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2006.05.09

북-미 찬바람에 한국 몸살 걸릴라

미국 전방위 대북 압박 장기화 … 개성공단 등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 끼쳐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입력2006-05-04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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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북한의 위조달러 문제로 촉발된 북-미 경색 국면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 같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의 재개 전망은 보이지 않고, 우리 정부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북-미 대치 상황은 남북관계에도 일정 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어 관계자들의 우려를 더하고 있다.

    비근한 예가 4월26일 마크 민턴 주한 미국 부대사가 통일부를 방문한 일. 이날 방문은 4월24일 끝난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 결과를 청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민턴 부대사는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쌀, 비료 등 대북(對北)지원 시기와 물량 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그는 또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서도 물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미국은 북한 위폐문제 이후 ‘조건 없는’ 대북 지원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통한 실질적인 금융제재에 들어간 상태에서, 한국 등 제3국이 대북 지원을 계속할 경우 제재의 효과가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DJ 방북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막후협상 과정에서 현금 등 모종의 뒷거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대규모 지원책 미국 예민 반응

    미국 ‘뉴스위크’지는 4월 초 미국의 대북 접근방식에 대해 ‘지갑단속 정책(pocket book policing)’이라는 새 용어를 선보였다. 위폐사건 이후 북한의 돈줄을 죄는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함의가 담긴 말이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차관은 4월4일 상원 청문회에 나가 “16개 미 정부기관이 북한의 돈세탁에 대응하고 있으며, 세계에 물결효과를 일으켜 김정일 정권으로 들어가는 더러운 돈의 흐름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에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대규모 대북지원을 하려는 데 대해 미국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경계심은 개성공단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벌어진 최근 논란에서도 드러났다. 발단은 3월30일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 인권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제이 레프코위츠 미 대북인권특사가 “개성공단 내 북한 근로자가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있다”고 밝힌 대목. 레프코위츠 특사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제3의 기관이 조사해 유엔에 보고토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정부가 이례적으로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다음 날 통일부 이관세 정책홍보실장은 “월 57.5달러인 최저 임금은 북한 내 다른 지역의 일반 근로자 평균임금에 비해 월등히 높다”며 “미국 정부의 책임 있는 인사가 충분한 사실 확인도 없이 왜곡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진짜 쟁점은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및 근로환경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다고 해석한다. 미국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돈이 김정일 정권의 비밀 통치자금으로 쓰일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고, 우리 정부도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 다만 개성공단이 중단돼서는 안 되는 이 정부의 핵심사업이라는 점에서 대미 설득에 부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표기 문제를 의제로 포함시키느냐의 여부도 정부의 고민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초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때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임을 인정받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고, 이는 김종훈 한미 FTA협상 수석대표와 고경빈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장의 잇따른 발언으로 확인됐다.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 라벨을 붙이고 미국 시장에 수출되는 것은 향후 개성공단의 성공 여부에 중대한 변수가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은 정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얼마 전 개성공단 사업 설명차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미국 측은 개성공단 제품을 파키스탄이나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의 ‘노예노동’과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약자 계층을 착취해 값싼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제3세계 나라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개성공단 문제를 경제적 사안이 아니라 인권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다.”

    한편, 위조지폐와 인권 문제로 북한을 시종 압박하는 미국의 속사정도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란 핵문제가 당면 과제로 떠올라 한반도 문제는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렸고, 이에 따라 지난해 대북 협상을 주도해온 핵심 인사들의 영향력도 대폭 위축됐다는 것.

    이 같은 상황은 4월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 때도 감지됐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는 북-미 간 수석대표의 양자 회동 여부였는데, 김계관 북측 대표의 ‘만날 수 있다’는 신호를 미국 측 힐 수석대표가 끝내 외면했던 것.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힐 대표가 북측과 만날 경우 그 후의 부담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힐 대표가 미국 내 네오콘 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힐 수석대표의 위상이 과거 북미 접촉 때 사사건건 본국 훈령에 따라 움직였던 제임스 켈리의 수준으로 격하됐다”는 평가도 서슴지 않았다.

    이래저래 고민만 키우고 있는 쪽은 우리 정부다. 미국은 북핵 문제가 단시일 안에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를 접고 느긋하게 장기전에 들어간 형국인데, 미국이나 북한을 움직일 한국의 지렛대는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북한의 자기 판단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북한을 겨냥한 발언(4월5일)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시절에 비해 한결 적극적으로 변화한 대미 자세 등이 모두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나왔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통일부 외곽단체에 속한 한 연구자의 말이다.

    “북-미 간 교착국면을 타개하고 한-미 간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종석 장관이 직접 방미해 미국을 설득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6자회담 재개 자체가 어려워짐은 물론, 남-북 간에 필요한 최소한의 협력사업조차 지장을 초래할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된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식의 자세는 문제 해결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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