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1

2006.09.05

‘도박 코리아’ 누구 작품인가

  • 황상민 연세대 교수·인간발달/소비자심리 swhang@yonsei.ac.kr

    입력2006-09-04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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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박 코리아’ 누구 작품인가
    오늘 알았다. 국회 속기록이 심리학 연구, 그중에서도 문제해결 능력과 지능 수준에 관한 연구에서 주요 자료가 된다는 사실을. 다음은 2005년 11월21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속기록 내용이다.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 “카지노나 경마를 모사한 것도 게임이면 게임이지 그걸 사행성 게임이라고 해서 또 다른 개념으로 만드는 것은 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현행처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오락을 허용하되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것만 제대로 규제하고 단속해야 하지….”

    또 다른 야당 의원은 이렇게 거들었다.

    (박형준 의원) “사행성 게임도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게임산업의 한 부분이에요. 건전한 산업만 산업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요. 산업이라는 건 그 안에 건전한 부분도 있고 조금 불건전한 부분도 있고 그런 거예요.”

    이들 말에 따르면 사행성 게임, 즉 카지노와 경마게임은 육성돼야 하는 게임산업의 일부가 된다. 건전한 산업이든 아니든 돈만 벌면 산업이라는 주장은, 요즘 아이들의 표현대로 정말 ‘깬다’. 돈 벌기 위해 마약도 재배하고 위조지폐도 찍어내야 할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여당의 실세인 정동채 의원이 문광부 장관이었을 때 이 모든 도박판이 마련됐다고 한다.



    과천 경마장을 연상케 하는 말 달리는 모습, 횟집을 연상케 하는 바다이야기는 살기 힘들다는 백성의 삶에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와 동시에 건강한 삶의 의지를 빼앗아갔다. 워낙 막가는 세상이라 자극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친절하게도 도박장을 허락하고, 문화상품권을 판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전 대통령 시절에 나온 ‘로또복권’은 희망 없는 국민에게 대박의 꿈을 꾸도록 했다. 이번 정권은 이것도 부족해서 24시간 돌아가는 동네 카지노를 만들었다. 이를 정책 실패라고 한다. 살기 힘든 국민을 위해 동네 카지노로 재미와 희망을 안겨줬는데, 어째서 실패했다는 것일까?

    어느 시절에는 한 사람이 다 해먹는 세상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독재’라고 했다. 그 시절이 지나 몇몇 인간들이 해먹는 세상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부패’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다 해먹는 세상이 됐다. 아니, 다 해먹을 것 같은 꿈을 꾸는 세상이 됐다. 우리는 이를 ‘도박공화국’이라고 한다.

    사행성 게임 허가할 땐 언제고 이젠 ‘정책 실패’라니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이나 길거리 도박장에서 대박을 꿈꾸는 민초나 그 심리는 비슷하다. 여기에 편법과 요행을 비판하는 지식인도 포함된다. 대한민국의 잘났다는 인간 모두 이판사판 도박판의 삶을 산다.

    정권을 앞에 두고 큰 도박을 한 인간은 그래도 ‘잘났다’는 유세라도 할 수 있다. ‘정책적 실패’라고 고상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네 도박판에서 대박을 꿈꾸다 쪽박을 찬 어리석은 영혼은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해야 할까? 믿을 놈 하나 없고 모두 도둑놈이라는 욕도 이제는 진부하다. 과거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를 바로잡겠다는 정권이 전 국민을 폐인으로 만든 국가범죄를 무심히 저지른 역설이 슬프다. 이 범죄 때문에 단죄되는 사람이 누구일지 지켜볼 일이다.

    이제 우리는 정부가 아닌 자신을 믿어야 한다. 안보 자주를 부르짖는 정부를 믿지 말고, 자기 삶의 자주를 찾아야 한다. 국민의 자립과 갱생 의식수준을 높여준 문광부 공무원들이 차라리 고맙다. 우리는 자기 삶의 자주권이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또한 정말 중요한 것과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들 그렇게 원하는 한탕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고 가꾸는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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