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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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네!” 석유공사 대변신

황두열 사장 취임 이후 개혁작업 박차 … 조직 정비, 석유개발 등 ‘돈 버는’ 부서에 선택과 집중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6-05-24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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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띄네!” 석유공사 대변신

    약력<br>。1943년 울산 출생 <br>。부산상고, 부산대 경영학과 <br>。1968년 유공 입사<br>。92년 유공 상무<br>。96년 유공 전무<br>。98년 SK 석유사업부문장(부사장), SK에너지판매 사장<br>。2001년 SK 부회장<br>。2004년 SK 상임고문<br>。2005년 한국석유공사 사장

    2005년 11월10일 한국석유공사 노동조합(위원장 안재숙) 사무실에 ‘낯선’ 손님이 예고도 없이 찾아와 대뜸 “노조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사무실에 있던 노조 관계자들이 의아한 얼굴로 “누구시냐”고 묻자 이 손님은 “새로 사장으로 선임된 황두열입니다. 지금 산업자원부에 임명장을 받으러 가는 길인데 그 전에 노조 임원들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고 인사했다.

    공기업 사장이 취임식도 하기 전에 노조 사무실을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이에 대해 “노조가 사장 취임에 반대한다는 말을 듣고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석유공사 직원의 80% 이상이 노조원인데 노조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조가 오해하고 있다면 그것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이벤트성 혁신 “No” 점진적 혁신 “Yes”

    노조는 이날 황 사장에게 노조가 동의할 때까지 취임식을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황 사장이 다음 날 아침 9시 출근을 강행하자 노조 관계자들이 정문 앞에서 막아섰다. 황 사장은 노조 관계자들에게 “전 직원을 강당에 모아놓고 이들 앞에서 사장과 노조가 허심탄회하게 대화해보자”고 제의했다. 노조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안재숙 위원장은 “임직원 사이에서는 특정 업체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석유공사 사장이 되는 것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석유공사 직원들은 2003년 SK사태 당시 석유공사가 국내 석유 수급 안정을 위해 SK의 원유 수입을 대행해줄 수밖에 없었던,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갖고 있다. 안 위원장은 “이날 황 사장은 특정 업체에 대한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황 사장은 이날 오후 취임식을 할 수 있었다.



    황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여서 그의 석유공사 사장 선임을 둘러싸고 뒷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유업계에서 그는 1968년 유공(현 SK㈜)에 입사해 영업기획·개발담당이사, 상무 등의 요직을 거쳐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역임한 정통 ‘오일맨’으로 통한다. 2003년 ‘SK사태’ 당시 SK㈜ 부회장이었던 그는 다른 부실 계열사를 지원해달라는 그룹 측의 요청을 거절하는 배포를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는 게 당시 거절 이유였다.

    그는 지금도 SK 내부에서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SK㈜의 한 임원은 “부회장 시절 아무리 직급이 낮은 아랫사람에게도 빈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고 소개했다. “회사 건물 현관에서 마주친 과장급 직원이 ‘별일 없지. 언제 점심 한번 해야지’ 하는 황 부회장의 얘기를 무심코 흘려들었다가 얼마 후 황 부회장의 점심 초대를 받고 감격해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일화가 수없이 많을 정도로 임직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경영인”이라는 것.

    황 사장의 석유공사 바꾸기 작업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이 드러난다. 그는 이벤트성 혁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임직원을 귀찮게만 하는 혁신은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역사가 27년이나 되는 데다 임직원만도 1100명이나 되는 기업을 CEO 한 사람이 새로 와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꿔서는 안 되고, 점진적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황 사장이 현재까지 가시적으로 추진한 혁신은 조직정비 작업. 인적 자원의 효율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3월15일 인사를 단행한 것. 종전의 관리형 조직을 사업형 조직으로 개편하면서 102개 팀 조직을 85개로 줄였다. 결재 단계도 5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했다. 공기업 특성상 지원 부문이 많았는데, 이들 인력을 대폭 줄이고 ‘돈 버는’ 부서에 배치한 것.

    “눈에 띄네!” 석유공사 대변신

    울산 앞바다에 있는 고래 14구조의 가스층 시추 현장.

    하지만 석유개발 부문의 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한 조직은 확대했다. 본사에 시추운영처를 신설하고 예멘, 나이지리아, 캐나다 등지에 3개 지사를 신설해 모두 12개 지사로 늘렸다. 또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석유개발 기술인력의 체계적 육성을 위해 석유기술연구원을 신설했다.

    “유전개발은 과학을 총동원해야 가능하다. 30년 전 탐사 성공 확률은 1~3% 수준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석유 메이저들은 15% 수준이다. 그러나 심해저 광구의 경우 한 공을 시추하는 데 500억원가량이 들어간다.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당연히 장비의 과학화 및 현대화, 그리고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탐사 기술자는 적지만 수준은 세계적이다. 다만 개발과 생산 부문 기술이 아직 낮다.”

    나이지리아 해상 광구 계약 체결 ‘쾌거’

    황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팀장급 이상 165명 중 전문성 향상이 필요한 20명을 팀원으로 발령했다. 반면 업무 능력이 뛰어난 실무 직원을 간부직 및 주요 핵심 보직으로 발탁했다. 해당 직원이 희망 근무부서를 선택해 지원하고 해당 부서장이 지원자 중 최적격자를 선택해 임용하는 ‘내부 인력시장제도’도 도입했다.

    “석유공사가 창사 초기부터 해외를 상대로 해온 조직이어서인지 우수한 인재가 많다. 공사의 문화를 먼저 파악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직원들이 수익성과 공공성 가운데 공공성을 더 강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두 가지를 슬기롭게 조화시킬 생각이다.”

    취임 이후 황 사장은 내부혁신보다 에너지 수급 안정이라는 더 시급하고도 절박한 과제를 안게 됐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여섯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등지의 10여 개국을 방문하는 등 정부의 자원외교 활동과 연계해 석유개발 현장을 둘러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0년 뒤인 2015년에 매출 5조5000억원, 매장량 20억 배럴, 하루 생산량 38만 배럴 규모의 메이저 석유업체로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할 계획인데 일부 국가에서는 구체적인 성과도 거뒀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3월 초 예상 매장량 20억 배럴의 나이지리아 2개 해상 광구에 대한 생산물 분배 계약을 체결한 것을 들 수 있다. 이곳은 메이저 정유사들이 대거 입찰을 추진할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그는 정부의 자원외교를 등에 업고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지어 석유공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따냈다고 한다. 이곳에서 탐사에 성공하면 2014년쯤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알제리에서 국제공동비축 규모를 200만 배럴에서 600만 배럴로 늘리기로 한 것도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공동비축유에 대한 우선구매권을 보유함에 따라 위기대응 능력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아랄해 탐사사업에 국제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참여 중이며 최근 추가로 2개 광구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석유자급률 4%, 석유수입량 세계 4위, 석유소비량 세계 6~7위 수준이다. 이 상황에서는 대륙붕 개발과 해외 유전개발을 통해 공급 물량을 확보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지금은 민간에게도 해외 유전개발에 대한 문호가 개방돼 있지만 그래도 석유공사가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 2월22일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다른 공기업 및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에너지산업 해외 진출 협의회’를 만든 것도 공동으로 해외 진출 방안을 찾기 위한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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