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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유용미생물(EM) 연구 제주도 이영민·이창홍 부자

“EM으로 땅 살리면 농업도 살지요”

  • 서귀포=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M으로 땅 살리면 농업도 살지요”

“EM으로 땅 살리면 농업도 살지요”

이영민 이사장(위)과 그의 아들 이창홍 이사.

4월3일 제주도 서귀포의 한 귤밭을 찾았다. 한창 짙푸른 잎사귀가 솟아오르고 있는 귤나무 사이사이로 민들레, 도라지꽃, 개불알꽃 등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땅을 한 삽 퍼 올렸더니 초콜릿 색깔의 건강한 흙이 모습을 드러낸다. 쇠똥구리가 굴려놓은 똥 덩어리처럼 동글동글한 흙 알갱이 틈바구니에서 지렁이가 꿈틀댄다. 흙 한 줌 집어 코에 가져다 대니 향긋하다고 할까, 향내가 난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15년 가까이 유용미생물(EM·Effective Micro-organisms) 퇴비로 농사짓고 있는 이영민(71) EM환경센타 이사장의 귤밭이다.

“이처럼 ‘떼알’ 형태의 흙이 건강한 거지. 공간 틈새로 수분을 충분히 머금는 동시에 배수도 잘되거든. 장마와 홍수에도 끄떡없어.”(이영민 이사장)

한두 해 전부터 ‘유용미생물’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EM 퇴비를 이용해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거나 EM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영양분이 풍부한 퇴비로 만든다거나, EM을 흘려보내 썩어 들어가는 하천을 살렸다거나 하는 ‘신기한’ 이야기들이다.

아버지는 EM 농법 교육, 아들은 산업 분야 활용 연구

이런 소식들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몇 번 소개되자 가정주부들도 유용미생물 활용에 나서기 시작했다. EM 발효액을 만들어 가정에서 사용하면 하수구나 화장실, 음식물 쓰레기통의 냄새가 사라지고 화초들도 잘 자란다. YMCA에서 종종 열리는 EM 관련 강좌는 이미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최근에는 현대차가 새차증후군을 없애기 위해 EM으로 ‘냄새 안 나는 자동차’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달 발표된 ‘2006 신지식농업인’에 선정된 사람들 중에는 EM을 활용해 친환경 축산업을 하는 농업인 2명이 포함됐다.



유용미생물이란 효모, 유산균, 광합성 세균 등을 말한다. 이들 미생물은 자연과 인간의 몸에 유용한 작용을 하는데, 공생할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들은 서로의 배설물을 먹이로 삼으면서 활성산소를 없애고 부패를 막는 등 ‘유용 활동’을 펼친다. 유용미생물은 1979년 일본 오키나와 대학의 히가 데루오 교수에 의해 발견됐는데, 우리나라에 EM을 들여와 연구·보급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이영민 이사장이다. 그의 아들 이창홍(40) 이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히가 교수 밑에서 EM을 연구, 석사 학위를 따고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EM환경센타를 이끌고 있다. 이 이사장은 “나는 농업인들에게 EM 농법을 가르치는 일을, 아들은 환경이나 산업 분야에 EM 활용방안을 연구·보급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농업이 잘돼야 제주도가 산다’는 신념으로 농촌운동을 벌이다 1968년 아예 교직을 그만두고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75년 남의 농장을 전전하며 품팔이를 해 모은 돈과 빚을 내 1만 평의 귤밭을 샀다. 그가 본격적으로 무농약·무화학비료 농사를 시작한 것은 빚을 모두 갚고 난 80년부터.

“70년대 후반부터 무서운 농약이 많이 나왔어. 농약을 치다가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두는 농부가 일주일에 한 명씩 나올 정도였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유기농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지.”

“EM으로 땅 살리면 농업도 살지요”

15년 가까이 EM 퇴비로 땅을 일군 이영민 이사장의 귤밭 전경(왼쪽). 농업인들에게 EM 활용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 이 이사장.

3~4년이 지나자 그의 귤밭은 갖가지 병충해가 모인 ‘병충해 종합병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주도 농업진흥원 직원들이 그의 밭에 와서 구경하기 힘든 ‘신기한’ 병충해를 연구했을 정도였다. 10년이 흐르자 귤나무 절반이 죽어나갔다. 밀감 출하량이 예전의 10분의 1, 20분의 1까지 떨어진 때도 있었다.

“무농약 농사를 거의 포기했을 즈음이던 91년 히가 교수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를 만나러 달려갔지.”

당시 이 이사장은 일본 잡지 ‘현대농법’을 구독하며 거기서 소개된 히가 교수의 EM 이론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히가 교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그는 그해 네 차례나 일본으로 건너가 책방을 뒤지며 미생물농법과 EM에 관한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1년에 걸친 탐독 끝에 “EM에 사활을 걸어보자”고 결심, 히가 교수를 설득해 대구에 EM 공장을 설립하도록 만들었다.

“내 귤밭을 ‘EM 농법의 표본으로 만들자’고 다짐했어. 92년부터 귤밭에 EM 퇴비를 주고, 귤나무에 EM을 자주 뿌리면서 실험에 착수했지. 신기하게 죽었던 귤나무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더라고. 우선은 토양이 비옥하게 변했어. 땅을 조금만 파면 지렁이가 살아서 꿈틀대는 게 눈에 보일 때 참으로 기뻤지….”

하지만 EM 농법을 보급하는 데까지 수많은 어려움에 부닥쳤다. 국내 농업계의 일부 지식인들이 “EM은 외래 미생물로 우리 토양을 다 망친다”고 공격했고, 반일 감정이 뿌리 깊은 제주도 농민들도 “EM은 일본 놈이 만든 것”이라고 외면했다. 당시 이 이사장은 “미생물에 국적이 어디 있느냐”며 많이 답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 죽어갔던 귤나무가 살아나고 유기농법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농민들은 점차 EM 농법을 주창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EM 감귤, 일반 귤 비해 당도 월등 … 값도 2배 정도 비싸

그가 생산하는 ‘EM 감귤’은 달기로 유명하다. 일반 귤에 비해 당도가 2도 정도 높다고 평가받는다. 전량 생활협동조합 수도권연합회와 한살림공동체 등을 통해 직거래로 판매되는데, 해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반 감귤보다 2배 정도 비싼 값을 받는 해도 있다고 한다.

이제 그의 귤밭은 ‘EM 농법의 표본’이 됐다. EM 농법에 관심 있는 농업인들이 꼭 들러 견학하는 명소가 된 것이다. 그는 97년 EM농업학교의 문을 열었는데, 지금까지 4000여 명이 EM 농법을 배워갔다. 현재 제주도에서만 350여 명이 EM을 활용한 친환경 농업 및 축산업을 하고 있고, 올해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된 충북 다살림 영농조합법인 이욱희 씨, 제주도 원일EM양계 최강일 씨 또한 그의 수제자다.

EM이 제주도를 넘어 육지로, 농업을 넘어 환경과 산업 분야로 확대된 것은 이영민 이사장의 아들, 이창홍 이사 덕분이다. 2남2녀 중 막내아들인 이 이사는 제주제일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제주도의 소문난 수재.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함께 이 길을 걷자’고 제안한 적이 없다. “아버지와 함께 EM을 연구·보급하는 데 평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일본에 건너가 EM을 배워오겠다”고 한 것도 아들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큰형은 공부만 시키고 저는 밭일만 시키셨어요.(웃음) 물리학자가 되고 싶어 서울대에 진학했지만,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고향에 내려가 평생 농사일을 하고 살자’고 맘먹었습니다. 졸업 후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가 스크랩해둔 히가 교수의 글을 읽게 됐습니다. ‘생명과 환경은 공존하면서 진화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그리고 EM 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어요.”

“EM으로 땅 살리면 농업도 살지요”

① EM의 각종 생산물. ② 유용미생물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 ③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자리한 EM 환경센타.

이 이사는 신혼 여행지로 오키나와를 택했다. 그곳에서 히가 교수를 만나고 돌아와 아버지에게 “일본으로 유학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유학 보낼 돈이 없다”며 아들을 말렸다. 히가 교수가 나서서 장학금을 마련해준 덕분에 이 이사는 유학길에 올랐다. 99년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그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EM의 연구 및 보급 활동을 시작했다.

EM 이용해 냄새 안 나는 자동차·갯벌 살리기 프로젝트 추진

올해 이 이사는 현대차와 ‘냄새 안 나는 자동차’를 연구·개발 중인 서울대 이은주 교수를 돕는 일 외에도 충남 보령시의 ‘EM 프로젝트’ 추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M을 활용해 오염 정도가 심각한 서해안 갯벌을 살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핵심. 이미 제주도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이 이사는 “1~2년 안에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제주도의 천지연, 안덕계곡 등의 수질은 EM으로 맑게 정화됐고, 제주도 음식물쓰레기처리장에서 생산하는 EM 액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제주도 농민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영민·이창홍 부자는 “사람들이 EM을 농약 대체품 정도로 생각할 때 가장 섭섭하다”고 했다. EM은 좀더 좋은 효과를 거두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농업의 근간, 환경의 근간을 바꿔준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EM 농법의 핵심은 EM으로 토양의 질을 바꾸는 데 있다. EM으로 토양이 건강해지기만 하면 여타의 농업기술은 그다지 필요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EM의 확산은 살균(殺菌)에서 정균(淨菌)으로 패러다임을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깨끗한 환경을 위해서는 미생물을 모두 없애는 게 지금의 패러다임입니다. EM은 유해미생물은 모두 없애고 유용미생물만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미생물의 공존 상태에서 해법을 찾습니다. 항산화 환경만 마련해주면 유용미생물이 번성하면서 유해미생물은 제 힘을 잃게 마련입니다.”

유용미생물은 공생할 때 그 위력이 더욱 커진다. 또한 스스로 무한하게 번식한다. 이영민·이창홍 부자의 EM 연구·보급 활동도 이러한 유용미생물의 본성을 그대로 따른다. ‘누구나 EM의 힘을 공유하도록 관련 지식과 기술을 공개한다’는 것이 이들 부자의 철칙. 이 이사장은 여러 EM 농법을 개발했지만 단 한 건도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다. EM환경센타는 1 ℓ짜리 EM 원액(EM 원액은 100배로 발효시켜 1000~2000배로 희석해 사용한다)을 4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모두 100t을 보급했는데, 그중 무료 샘플로 나눠준 것만 40t에 달한다. 2박3일 코스의 EM농업학교 참가비는 숙식을 포함해 단돈 8만원. 그렇게 EM 농법을 배워간 농업인들은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EM환경센타로 연락해온다. 이런저런 충고를 하고 현장에 나가 지도하는 것 또한 이들 부자를 포함해 8명 남짓인 EM환경센타 사람들의 봉사활동. 센타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EM 강의 요청이 빗발치자 아예 뭍으로 출장을 나가 EM 활동가 양성을 위한 교육을 해주고 있다.

“EM 농법을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 그런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를 되도록 많은 농업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시행착오 없이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말이지. 아무리 센타를 꾸려나가기 힘들어도 유용미생물은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우리 센타의 각오야. 그게 유용미생물의 철학이기도 하고… .”(이 이사장)



주간동아 531호 (p70~72)

서귀포=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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