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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이라크 전쟁터로 또 떠날 겁니다”

종군취재 프리랜서 김영미 PD … ‘죽음의 공포’ 분쟁 현장 누비며 생생한 특종 일궈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라크 전쟁터로 또 떠날 겁니다”

“이라크 전쟁터로 또 떠날 겁니다”

이라크 아르빌에서 취재할 당시의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PD.

2003년 3월19일 그는 이라크-요르단 국경에 서 있었다. 다음 날 새벽 미·영 연합군의 공습으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TV는 바그다드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했는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샛노란 불티들이 피어오르는 CNN의 오렌지 빛 화면은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혹적이었다. 앵커의 가슴 아래로는 미 증권거래소의 기업별 주가가 바(bar) 형태로 빠르게 흘렀다. 그는 토할 것 같았다. 주가가 오르고 있음을 가리키는 숫자의 흐름이 비명에 귀를 막은 돈의 질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다큐멘터리 제작

2006년 4월5일. 그는 경기 의정부시 자신의 집에서 TV를 보다가 ‘펑’하는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냉장고 문 닫히는 소리. 이따금 나타나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다. 그는 TV 방송에선 ‘소거된’ 바그다드의 ‘폭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펑’소리 때문이었을까. ‘이라크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밀려왔다. “꼭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하고 헤어진 이라크인 무스타파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김영미(36) 프리랜서 PD는 이라크에 미쳐 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카슈미르), 이라크 등으로 ‘취재 여행’을 다녀오면서 ‘분쟁지역 전문 PD’로 자리매김했다. 정석을 지키되 그것을 깨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취재는, 공채 출신 방송국 PD가 만든 ‘웰메이드’ 다큐멘터리에서는 맡을 수 없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전쟁을 겪고 있을 뿐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하지 않은 일일(日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만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6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3000만~4000만원(분당 200만원 넘게 받고 일본 방송국에 프로그램을 납품하 기도 한다)에 팔린다.

“이라크 전쟁터로 또 떠날 겁니다”
“방송요? 여의도에 방송사들이 있다는 사실 외엔 아는 게 없었죠. 아이와 함께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겠는데 할 줄 아는 일은 하나도 없고…, 식당 일을 할까 아니면 보험설계사로 나설까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선 동티모르 사진을 보았어요. 느닷없이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러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하나씩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지요. 내 카메라 앵글에 들어온 이들은 나처럼 삶의 무게에 짓눌려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999년, 그는 스물넷에 결혼한 남편과 헤어졌다. 이혼이 남긴 건 팍팍한 일상이었다. 그는 탈출구를 간절히 원했고, 6mm 카메라는 기꺼이 벗이 되어주었다. 외로워서였을까. 그는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앞서 사람을 먼저 사귀었다. 동티모르의 아줌마를 만나 친구가 되고, 이라크의 아저씨를 찾아 말벗이 되었다. 친구 앞에서는 솔직해지고 거리낌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밥상머리에서 함께 수다를 나눈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카메라에 담아가면서 만든 프로그램이 여러 편의 이라크 르포들과 ‘동티모르의 푸른 천사’ ‘탈레반 붕괴 100일, 부르카 벗는 아프간 여성들’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쌍둥이가 얼어죽은 장면을 찍은 적이 있어요. 당시 그곳에서는예삿일이었죠.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펑펑 우는 엄마를 찍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그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내가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 아니었다면, 동병상련의 아픔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저항 세력이건, 필녀필부건 사람들은 다 똑같습니다. 무소불위의 독재자인 후세인을 미워하면서도 미국을 용납할 수 없는 그네들의 마음도 속 깊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라크 전쟁터로 또 떠날 겁니다”

자이툰 부대원들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인 김 PD.

전업 주부에서 다큐멘터리 PD로 변신한 지 겨우 7년. 전장의 저널리스트라는 후광 때문일까. 30대 중반의 이 여성에게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베테랑 기자가 오버랩된다. “여자로서 무섭지 않느냐”고 촌스러운 질문을 던지자 그는 “공명심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무섭다”면서도 “전쟁터 취재는 꼭 마약을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마약 한 사람처럼 미친 듯 바그다드를 누빈 덕에 그는 제도권 저널리스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고 김선일 씨 피살 사건 이후 한동안 한국 국민들은 외국 통신사 및 방송사가 제공한 영상만을 보았다. 취재진이 안전문제를 우려해 모두 철수했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그는 ‘한국인의 눈’으로 본 생생한 특종을 거푸 한국으로 보내왔다. MBC가 창사특집으로 방영한 ‘긴급르포 파병, 100일간의 기록 자이툰 부대’가 당시에 그가 만든 작품 가운데 하나다.

최근 화두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법’

그렇다면 죽음의 공포를 느낀 적은 없었을까. 이라크 전쟁 직전의 일이다. 당시 이라크 정부는 보안을 이유로 위성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김영미 PD)고 그는 안테나를 창문 밖으로 내어놓고 국제전화를 걸었다. 이라크 정보기관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호텔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러곤 그를 모처로 데리고 가 스파이로 의심된다며 아홉 시간 동안 조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한 일이지만 끌려갔을 당시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녀티가 남아 있는 가냘픈 체구 어디에서 그런 강단이 나오는 걸까. 누구보다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덕인 듯싶다.

“위험하고 끔찍한 일만 보고 겪은 건 아니에요. 재미난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들여온 중고차에 붙은 강남구청 주차위반 스티커를 상표라며 애지중지하는 저항세력 아저씨, ‘주 예수를 믿으라’(한국 교회의 승합차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글귀가 쓰인 승합차를 타고 다니는 무슬림을 보았을 때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패션(옷차림)까지 의식하는 저항세력 친구도 있었고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그는 어느새 현장에서 꽤 알아주는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가 돼 있다. 다리품을 팔아 익힌 지식은 책으로 읽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큐멘터리와 글을 판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일본 월간지(세카이·世界)에도 이따금 원고가 실리는데, 요사이 그의 화두는 사람, 그중에서도 ‘사람이 행복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최근엔 웃음(fun) 경영 전도사 진수 테리(49·Jinsoo Terry)를 SBS와 함께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즐겨라!”

폭력에 중독되고 공포가 일상화한 전장에서 그가 체득한 행복의 비결이다. 그의 이라크 다큐멘터리는 크게 3막으로 이뤄져 있다. 1막(전쟁 전 민초들의 삶)은 마무리됐고, 2막(전쟁 중 민초들의 삶)은 끝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3막(전쟁 후 민초들의 삶)을 통해 전쟁과 사람, 그리고 행복에 대해 결론짓고자 한다.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이라크로 떠날 계획이다.

“전쟁 때문에 남편이 집에서 놀아 하루 세 끼 밥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부부싸움만 늘었다”고 툴툴대던 마을 아낙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무스타파의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도 궁금하다. 이라크의 소박한 저녁 식탁을 떠올리면서 그는 조바심을 친다. 목이 빠진다.



주간동아 533호 (p68~69)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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