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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風… 康風… 吳風… 한국에 부는 ‘바람의 정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盧風… 康風… 吳風… 한국에 부는 ‘바람의 정치’

盧風… 康風… 吳風… 한국에 부는 ‘바람의 정치’

바람의 희생자들. 2월23일 박진, 홍준표 의원과 맹형규 전 의원 등 한나라당 서울시장 출마 후보들이 손을 잡고 공정 경선을 다짐하고 있다(왼쪽부터).

1985년 ‘2·12’ 총선 결과는 정치권은 물론, 한 표를 던진 국민들조차도 깜짝 놀라게 했다. 언론은 창당 25일 만에 서울의 14개 국회의원 선거구(당시는 2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모두에서 당선자를 내며 제1 야당으로 부상한 신민당 돌풍을 ‘2·12 민의의 심판’으로 규정했다. 암울한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이뤄진 민의의 심판은 이후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하면서 민의는 실현됐다.

‘바람(風)의 정치’는 이 2·12 총선이 사실상 시발점이었다. 이후 조직과 자금이 주를 이뤄왔던 한국 정치에서 바람은 즉흥성보다는 역동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고, 정치권은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바람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4월25일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대회. 6개월 넘게 대의원 표를 다져온 맹형규 후보와 홍준표 후보의 조직이 불과 보름 전 경선에 뛰어든 오 후보의 바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나서면서 불기 시작한 바람은 즉시 ‘강풍(康風)’으로 명명됐으나 보름도 지나기 전 ‘오풍(吳風)’으로 대체됐고, 이런 흐름이 국민참여선거인단의 표심을 좌우해 오 후보의 승리를 가져온 셈이다.

사실 ‘바람의 정치’는 바람에 희생된 쪽에서 바라보면 황당무계한 측면이 없지 않다. 선거 구도가 1년 새 여섯 번이나 바뀔 만큼 ‘바람의 정치’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던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 우세를 일순간 날려버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대세론에 안주하다 민주당 경선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경선 불복을 외쳤던 이인제 의원, 여론조사로 후보단일화를 한 뒤 투표를 불과 7시간 30분 앞두고 단일화 파기를 선언했던 정몽준 의원 등에게 노무현 바람, ‘노풍(盧風)’은 믿어지지 않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또 2년 뒤 17대 총선에서 당선자조차도 꿈인지 현실인지를 되뇌게 할 정도로 정치 지형을 바꿔버린 게 탄핵풍(彈劾風)이었다.



이처럼 선거 때마다 정치권을 강타해온 바람의 메시지는 항상 ‘변화’였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권이 이를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유권자들의 변신 속도가 훨씬 빨랐던 게 현실이었다.

물론 유권자들의 잦은 변신을 조변석개(朝變夕改)로 치부하며 냄비 근성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 규모 선거에서 연이은 승리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고, 집권여당이 민심을 수렴하지 못하면 재·보궐선거 등을 통해 반드시 심판을 내리는 등 ‘바람의 정치’가 정치권에 견제와 균형의 저울추 구실을 해온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주간동아 2006.05.09 534호 (p14~14)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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