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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중심의 상실

‘신을 닮은 인간’ 미술사에서 사라진 까닭은

신체 붕괴 가속, 초현실주의에선 동물 수준으로 퇴화 … “건강하지 못한 현상” 우려 목소리도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신을 닮은 인간’ 미술사에서 사라진 까닭은

‘신을 닮은 인간’ 미술사에서 사라진 까닭은

‘다비드’, 미켈란젤로(1501~1504)

신체’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은 서구 예술의 중심 과제였다. 서구에서는 예술을 ‘자연의 모방’이라고 불러왔다. 이때의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자연이 아니라 내 안의 자연, 즉 인간의 몸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게 예술의 과제는 아니었다. 예술은 인간의 몸을 모방하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바로 이것이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서구 예술을 지배해온 대이론(大理論)이었다.

신을 닮은 인간

실러의 말대로 “아직 신들이 더 인간적이었을 때, 인간들은 더 신적이었다.” 그리스 조각은 그 자체가 인간이 제 몸에 보내는 자화자찬이었다. 신체의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때 인간을 모델로 한 석상은 신상(神像), 말하자면 신의 몸이 된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우수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신이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고, 그런 고대인들의 존재미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 그리스의 신상이었다.

고대인들과 달리 중세인들은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를 따랐다. 물론 헤브라이즘에도 ‘신을 닮은 인간’의 관념이 존재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중세 기독교는 신과 인간의 간극을 벌려놓았다. 신은 지극히 높아졌고, 인간은 끝없이 낮아졌다. 신적으로 되려던 고대인들의 존재미학은 교만의 죄가 되고, 신체의 아름다움은 떨어지는 꽃처럼 덧없는 것이 된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중세 예술의 중심 주제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그의 몸은 신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인간이 준 죽음의 고통을 이기고 승리한 신의 아들. 그는 십자가 형틀 위에서도 신적 광휘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중세 후기로 갈수록 신은 더 인간적 모습으로 변해간다. 범접할 수 없는 신의 형상을 했던 최후의 심판자는 이제 채찍에 맞아 만신창이 된 인간의 몸뚱이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신이 인간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인간은 다시 자신을 신적 존재로 끌어올리기로 한다. 르네상스에 이르면 “육체의 완전성은 정신적 완전성의 모상으로, 나체는 순결과 진실의 모상으로 받아들여진다.”(한스 제들마이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보라. 어떤 신체가 그보다 더 아름답겠는가. 그것은 신적인 아름다움, 즉 신이 된 인간의 몸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그저 몸의 아름다움에 불과한 게 아니다. 르네상스 신체의 아름다움은 몸 아래로 내비치는 정신의 아름다움에서 나온다.

고통과 쾌락의 육체

이런 르네상스의 이상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정신화하지 않은 신체, 결코 성스럽지 않은 동물적인 몸이 자신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잔혹한 처형 장면 속에서 순교자들은 더 이상 찬란한 신앙의 승리자가 아니라, 여느 사형수처럼 혹은 도축장의 가축처럼 죽음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가련한 동물일 뿐이다. 육체는 정신의 후광을 걷어치우고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바로크의 몸은 또한 에로틱한 몸이었다. 최고 고통의 표정은 최고 쾌락의 표정과 일치한다. 성생활을 억압당했던 수녀들에게 당시 교회는 성자나 성인과의 정신적 교제만은 허용했다. 수녀들이 상상 속에서 성자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갖게 되는 신성한 엑스터시는 분명히 성적 오르가슴의 표정을 갖고 있다. 베르니니의 조각을 보라. 첫 성(性/聖) 경험을 한 테레사 몸의 진동과 전율은 옷자락을 타고 흘러내린다.

고요한 위대함

18세기에 이르면 바로크의 육체화에 대한 반발이 일어난다. 신고전주의의 비평가 빙켈만은 ‘라오콘 군상’의 특징을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고 했다. 동물적 비명을 지르는 바로크의 순교자들과 달리 바다뱀에 휘감기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라오콘의 위대함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승리를 의미한다. 고대에서 신고전주의로 이어지는 신체의 이상미는 그저 형식적인 비례의 산물이 아니라, 이렇게 육체의 동물성을 제압하고 정신성을 뿜어내는 현상이었다.

빙켈만에게 신적 아름다움을 가진 몸은 ‘근대인’이 아니라 ‘고대인’의 것이었다. 육체를 멸시하는 근대인들과 달리 고대인들은 섭생과 훈련을 통해 몸을 가꾸며 살았고, 하나같이 아름다워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변별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모방해야 할 아름다운 신체는 고대인들의 신체였고, 이미 죽어 없어진 그들의 신체를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는 고대의 조각상들뿐. 따라서 이상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예술가는 고대의 조각상을 모방해야 했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신을 닮은 인간’ 미술사에서 사라진 까닭은

‘성 테레사의 엑스터시’,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1647~1652)

하지만 고대 조각상을 모방하여 만든 이상적 신체는 실제 인간의 몸이 아니라 이데아에 속하는 몸이다. 실제 인간의 몸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벌거벗은 인간의 몸은 대부분 ‘추’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역겨움을 준다. 19세기 사실주의 예술에서 인간의 몸은 드디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 예술 속에 등장하는 몸은 신의 몸도 아니고, 칼로카가티아(善美)를 구현한 영웅의 몸도 아니고, 노동의 힘겨움에 왜곡된 서민들의 추한 몸이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이성의 시대에 광인들의 얼굴에 관심을 가졌다. 틈이 날 때마다 정신병원에 찾아가 어딘지 풀어진 표정을 하고 있는 광인들을 그렸다. 왜 그랬을까? 낭만주의가 고전주의적 합리성에 대한 반발이었기에, 이성 저편에 있는 현상에 마음이 끌렸던 모양이다. 광인을 그린 그의 작품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연상케 하는데, 어쨌든 고야가 묘사한 광인은 육체를 통해 정신성을 뿜어내는 고전적 인간상과는 대척점에 있다.

예술의 비인간화

현대에 들어와 신체 붕괴는 가속화한다. 인간의 몸은 이제 아예 인간이 아닌 것이 된다. 초현실주의에서 인간의 신체는 리비도에 가득 찬 동물의 수준으로 퇴화하고, 미래파 예술에서 인간의 몸은 유기물도 아닌 ‘기계’로 전락하고, 입체주의에서 그것은 그나마 유기적 전체성마저 잃고 통일성이 없는 파편들로 해체돼버린다. 이로써 ‘신을 닮은 인간의 몸’은 미술사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신을 닮은 인간’ 미술사에서 사라진 까닭은

‘트립티콘 1972년 8월’, 프랜시스 베이컨(1972)

현대인들은 오랫동안 서구의 예술을 지탱해왔던 미의 이상을 포기했다. 이는 초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만의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아일랜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마치 부화되다가 만 상태에서 깨진 달걀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보이는 “기관 없는 신체”를 그렸다. 온몸의 기관이 사라지거나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는 이 특이한 신체 체험은 편집증, 분열증, 마조히스트, 마약중독자들의 것이라고 한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현대예술에 나타나는 이 ‘예술의 비인간화’를 환영했다. 하지만 같은 문화 보수주의자인 제들마이어에게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는 미적 이상의 사라짐은 분명히 건강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그는 이를 ‘중심의 상실’이라 부르며, 현대예술에 이 영원한 인간의 상을 회복할 것을 요청한다.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는 신념, 그 신념 없이는 인간의 이념은 확보될 수 없다.”

퇴폐예술

그리스인들은 육체를 통해 정신이 빛나는 신적인 존재로 끌어올리려 했다. 이는 ‘에로스의 충동’이라 할 수 있다. 현대예술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정반대의 충동이다. 현대예술은 인간을 동물적 리비도 덩어리로 바꿔놓고, 그것도 모자라 기계와 같은 무기물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이것은 ‘타나토스의 충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진화의 순서를 거스르는 현대예술의 경향이 제들마이어에게는 ‘퇴폐’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현대예술을 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불편한 심기는 나치의 문화정책으로 이어졌다. 나치 예술은 고대의 이상을 모방하려 했다. 그들은 인간의 신체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전락시킨 현대예술을 ‘퇴폐예술’이라 부르며, 20세기에 느닷없이 고대의 인간상을 예술의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에 서 있는 나치의 조각상은 신을 닮은 인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호전적인 고대 정복국가 전사들의 상일 뿐이다.

전체주의 키치

하이데거가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에서 잠시 대학을 떠나 있어야 했던 것처럼, 제들마이어 역시 종전 후 한동안 강단을 떠나 있어야 했다. 나치 문화정책에 예술학적 토대를 제공한 혐의가 짙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제들마이어가 ‘퇴폐예술전’이라는 해괴한 전시회를 열어 현대예술 작품을 대중에게 능멸당하게 했던 나치 정책에 찬성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뛰어난 미술사학자의 취향이 보수적이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제들마이어는 현대예술의 비인간화를 통탄하며 “인간의 영원한 상을 확립하고 재형성”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오늘날 가능할까? 오늘날 그 낡은 예술 이상을 다시 끄집어내봤자 기껏해야 키치로 전락하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오용되기 십상이다. 그 보수적 미학을 극단적으로 추구할 때 탄생하는 것은 신고전주의풍의 나치 영웅이나 공산주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 전체주의적 영웅상은 물론 정치적 키치라 할 수 있다.



주간동아 531호 (p9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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