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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지금 ‘안방’단속 주의보

지방선거 공천 지망생들 부인 통한 로비 괴담 … “아차하면 패가망신” 조심 또 조심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여의도는 지금 ‘안방’단속 주의보

여의도는 지금 ‘안방’단속 주의보
5·31지방선거를 둘러싸고 안방괴담이 나돌고 있다. 안방괴담이란 선거와 관련해 정치인 부인들이 돈을 받거나 공천에 개입한 것을 말한다. 안방괴담에는 정치인 부인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 외에 달러박스나 명품 핸드백, 의류도 등장한다. 한나라당 클린공천감찰단 주변에는 구체적 내용을 담은 안방로비 리스트까지 떠돌고 있다.

다른 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4월19일 목포시 L 시의원은 “모 시장 후보 부인이 모 현역의원 부인에게 달러가 담긴 라면박스를 전달했다”고 폭로, 안방괴담을 지방으로 확산시켰다. 이와 관련해 박기철 민주노동당 목포시지역 위원장은 20일 “시장 후보 부인과 국회의원 부인 간의 공천뇌물 의혹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목포시 선관위는 중앙선관위의 도움을 받아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

당직자들의 국회의원 집 방문 허다

여당의 텃밭인 충청권에서도 의원 부인을 둘러싼 로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평소부터 안면을 익힌 공천 지망생 부인이 공천권을 쥔 소속 의원의 부인에게 명품 핸드백을 선물했다는 것이 괴담의 줄거리. 의원 부인들의 부적절한 처신은 당분간 정치권의 핫이슈로 머무를 전망이다.

정치인에게 ‘부인’은 영원한 동지이자 참모다. 부인들은 남편을 대신해 지역구를 누빈다. 바닥 여론을 듣고 남편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가 하면 민원을 직접 수렴해 해결하는 적극파도 적지 않다. 의원 부인들은 남편의 권력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한다. 눈치 빠른 민원인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그들은 얼굴 보기 힘든 국회의원보다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부인을 통해 민원을 넣는 게 성공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잘 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공천 희망자들이 현역 국회의원보다 그의 부인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우회방법을 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월 초 수도권 출신의 K 의원은 “강남 고속터미널 인근 호텔 커피숍으로 와달라”는 아내의 연락을 받고 갔다가 큰 낭패를 볼 뻔했다. 평소 자치단체장 공천을 노리던 A 씨가 그의 부인과 함께 나와 있었던 것.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는 A 씨의 청을 물리친 K 의원은 아내에게 “1년 전부터 A 씨 부부와 여러 차례 만났다”는 말을 듣고 대화내용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K 의원은 “정치인들의 경우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정치적 감이 떨어지는 부인들의 경우 상황을 오판해 로비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덕룡·박성범 의원 부인들의 수뢰사건 이후 정치인들은 부인의 동선을 관리하는 데 신경 쓰고 있다. 공천헌금 수수사건이 터진 직후인 4월 중순, 영남 출신의 F 의원은 집에서 검토하던 공천서류를 챙겨 국회회관 사무실로 모두 옮겼다. 그날 저녁 “이 후보의 장점은 이렇고 저 후보의 장점은 이렇다”고 말하는 아내를 집 앞 호프집으로 데리고 가 “단 한 푼이라도 받은 게 있느냐”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내는 발끈했다. “나를 믿지 못해 자료를 국회로 옮겼느냐”며 따지는 부인을 다독거렸지만 냉랭한 관계는 한동안 지속됐다. F 의원은 “언제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몰라 마치 교도소 담 위를 걷는 기분”이라며 공천정국이 주는 부담감을 토로했다.

수도권 지역의 기초단체장 출마를 노리던 G(46) 씨는 민원인들이 안방로비에 치중하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의도는 지금 ‘안방’단속 주의보

공천헌금 사건의 당사자인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왼쪽)과 박성범 의원이 4월13일 긴급 소집된 의원총회에 참석,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민원인들이 무턱대고 부인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일단 해당 정치인과 부인의 관계를 살펴보고 부인의 ‘말발’이 먹힌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작업에 들어간다. 부인에게는 부인을 보내는 것이 불문율이다. 물론 오래전부터 얼굴을 익혀놓는 치밀함을 갖춘 민원인일수록 공천로비 성공 가능성은 높다.”

평소 언니, 동생 하며 허물없게 지낼 경우 상대방의 경계심은 그만큼 낮아진다는 것. 이는 결국 로비 효과의 극대화로 연결된다는 게 G 씨의 경험담이다.

선거를 앞두고 중앙당이나 지역구 당직자들이 해당 지역 출신 국회의원 집에 찾아가는 경우는 허다하다. 특히 밤늦은 시간, 평소 안면 있는 민원인들이 방문할 경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역시 수도권 출신 K 씨의 경험담이다.

“지역구에서 나는 야구광으로 소문이 났다. WBC 야구에서 한국팀이 4강에 진출한 직후, 한 민원인의 부인이 ‘모 프로구단에서 근무하는 남편 후배가 준 기념품’이라며 집사람에게 작은 상자를 주었는데 나중에 풀어보니 금으로 된 야구방망이였다. 휴대전화로 민원인을 불러 곧바로 돌려줬지만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아내와 자녀 친정 보내 접촉 원천봉쇄

정치인들은 지인의 선물을 매몰차게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받아서는 안 될 선물도 있지만 정성을 담은 작은 선물도 많기 때문이다. 작은 정성을 거절하면 인간관계가 삭막해진다. 사람을 밑천으로 삼는 정치인들로서는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면서 문제점도 봉쇄하는 노하우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 최근 아내와 어린 아들을 친정에 보낸 열린우리당 J 의원의 얘기가 국회에 회자됐는데, 의원들 사이에서는 ‘굿 아이디어’란 소리가 나온다.

선거철을 맞은 정치인 부인들이 모두 부적절한 처신을 일삼는 것은 아니다.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역술가를 찾는 정치인 부인들의 발걸음도 잦다. 역술가 심진송 씨는 “정치인 부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오로지 남편의 선거운세이며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비방을 원한다”고 그들의 내조 스타일을 설명했다.

정치인들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가정을 꾸리는 일은 부인의 몫이다. 최연소 남해시장으로, 국회의원과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한 우리당 김두관 최고위원은 이력만 놓고 보면 무책임한(?) 가장으로 보일 수 있다. 5·31 선거를 포함하면 무려 열 번이나 선거를 치렀지만 아내에게 제대로 생활비를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 위원이 손놓은 가장의 임무는 부인 채정자 씨가 맡았다. 이긴 것보다 진 선거가 더 많았음에도 채 씨는 요즘도 선거가 다가오면 ‘선거가 즐겁다’고 자기암시를 한다. 그래야 선거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채 씨는 “결혼식장을 하도 많이 찾아다니다 보니 결혼식장 주차요원들이 수행비서가 내 남편인 줄 알더라”고 말했다.

반대로 부인의 적극적인 내조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불러올 때도 있다. 서울 북부지원 1심 재판부는 2005년 12월23일 사전 기부행위 등 선거법 위반 혐의로 우리당 L 의원의 부인과 비서진 등 3명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04년 9월경 지역구에 1000만원 상당의 쌀을 나눠준 것이 사전 기부행위 등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이었기 때문. 이 사건 관련자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 의원의 정치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나라당 김정부 의원은 부인이 지난 총선에서 불법 선거자금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까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김 의원은 의원직을 잃는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제의 미덕이 정치인 부인들의 첫 번째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간동아 533호 (p20~21)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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