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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천사가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

이미지로 논술 읽기 ①

  • 이주헌 미술평론가

아기천사가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

아기천사가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

라파엘로, ‘시스티나의 마돈나’ 중 아기천사 부분. 나무에 유채, 드레스덴 회화 미술관. 아래는 전체 그림.

사람은 자기보다 약한 대상에 동정심과 보호의식을 갖고 있다. 연약한 아기가 그려진 그림이 우리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는 이유다. 오죽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성화에서도 예수를 아기로 그린 그림이 저토록 많이 생산되고 사랑을 받았을까. 이렇듯 아이 이미지가 인기를 끌다 보니 서양 회화에 등장하는 아기들에게는 ‘푸토’라는 귀여운 이름이 따로 붙게 됐다.

푸토(putto)는 엄밀히 말해 아기들 가운데 날개 달린 존재만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단순한 아기가 아니라 뭔가 신비롭고 영적인 존재인 것이다. 서양 회화에 등장하는 날개가 달린 아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천사와 에로스다. 푸토(복수는 ‘putti’이다)는 그러므로 기독교 문명과 그리스·로마 문명, 양대 수원지에 모두 젖줄을 대고 있다 하겠다.

푸토의 또 다른 이름이 아모레토(amoretto)인 것에서도 우리는 그 생성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아모레토는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r)를 어원으로 하는데, 사랑의 신 에로스의 라틴어 이름이 아모르다. 푸토의 어원은 라틴어 푸투스(putus)로, ‘작은 사람’을 뜻한다. 작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들이 푸토다.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 천사를 본 적이 없으니까.”

아기천사가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
이 말을 한 이는 19세기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다. 철저하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만 그린다는 그의 신조는 온갖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난무하는 기왕의 기독교나 신화 주제 그림을 퇴영적이고 허황된 것으로 만들었다. 과연 천사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천사가 있기는 한 걸까? 중요한 것은, 천사가 실재하는 존재든 상상의 창조물이든 천사만큼 우리에게 매혹적인 존재도 없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진 아기천사

천사의 특질은 우선 그가 ‘하늘의 사자’라는 것과,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는 존재라는 데 있다. 모든 문명에서 우리는 이런 천사나 천사와 유사한 존재에 대한 관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문화에서는 그 대표적인 존재가 선녀다. 무지개를 통로 삼아 하늘과 땅을 오가는 선녀는 일종의 신선이자 피안의 세상을 엿보게 하는 창구였다.

서양에서 천사의 역할이나 지위, 용모 따위가 나름대로 정리된 것은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중동 지방에 뿌리를 둔 종교를 통해서였다. 천사의 위계나 용모에 대한 관념에는 종교마다 다소간 차이가 있었지만, 천사가 신의 메신저와 수호신 구실을 한다는 데는 별다른 구별이 없었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하는 천사들은 보통 한 쌍의 날개를 단, 잘생긴 어른 남녀로 그려졌다. 그러나 서양미술은 이런 전형적이고 보편적인 천사상과는 다른 아기 천사상을 창조했다. 천사를 좀더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순화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비록 성경 어디에도 아기 천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아기 천사의 존재는 매우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나아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장 대표적인 천사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 아기 천사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부터다.

아기천사가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

프뤼동과 콩스탕스 마예, ‘아프로디테의 횃불’ 1808, 캔버스에 유채, 잘렌슈타인 나폴레옹 아레넨베르크 미술관.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티나의 마돈나’(1513년경)에서 우리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천사상을 만나볼 수 있다.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두 사람의 성인이 성모자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는 그림이다. 천사는 맨 아래쪽에서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 천진난만한 천사그림은 워낙 유명해 유럽의 달력이나 우편엽서, 관광상품 등에 단골로 이용되고 있다. 두 천사가 들어감으로써 ‘시스티나의 마돈나’는 매우 푸근하고 생기 넘치는 그림이 됐다. 만약 두 천사가 빠졌다면 이 그림은 거룩하고 경건한 느낌이 지나치게 강조돼 경직된 작품이 돼버렸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잊어버린 꼬마처럼 하느님의 심부름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가히 놀고 있는 천사로 인해 이 그림은 그만큼 넉넉하고 재미있는 그림이 됐다. 진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아기 천사는 어디를 가나 늘 평화와 행복을 안겨준다.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푸토의 또 다른 축인 에로스는 널리 알려져 있듯 사랑의 신이다. 로마신화에서 쿠피도(영어로 큐피드)라고 불리는 이 신은 아이라는 점에서 사랑의 불가측성, 과도한 몰입 따위를 드러내는 존재다. 제아무리 사랑의 광기가 잔인하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괴물 같은 신에게 사랑을 맡기지 않고 아기에게 맡긴 것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긍정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에로스의 소지물로 빈번히 그려지는 사랑의 횃불은 원래 아프로디테의 상징물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두 신은 횃불을 공유하게 됐다. 18세기 프랑스 화가 프뤼동이 콩스탕스 마예와 함께 그린 ‘아프로디테의 횃불’(1808년)을 보면, 아프로디테는 횃불을 든 채 앉아 있고 에로스 하나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조그만 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사랑의 횃불은 성화가 릴레이 되듯 에로스의 도움으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이어준다.
아기천사가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

부셰, ‘포로가 된 에로스’ 1754, 캔버스에 유채, 런던 월레스 컬렉션.

‘아프로디테의 횃불’에서 횃불 외에 우리의 주목을 끄는 다른 중요한 부분은 배경의 에로스들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표정과 제스처들이다. 맨 오른쪽의 에로스는 눈을 가린 채 지팡이를 짚고 걸어간다. 맨 왼쪽의 두 에로스는 사색을 하거나 고뇌에 잠겨 있다. 중앙 부분에는 매우 즐거워하는 에로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 에로스는 사랑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쁨과 고뇌 등 다양한 감정을 연기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에로스가 신화와 달리 남자아이뿐 아니라 여자아이로도 표현돼 있는 것이 이채롭다.

에로스 있는 곳은 늘 살갑고 사랑스런 분위기

이렇게 갖가지 사랑을 연출하고 부채질하다 보니 에로스는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일부 신들의 분노를 사 벌도 부지기수로 받았는데, 특히 처녀성을 소중히 여기는 아르테미스와 아테나 여신의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부셰가 그린 ‘포로가 된 에로스’(1754년)는 아르테미스의 님프들에게 붙잡혀 곤경에 빠진 에로스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뒤의 님프가 화살통을 빼앗고 있고, 오른쪽의 님프는 장미 다발로 에로스를 묶고 있다. 왼쪽의 처녀는 호기심에 겨워 에로스의 화살촉을 만져보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심각한 아픔을 자신에게 가져올지 그 처녀는 잘 모르고 있다. 이렇듯 적대적인 이들에게 잡혀 포로가 돼 있는 에로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우리는 진정한 갈등이나 분노 같은 것을 느낄 수 없다. 에로스가 있는 곳에는 왠지 늘 살갑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우리는 이 귀여운 장난꾸러기 푸토들을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간동아 528호 (p108~109)

이주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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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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