에 영화 보는 것이 낙이던 소년은 꺼져가는 시력 때문에 정규교육마저 포기해야 한다. 당시 법은 시각장애 어린이는 부모와 격리된 채 특수학교에서 공부하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희미하게나마 시력이 남아 있는 소년은 시각장애 친구들에게 “파랑은 자전거를 탈 때 네 얼굴을 스치는 바람 같은 색” “갈색은 나무의 거친 질감 그 자체” “빨강은 불처럼 뜨겁고 하늘의 노을처럼 따뜻하다”고 말해준다. 잃어버린 시각을 다른 감각을 빌려 재현하는 이런 비유는 스크린 가득 시적인 감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희미한 시력조차 마침내 사라져버리고, 미르코는 어둠의 감옥에 갇힌 수인 신세가 된다. 벽에 붙은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스위치가 고장 났을 거라고 여기는 미르코의 얼굴 클로즈업 장면은 관객의 마음에도 슬픔의 비가 내리게 한다.
어느 날 미르코는 수업을 담당한 줄리오 신부에게서 결정적인 영감을 얻는다.
“음악을 연주할 때 왜 눈을 감는지 아니? 소리를 더 깊게 느끼기 위해서야. 음악은 모습을 바꾸지. 점점 더 커지고 강력해져.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너에겐 오감이 있어. 그런데 왜 한 가지만 사용하니?”
이제 미르코는 소리로 구현하는 시네마 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세상을 탐험한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바람을 찾아, 새의 소리를 찾아 만물의 소리를 채집하고 칵테일하는 것이다. 미르코와 친구들이 표현하는 ‘동화극’은 단연코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차라리 눈을 감고 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샤워기를 통해 흐르는 물은 대지를 적시는 빗물이 되고, 파이프 관에 불어넣는 호흡은 바람이 되어 스크린을 적신다. 학부모들이 모두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미르코의 ‘사운드 시네마’를 듣는 장면은 소리의 성찬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크리스티아노 보르토네는 미르코의 동화극에 빛보다 눈부신 소리의 옷을 입힌다.
이 영화의 주인공 미르코 멘카치는 1975년 이탈리아 정부가 장애인도 일반인과 함께 학교 다니고 교육받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부모와 헤어져 지내야 했다. 열여섯 살에 고향에 돌아온 그는 마르고 닳도록 소리를 채집하고 탐구한 끝에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음향감독이 됐다.
그는 페르잔 오즈페텍 감독의 ‘창문을 마주보며’, 마르코 튤리오 지오르다나 감독의 ‘베스트 오브 유스’에서 음향감독으로 활약했다. 현재는 토스카나에 자리할 이탈리아 최초의 사운드재단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영화화한 ‘천국의 속삭임’의 음향감독이 됐다. 멋지지 않은가. 음향에 미쳐 빛보다 찬란한 음향의 세계를 탐험하다 결국은 음향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미르코 멘카치의 용기가.
‘천국의 속삭임’을 희망의 눈을 가리고 어둠의 감옥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벽장 뒷문 너머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가 변용되는 공상과학 영화는 수없이 많았지만 ‘천국의 속삭임’은 윙윙거리는 에어컨 소리가 자장가가 되고, 거센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힘찬 노크 소리가 되는 드물지만 특별한 청각적 상상력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할 것이다. 그 소리의 향연으로 ‘천국의 속삭임’은 어둠의 빛을 밝힌다. 자연 속에 숨겨진, 빛보다 환한 소리라는 또 다른 신의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