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2006.12.12

그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키가 왜 이리 작아

  • 글·사진=이용한 시인

    입력2006-12-11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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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키가 왜 이리 작아

    브뤼셀 그랑플라스 광장의 야경. 장 콕토와 빅토르 위고가 격찬을 아끼지 않았던 광장이다.

    “벨기에에서 유명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벨지안조차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는 그에게서 장시간에 걸쳐 벨기에의 유명한 것들에 대한 지루한 설교를 들어야만 한다. 가령 그는 유럽연합(EU) 본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벨기에가 맥주와 초콜릿의 나라이고 풍차의 원조국이며, 오줌싸개 동상은 물론 축구대표팀 ‘붉은 악마’라든가 설기현이 활약했던 축구클럽 ‘안더레흐트’에 대한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을 것이다.

    만화 ‘스머프’와 ‘플랜더스의 개’를 넘어 샘소나이트와 고디바 초콜릿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갈 때쯤이면 당신은 이야기 꺼낸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벨지안의 자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루벤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색소폰을 발명한 아돌프 색스, 현직 왕 알베르 2세(70)에 대한 자랑까지 늘어놓고서야 ‘아직도 부족해?’ 하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쳐다볼 것이다.

    그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키가 왜 이리 작아

    그랑플라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오줌싸개 동상.

    이 중에서도 벨지안이 빼놓지 않는 것이 현직 왕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입헌군주국인 벨기에의 왕은 현재 알베르 2세인데, 벨기에의 주요 신문과 잡지가 유명 연예인을 앞질러서 왕가의 소식을 전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높다.

    하지만 알베르 2세의 장남이자 왕위계승 서열 1위인 필리프 왕자(45)는 인기가 바닥이다. 여기에는 플랑드르와 왈로니아의 지역 갈등이 한몫을 하고 있는데, 현재의 국왕이 플라망어와 왈론어를 둘 다 능숙하게 구사하는 반면, 왕자는 왈론어밖엔 할 줄 모른다고 한다. 해서 플랑드르 사람들은 그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이참에 대통령제로 정치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서슴지 않고 내놓고 있다.

    외관상으로 벨기에는 평화로운 나라이며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와 갈등이 뒤엉켜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지역 갈등이다. 벨기에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할 때 그들의 지역 갈등과 반목은 우리나라의 영호남 갈등보다 훨씬 심각하다. 노골적으로 플랑드르와 왈로니아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상 벨기에 안에서 두 지역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 속한다. TV방송국도 각각 다르고, 도로 표지판도 서로 다르며 문화적인 행사나 국경일까지도 서로 다르다. 가령 플랑드르 사람이 왈로니아에 가서 길을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알아도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연방 벨기에를 고수하는 까닭은 그러잖아도 작은 나라에서 분열이 일어날 경우에 닥쳐올 위험과 부담 때문이다.



    그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키가 왜 이리 작아

    그랑플라스 광장의 한낮 풍경(좌).브뤼셀 외곽에 자리한 유럽연합 본부 건물(우).

    예부터 벨기에는 유난히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무수한 외침을 견디고 이겨내면서 벨기에는 자연스레 영리하고 슬기로운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스스로 ‘믹스 컬처’라 부르는 벨기에의 문화 또한 주변국과의 차별성에 있지 않고, 다양성과 개방성, 조화와 융합으로부터 왔다. 애당초 나라가 작기 때문에 이들은 안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밖으로 돌려야 했다. 일찌감치 이들의 기업은 글로벌화의 길로 나섰고, 예술가들은 전 세계를 활동 무대로 삼았다.

    EU 재조직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1990년대 말 벨기에의 정치가 파올 헨리 스파크는 ‘강대국에 EU 본부가 들어서면 안 된다’는 정치적 논리로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틈을 비집고 브뤼셀에 EU 본부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대다수 벨지안은 EU 본부가 들어섬으로써 유럽에서의 정치적 발언권이 한층 높아지고,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벨기에는 주변 강대국의 패권 장악을 늘 경계해왔다. 그런 면에서 15개 회원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EU는 벨기에에는 안전판 구실을 하는 것이다. 벨기에가 EU를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 높은 중세 건축물 즐비한 ‘유럽의 수도’

    흔히 유럽에서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유럽의 수도’라고 부른다. 인구 1000만명 정도에 경상남북도만한 크기의 벨기에에서도 브뤼셀은 지리적으로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를 아우르는 서유럽 지역의 중심에 자리해 있고, 이런 지리적 여건으로 일찌감치 금융 중심지 노릇을 해왔다. EU는 물론 NATO 본부와 유럽연합군최고사령부(SHAPE), 베네룩스(Benelux)와 같은 많은 국제기구와 다국적기업의 본부가 자리해 있다. 때문에 브뤼셀은 정체된 듯한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달리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며, 늘 새로운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전통적으로 벨기에는 가톨릭이 국교나 다름없었다. 대다수의 도시도 가톨릭 교회와 종탑,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브뤼셀 또한 시청사가 자리한 그랑플라스(Grand Place) 광장이 그 중심을 이룬다. 오래전 장 콕토와 빅토르 위고가 ‘최고의 광장’이라 격찬했던 바로 그곳이다. 높이 치솟은 종탑이 인상적인 시청사 건물은 수많은 인물상과 장식으로 치장된 고딕식 외관이 아름다워 브뤼셀 최고의 건물로 손꼽힌다. 시청사 건너편에 자리한 메종 뒤 루아(Maison du roi·시립박물관)도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중세 건물이 조명을 받아 빛나는 그랑플라스의 야경은 브뤼셀의 제1경이나 다름없다. 이곳은 밤중에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랑플라스 광장 남쪽에는 유리 천장이 길게 이어진 갤러리 상가가 있고, 이 상가를 중심으로 식당과 기념품 가게, 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벨기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줌싸개 동상은 시청 골목을 따라 곧장 남쪽으로 내려오면 만날 수 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이 동상은 높이가 50cm 정도로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나 작아서 실망스럽다.

    그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키가 왜 이리 작아

    그랑플라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게이 거리.

    그러나 벨지안들이 이 동상을 극진하게 여기는 까닭은 여기에 얽힌 내력 때문이다. 오래전 프랑스가 브뤼셀까지 침입해 시내에 불을 질렀을 때, 한 소년이 오줌을 누어 불을 껐다고 전해진다. 그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 바로 오줌싸개 동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다른 전설도 숱하게 많다. 이 벌거벗은 오줌싸개 소년은 전 세계의 동상 가운데 가장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옷만 600벌이 넘는데, 계속해서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색동옷을 선물로 주었고, 전 세계에서 옷을 입혀달라고 선물을 수시로 보내온다고 한다. 소년의 의상실은 재미있게도 메종 뒤 루아다.

    그랑플라스 북쪽에 자리한 오페라 극장과 대표적인 아르누보(고딕건축의 전통에서 탈피해 벽이나 기둥, 계단을 자유로운 곡선으로 표현했으며 예술적 장식으로 내부를 꾸몄다) 건물인 뮤지컬 박물관(1895년 Saintenoy가 건축), 도심의 동쪽 외곽에 자리한 왕궁과 고대예술박물관, 도심 북쪽 외곽에 자리한 엑스포 광장의 아토미움(Atomium) 상징물도 한 번쯤 둘러볼 만하다. 그랑플라스 동쪽 디자이너 거리 인근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토요시장도 전 세계 인종이 펼치는 다양한 상품전시장과 다름없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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