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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이웃집 야마다군’

촌철살인 유머의 칼로 일본 사회 전격 해부

촌철살인 유머의 칼로 일본 사회 전격 해부

촌철살인 유머의 칼로 일본 사회 전격 해부
한때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웃집에는 토토로라는 일본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지브리의 이웃에는 종잡을 수 없는 평범함으로 무장한 야마다군이 살고 있다.

예쁘고 탐스런 국화 대신 그 옆에 있는 작은 벌레에 더 신경 쓰는 괴짜 할머니. 오늘도 카레 내일도 카레, 실컷 고민 끝에 모레도 또 카레를 고르는 건망증 심한 엄마. 그리고 아들에게 “밥에다 국을 말아야지, 국에다 밥을 말면 안 된다”며 가장의 권위를 세워보려 하지만, 결국엔 아이들이 남긴 달걀 반쪽과 식은 된장국을 먹고 출근하는 아빠.

야마다네 집 사람들은 모두가 평범한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서 쳇바퀴를 돈다. 하지만 이 집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늘 반복되는 듯한 수레바퀴가 삐끗하는 순간 이제까지 참아온 웃음보가 한꺼번에 터지고 만다.

70~80년대에 학동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그 시절의 한 컷으로 떠오를 만화들을 몇 편씩 가지고 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간 머리 앤’ ‘엄마 찾아 삼 만리’. 그 만화가 일본 것인지 미국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저 ‘세계 명작 동화’라던 TV 만화에 코를 박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 애니메니션 시리즈는 모두 한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이다. 바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하는 그가 한국에서 최초로 회고전을 연다.

日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 그은 작품



‘이웃집 야마다군’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 안에서도, 그리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이력 안에서도 한 획을 긋는 특별한 작품이다. 야마다군 안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서정성이나 ‘빨간 머리 앤’의 서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말 다카하타 감독이 만들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그림체도 색깔도 이전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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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야마다군’

‘이웃집 야마다군’이 나오기 전까지 다카하타 감독이 다룬 가족들은 모두 일본의 과거에 다리를 놓은 회고조의 시선 위에서 탄생했다. 그의 초기 걸작이라 부를 만한 ‘반딧불의 묘’는 패전 직후인 1945년 여름을 바탕으로 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두 남매의 마지막을 눈이 시릴 만큼 어둡고 아름다운 반딧불의 색조로 잡아낸다.

‘추억은 방울방울’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일본의 60년대 모습이 펼쳐진다. 그 시절의 일본은 쑥쑥 커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희망과 낙관에 들떠 있던 수채화의 계절이라 부를 만하다.

‘이웃집 야마다군’은 다카하타 감독의 시선에 의해 처음으로 포착된 현대의 일본 가족이라 더욱 흥미롭다. 90년대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 거실엔 달랑 TV 한 대뿐이고 휴대전화도 아파트도 나오지 않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전후 세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으며 ‘경제적 동물’이라 불리는 일본의 강박도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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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원래 ‘이웃집 야마다군’의 시발점은 일본 아사히신문에 실린 네 컷짜리 만화였다. 그래서 ‘이웃집 야마다군’에는 특별한 이야기 구조나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촌철살인의 유머와 리듬 감각은 이 애니메이션의 미덕이 일본식 ‘하이쿠(3행으로 이뤄진 일본의 짧은 전통시)’에나 있을 법한 ‘간명함’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를 들면, 첫눈이 오자 마당에서 골프 연습을 하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눈발이 흩날리는 TV 속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버지의 제안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가족들을 두고, 아버지는 부스럭부스럭 카메라를 찾아서 TV 위에 세운 뒤, 마당에 나가 찰칵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때 눈발 속에 쓸쓸히 혼자 있는 아버지의 등 위로 ‘그 뒷 모습,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가’라는 하이쿠가 한 줄 뜬다.

가족 간 힘겨루기·무관심·이기심 등 심리묘사 뛰어나

다카하타는 가족 안에 존재하는 가족 심리들, 즉 서로가 서로를 조종하고 싶어하는 마음, 힘 겨루기, 가족임을 방패 삼아 때론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 일상의 한순간을 더없이 세밀하게 포착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으로 주인공들을 감싼다. 비록 아들인 야마다는 아버지가 하자는 캐치볼을 거절하지만, 잠옷 벗는 것을 까먹은 채 교복을 입고, 공부만 하려면 잠이 오는, 라면처럼 풀어지는 작심삼일의 나 같은 놈이라 미워할 수 없다. 막내 노노코를 백화점에 두고 온 가족들의 어이없는 실수에서 실소가 터지지만, 어른 미아들이 발생했다며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꼬마 계집애의 어른스러움 앞에서 아이와 어른의 경계는 사라진다.

일본 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 날을 부드러운 웃음의 칼집에 감춘 ‘이웃집 야마다군’은 어쩌면 다카하타 감독의 인간관과 세계관에 대한 요약이라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점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보다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에 더 정이 간다. ‘원령 공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신화의 세계를 바탕으로 인류의 구원과 자연의 승리를 설파하는 미야자키 감독의 압도적인 스펙터클에 가끔 숨이 막히는 반면, 다카하타 감독의 작품에는 소슬 바람이 불고 봄비가 내리는 어떤 여유와 촉촉함이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이국풍의 상상력 속에서 인간은 붉은 돼지가 되어 비행 활공을 하고(‘붉은 돼지’), 소녀가 노파가 되어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하울의 움직이는 성’), 다카하타 감독의 주인공들은 기껏해야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하늘을 날아오르는 귀여운 부력 외에 더 이상 오버하는 법이 없다.

촌철살인 유머의 칼로 일본 사회 전격 해부

‘반딧불의 묘’

그래서 늘 야구냐, 드라마냐를 놓고 무술 경기를 하듯 리모컨으로 서로의 합을 맞추던 야마다 부부는 막상 결혼식장에 가서는 새로 시작하는 부부들에게 ‘포기’가 중요하다고 말을 건넨다. 어떤 일이 터져도 갈라서거나 확 돌아버리거나 하는 것보다 포기가 낫지 않느냐고. 포기는 용서를 가져오고 용서를 하지 않으면 같이 살 수 없다고. 이것이 바로, 전작에서 스러져가는 인간의 짧은 삶을 반딧불의 혼령으로 형상화하고, 신작 ‘이웃집 야마다군’에서는 ‘이쪽을 봐라, 나도 외로운 가을의 황혼이다’라며 곧 스러질 몸뚱이로 노래를 부르는 귀뚜라미에 자신을 빗대는 다카하타 감독이 관객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충언일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모두 우산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케세라세라 (될 대로 되라)’를 부르는 이 가족이야말로 지브리의 정겨운 이웃들이다. 그래서 ‘이웃집 야마다군’을 보면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극장을 나서게 된다. 일본은 싫은데 왜 지브리는 좋을까? 아, 이 절묘한 야마다의 가족이, 적어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이 일본 가족이 나의 이웃에도 살았으면 싶다.



주간동아 539호 (p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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