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3

..

美 취학 대상 100명 중 1명 “학교 안 가요”

홈스쿨링 합법적 교육형태로 인정 … 대학진학률·학력 수준 공립학교 학생들과 차이 없어

  • 김재웅 서강대 교수·교육학

    입력2006-04-26 15: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美 취학 대상 100명 중 1명 “학교 안 가요”

    홈스쿨링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1년 경비가 공립학교 학생의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79년 1월6일, 미국 유타주에 사는 존 싱거(John Singer)라는 한 농부가 자기 집 앞에서 경찰관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관 여럿이 ‘의무취학법’을 어기면서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있던 싱거 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가 그만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싱거 씨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로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종교적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유타주 교육청은 싱거 씨에게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위법이며, 학교에 보내든지 아니면 교육위원회의 특별한 허락을 얻을 것을 종용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법원에 고발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에 싱거 씨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칠 것이며 절대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이상은 ‘한 미국인의 죽음’(Fleisher & Freeman 지음, 1983)이라는 책이 전하는 미국 홈스쿨링 관련 실화다. 싱거 씨의 죽음은 유타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의무교육’과 ‘의무취학’의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대부분 주에서는 홈스쿨링을 합법적인 교육의 한 형태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특별활동·자원봉사 통해 사회성 발달·친구 사귀기 효과 거둬

    현재 미국에서 홈스쿨링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수는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증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03년 자료에 따르면,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있는 아동 중 110만 명이 집에서 교육 받고 있다. 취학 적령아 대비 홈스쿨링 참여 비율이 1.1%에 달하는 셈인데, 이 비율이나 절대숫자 면에서 미국의 홈스쿨링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홈스쿨링 운동은 공교육 제도가 지구상에 도입된 이래 약 200년간 교육을 독점해왔던 학교 체제에 큰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홈스쿨링은 일정한 자격(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일정한 공간(학교)에서 정부가 가르치라고 지정한 것(교과서)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어온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홈스쿨링 운동은 ‘학교’의 개념과 ‘교육’의 개념을 분화시키면서 그 교육적 근거를 확고하게 얻어가는 중이다. 홈스쿨링을 하는 사람들은 자녀 교육을 정부의 손에서 가족의 손으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싱거 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의 홈스쿨링은 종교적 이유에서 시작됐으나 최근 들어 그 이유가 기존 학교교육(학업성취나 안전문제 등)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 학교에서 아동에 대한 존중감 부족, 학부모가 학교보다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확신, 생태주의와 같은 학부모의 강한 이데올로기적 가치관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에서 홈스쿨링과 관련돼 제기되는 질문은 첫째 부자들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둘째 아동의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셋째 홈스쿨링을 통해서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가 등이다. 이러한 의문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가정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려면 용기도 필요하거니와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아이들과 붙어살아야 한다. 이는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생활이 유지될 정도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미국 홈스쿨변호협회(HSLDA, 1997)의 1997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50%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데 비해 홈스쿨링 부모는 88%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 홈스쿨링 가정의 소득 중간치는 5만2000달러(약4932만원)로, 일반 가정 소득의 중간치인 3만6000달러(약 3414만원)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美 취학 대상 100명 중 1명 “학교 안 가요”

    최근 들어 학교가 홈스쿨러들에게 일부 수업이나 야외 프로그램을 개방하는 등 학교와 홈스쿨러가 협조적인 관계로 변모하고 있다.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들은 전문직이나 기술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고 영업이나 고용 점원, 서비스, 반숙련직이나 미숙련직에 종사하는 경우는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 공립학교의 1년간 학생

    1인당 경비가 5325달러(약 505만원)인 반면 홈스쿨링은 그것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546달러(약 52만원)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더 중요한 것은 가장의 경제적 배경이라기보다는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홈스쿨링을 한다고 해서 부모가 직접 모든 교과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홈스쿨링을 하는 몇몇 가정이 모여 자기가 잘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을 돌아가며 가르치는 일종의 ‘품앗이 교육’을 하기도 한다. 일부 특별활동이나 과목은 외부 강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야외활동이나 수학여행은 지역별 홈스쿨 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과거 적대적이었던 학교와 홈스쿨링 가정의 관계가 협조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있어 주목된다. 일부 학교에서는 자기 지역 홈스쿨링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과목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홈스쿨링은 아이들이 집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에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언론들도 홈스쿨링은 사회에 적응할 줄 모르는,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비꼬는 투의 기사가 많았다. 그러나 조사 결과, 홈스쿨링 학생들은 사회성 발달과 관련 있는 특별활동 및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평균 다섯 가지씩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는 스카우트, 현장방문, 댄스교실, 스포츠, 음악, 선교, 주일학교,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는 달리 폭넓은 연령층의 친구를 사귀고 있는 것도 홈스쿨링 아이들의 특징이다.

    아동 교육의 우선권 ‘국가’에서 ‘학부모’로 전환 의미

    미국 HSLDA에 따르면 홈스쿨링 아이들은 미국 전국 표준화 학력검사에서 같은 학년의 공립학교 학생들보다 읽기, 듣기, 수학, 사회, 과학 등 전 교과에 걸쳐서 성적이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예컨대 홈스쿨링 학생들은 과목에 따라 상위 13%에서 20%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 수준까지 홈스쿨링을 마친 뒤 학생들이 각종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69%로 공립학교의 71%와 크게 차이나지 않다. 현재 하버드대학 등 일류 대학을 비롯해 대부분 대학들이 홈스쿨링 아이들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홈스쿨링에 관한 법적 논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홈스쿨링의 법적 쟁점은 아동의 교육에 대한 우선권이 국가에 있는가, 학부모에게 있는가의 문제다. 아동 교육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책임도 중요하고, 학부모의 자녀 양육에 대한 권리도 중요하다. 이 둘 사이의 갈등 속에서 미국의 법원은 학부모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홈스쿨링은 합법적인 교육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의무교육’과 ‘의무취학’을 구분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와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 비춰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에서도 홈스쿨링에 대한 법적 토론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홈스쿨링이 합법적인 교육기관으로 인정된다면 그것은 교육의 주도권을 국가에서 가정으로 되돌려놓는, 교육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그리고 어쩌면 교육혁명을 가져올 수 있는 씨앗을 심는 일이 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