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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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블루칼라 프로게이머 닮았다

젊은이들 컴퓨터게임 등 통해 정보사회 생산 준비 … 기술이 예술, 상상력이 생산력인 시대 곧 도래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입력2006-12-11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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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블루칼라 프로게이머 닮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월드사이버게임스’에서 프로게이머 서지훈 선수와 일반인이 컴퓨터게임을 하는 동안 뇌 운동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활성화되는 뇌 부분이 서로 달랐다(좌).<br>PC방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청소년들(우).

    전편의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프로게이머의 뇌가 일반인의 뇌와 다른 전문가 뇌 특유의 활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은 (…) 프로게이머 서지훈(CJ) 선수와 일반인이 게임을 할 때 뇌의 활동을 비교했다.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두 사람의 뇌를 찍은 결과 일반인은 시각을 통제하는 부분만 사용했지만 서지훈은 추리,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기억, 본능을 맡는 대뇌변연계의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인이 화면의 움직임을 보며 결정을 내린 반면, 서지훈은 비서가 타자를 치듯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린 것을 뜻한다고 프로그램은 결론을 내렸다.”(연합뉴스 2006. 10.27)

    미래 블루칼라 프로게이머 닮았다

    젊은 세대는 게임에 몰두하며 자신도 모르는 채 디지털 블루칼라로 뇌를 변형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프로게이머가 일반인보다 진화한 신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인은 게임을 할 때 “시각을 통제하는 부분만 사용”한다. 이것은 그들의 것이 ‘시각적 지각’임을 의미한다. 반면 프로그래머는 “타자를 치듯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촉각적 지각’이다. 미디어가 현대인의 지각을 시각적인 것에서 촉각적인 것으로 바꾸어놓고 있다는 벤야민과 맥루언의 진단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이에 대해 어떤 전문가는 “일반인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갖고 반응하는 반면, 프로게이머 같은 전문가는 축적된 기억과 경험을 근거로 전체적인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 분야의 일을 할 때는 두뇌 사용이 일반인과 다를 것이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인간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에 따라 그때그때 자신의 신체를 진화시켜 왔다.

    디지털 블루칼라



    문자가 등장했을 때 인간의 의식구조가 완전히 새로워진 것처럼, 신체구조나 정신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미디어와 더불어 소통의 패러다임이 변할 때 특히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금 한국의 프로게이머 두뇌 속에서 일어난 일은 이 순간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머릿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게임을 통해 젊은 세대는 미래의 생산계급이 될 준비를 한다. 미래의 블루칼라는 아마도 오늘날의 프로게이머를 닮아 있을 것이다.

    미래 블루칼라 프로게이머 닮았다

    미래산업은 ‘꿈꾸는 기술’의 총체로서 노동의 유희화가 실현될 것이다.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직접적인 물자 생산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에 종사하는 사회를 흔히 ‘정보사회’라 부른다. 한국은 이미 정보사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 신체의 개조가 군대식 훈육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갈 때 신체의 개조는 놀이 형태로 이뤄진다. 게임에 몰두하는 젊은 세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디지털 블루칼라로 제 신체를 변형시키고 있는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는 인구의 90%를 차지하던 농민계급을 해체해버렸다. 오늘날 한국인 전체가 먹는 식량은 채 10%가 안 되는 농민에 의해 생산된다. 산업노동자도 과거의 농민과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과거의 농민이 대거 상경해 산업노동자로 존재를 이전한 것처럼, 오늘날 산업노동자는 머지않아 헤드 세트를 쓰고 모니터 앞에 앉아 고객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정보노동자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PC방은 디지털 시대의 서울역이다.

    생산의 비(非)물질화

    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력의 상당수는 공장에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사무노동에 종사하는 수가 대폭 늘어나면, 사무직 노동자들이 과거에 누렸던 특권적 지위도 당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화이트칼라의 블루칼라화가 진행된다. 반면 대다수가 몰락할 때 살아남은 소수의 농민이 농업 경영인이 되듯, 대다수의 몰락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산업노동자는 기계관리인과 같은 전문적 지위를 누릴 것이다.

    농경사회였던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온 기계로 물건을 찍어냄으로써 산업사회로 이행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산업화가 되면 간단한 기계는 직접 생산하고 첨단기계는 수입해 쓰게 된다. 거기서 더 발전하면 라이선스를 얻어 첨단기계를 직접 생산한다. 이때 핵심부품은 여전히 발달한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발전한 사회는 기계의 제작조차 다른 나라에 떠넘기고 기계를 디자인하는 쪽으로 특화해 나간다.

    얼마 전 삼성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제조업체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는 물건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 생산에 대한 관념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미래의 생산은 제품의 생산이 아니라 정보와 지식의 생산이다. 그런 시대에는 실제로 ‘연구와 개발(R·D)’이라는 정신적 노동이 가장 중요한 생산 형태가 될 것이다. 직접 제품을 만드는 것은 경우에 따라선 중소기업이나 다른 나라에 맡길 수도 있다.

    노동의 정신화

    빌 게이츠가 생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무게가 전혀 나가지 않는다. 흔히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을 미래형 산업의 세 분야로 꼽는다. 이 세 분야의 공통점은 물질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생산이 비물질성(immateriality)을 띨 때, 노동 역시 무게를 잃고 정신화한다. 삼성에서는 2010년까지 3만명의 연구인력을 갖출 것이라 하고(연합뉴스 2005. 11.8), LG에서도 향후 2년간 현재의 1만9000명 수준인 연구인력을 2만4000명까지 확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것은 생산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연구와 생산의 경계가 사라져 연구가 생산이 되고 있다. 하나의 기업 집단에 2만명에서 3만명에 이르는 연구인력이 근무한다. 규모만 봐도 이들이 과거의 ‘연구자’가 아니라 사실상 ‘생산자’의 위상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앞으로 생산자 그룹에서 상위를 차지할 것이고, 앞으로 한 사회의 발전 정도는 노동인구 중에서 이들 연구인력이 차지하는 양적 비율과 질적 수준으로 측정될 것이다.

    생산의 성격이 변화하면 신체 프로젝트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한국 젊은이들의 신체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는 모양이다. 모 글로벌기업 R·D 센터장의 지적이다. “한국의 경우 대학원생이라고 해도 미국 학부생보다 못하다. 한국에 R·D 체질을 확립하는 것이 정말 시급하다.”(아이뉴스24 2006. 11.2) 한마디로 정보화 시대에 걸맞도록 신체의 개조가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체질’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꿈꾸는 기술

    ‘R·D’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각 대학에서 공대생의 비율을 많이 늘린 모양이다. 전체 졸업생 중 공대생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3.3%인 반면, 한국에선 이미 27.4~35%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에 이미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이 80%라는 것을 더하여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 R·D 인력의 확충이라는 프로젝트조차 한국에서는 이렇게 70년대식 단순물량의 투입으로 이루어진다.

    한국공학인증원에 따르면 워싱턴 어코드(국제 엔지니어 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다자간 협의체)는 한국을 둘러보고 “한국은 전체 대학 졸업생 중 공대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높아 WA 자격(회원국 인증기구가 인증한 졸업생이 모든 회원국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어렵다”(부산일보 2006. 11.1)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는 물론 R·D 인력을 확충하는 과제가 박정희 시대처럼 기능공을 대량 양성하는 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R·D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박정희식 상상력에 갇히면 학력만 높은 기능공만을 양산하게 된다. ‘기술입국’이라는 표어가 난무하던 70~80년대에 한국은 기능올림픽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휩쓸곤 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당시에 세계의 기술을 선도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기능과 기술은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차이를 부경대 정해용 학장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엔지니어는 인간의 오감을 최고로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 꿈꾸는 과학예술가다.”

    디지털 유리알 유희

    언젠가 ‘디스커버리 채널’을 통해 삼성에서 신제품 개발부서의 팀장으로 설치예술가를 영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글자 그대로의(literal)’ 결합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술과 예술의 융합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미래의 생산은 엔지니어, 아티스트, 인문학자의 삼각 컨소시엄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다. 이 구도 속에서 엔지니어는 기술을 가지고, 아티스트는 상상력, 인문학자는 콘텐츠를 가지고 서로 결합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유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되고 있다. 농경사회의 신체를 산업사회의 신체로 만드는 과정이 군대식 ‘훈련’으로 이루어졌다면, 산업사회의 신체를 정보사회의 신체로 만드는 과정은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컴퓨터게임과 같은 ‘놀이’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정보사회의 육체노동이다. 70년대 기능올림픽의 금메달 수상자는 오늘날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하지만 노동의 유희화가 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21세기의 기술은 과거의 것과 달리 ‘꿈꾸는 기술’이다. 꿈이 기술을 통해 현실이 되면, 기술은 예술이 되고 상상력은 생산력이 된다. ‘꿈꾸는 과학예술가’는 기술과 예술과 인문학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디지털 유리알 유희의 명인이다. 카리스마의 명령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군대식 신체가 아니라, 스스로 발명하고 창안하는 예술적 신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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