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2006.03.28

자유의 공기, 특별한 거리 그곳은 배낭여행 학교

  • 글·사진=박준 tibetian@freechal.com

    입력2006-03-27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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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블게릴라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1998년 결성됐으며 여행 관련 저서나 개인 홈페이지가 있어야만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30여 명의 회원들이 게릴라처럼 ‘따로 또 같이’ 여러 가지 여행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웹사이트(www.travelg.co.kr)를 운영하고 있으며,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100배 즐기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33-국내편’ 등 여러 권의 여행서적을 펴냈습니다. ‘트래블게릴라의 개성만점 배낭여행’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자유의 공기, 특별한 거리 그곳은 배낭여행 학교

    카오산 로드 전경.

    ‘카오산’은 무슨 산 이름이 아니다. 카오산 로드는 태국 방콕의 한 작은 거리 이름이다. 그런데 이곳은 외국인들로 가득 차 있다. 인종도 각양각색이다. 이들은 모두 전 세계에서 모여든 배낭여행자들이다. 하루 종일 거리 곳곳에 배낭여행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 이곳이 바로 카오산 로드다.

    처음 카오산에 왔을 때 배낭여행자들의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카오산 로드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질리기는커녕 소름 끼칠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더 큰 충격이 있다. 나는 일주일 휴가 내는 것도 어려웠는데 수개월, 1~2년씩 여행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카오산 로드와 그 주변 지역에는 수백 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하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찾아다니는 게스트하우스마다 방이 없다고 할 때 느끼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자, 그럼 카오산에 왔으니 거리 카페에 앉아 태국 맥주 ‘싱하’ 한 병 시켜놓고 오가는 사람 구경이나 해볼까?

    자유의 공기, 특별한 거리 그곳은 배낭여행 학교

    이곳에는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곳이 수없이 많다.

    수많은 배낭여행자들의 모습은 다 다르다. 나이, 국적, 외모, 인종…, 정말 다양하다. 짧은 검정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교복을 입은 늘씬한 태국 여대생들도 지나간다. 태국 젊은이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찾아 이곳으로 모여든다. 황색 조끼를 입은 오토바이 택시기사가 인도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를 태우고 내 앞을 스친다. 대여섯 살 어린아이를 목말 태운 부부 여행자도 있다. 마오쩌둥이나 체 게바라, 짐 모리슨이나 지미 헨드릭스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지나간다.

    삼륜차 택시인 ‘툭툭’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앉아 옆을 돌아보니, 서너 사람이 달라붙어 각양각색의 실과 머리카락을 섞어 땋아 레게 머리를 해주고 있다. 그 옆 가게에선 불법으로 복제된 최신 DVD나 음악 CD를 싼값에 팔고 있다. 맞은편엔 ‘We Buy Everything’이란 작은 입간판이 보인다. 그 옆에 온몸이 문신투성이인 남자가 의자 하나 놓고 여행자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사들이고 되팔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아열대 지방에 사는 그 친구, “한국 지금 겨울이지? 어제 스키 하나 들어왔는데 살래?”라고 묻는다.



    배가 고파 노점 식당으로 갔다. 저렴한 길거리 식당은 늘 후끈하게 북적거린다. 음식 종류도 참 많다. 음식에 관한 한 태국은 천국이다. 입맛도 우리에게 딱 맞는다. 500원 정도 하는 태국 볶음국수 ‘팟타이’는 여행자들이 빼먹지 않고 사먹는 메뉴. 거리 곳곳에 태국, 이스라엘, 인도, 일본, 한국 음식까지 전 세계 음식을 싼값에 맛볼 수 있는 수많은 레스토랑이 있다. 식사를 마치면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과일 셰이크나 생과일주스를 마신다. 얼음과 함께 비닐봉지에 담아 주는 펩시콜라를 마셔볼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카오산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의 공기, 특별한 거리 그곳은 배낭여행 학교
    밤이면 ‘수지펍’ 같은 방콕 최고의 클럽을 찾는 태국의 10대들이 카오산으로 몰려든다. 도로를 차지해버린 거리의 칵테일 바에서는 커다란 양동이에 담긴 칵테일을 빨대로 마신다. 길거리 보도블록 위에선 누군가의 생일파티가 열린다. 문 닫은 상점의 철제 셔터 위로 그림이, 옷가지가 여기저기 내걸린다. 맥주병을 손에 든 채 걸어가는 히피 스타일의 백인 커플과 얼굴 여기저기에 피어싱을 한 펑크족 태국 10대들이 마주 보며 지나간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에도 흥겹고 자극적이며 뜨거운 밥 말리의 음악이 끊이지 않는 곳. 카오산은 밥 말리의 음악과 가장 닮아 있다. 카오산 로드는 방콕의 한 거리지만 방콕이나 태국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다국적 문화는 카오산을 이렇게 특별한 거리로 만들었다. 그럼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그건 카오산이 여행자를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는 아주 기본적인 시설만 갖춘 값싼 여행자 숙소다. 카오산과 그 인근지역에만 대략 500개가 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값싼 비행기 티켓이나 기차, 버스표 등 갖가지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행사도 즐비하다. 도로변에서 버젓이 가짜 학생증이나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노점상과 물건 사듯 가격을 흥정하며 여행에 필요한 신분증을 만든다.

    세계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행 열정 가득

    자유의 공기, 특별한 거리 그곳은 배낭여행 학교

    태국의 대중교통 수단인 삼륜차 택시 ‘툭툭’.

    ‘카오산으로 가면 된다’는 말은 모든 여행자들에게 걸린 주문과 같다. 여행을 처음 나선 사람도, 수많은 나라를 여행한 사람도 여행에 필요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카오산으로 가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오산을 ‘여행자들의 메카’라고 부른다. 여행자의 천국 같은 특별한 거리, 그곳이 카오산 로드다.

    어딘가에서 떠나온 사람들, 어딘가로 떠날 사람들로 카오산은 늘 북적거린다. 카오산에서 여행은 일상이 된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성큼성큼 카오산 로드를 가로지르는 여행자들의 행렬은 카오산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풍경이다. 단지 거리에 앉아 오가는 여행자들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비행기를 탈 가치는 충분하다. 카오산에 오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살며,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카오산은 세계의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행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차 있는 곳이다. 내가 늘 카오산을 그리워했다면 그건 이곳에서 느껴지는 자유의 공기 때문이다.

    카오산에 오면 몇 달씩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그건 돈과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여행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오산에 오면 여행은 돈 많은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카오산은 배낭여행의 학교 같은 곳이다.

    Tips

    방콕국제공항에서 ‘A2’라는 번호의 공항버스를 타면 카오산까지 간다. 요금은 100바트(약 2500원). 택시를 타면 160~200바트 정도 나온다. 톨게이트를 두 번 지나는데 각각 30, 40바트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 카오산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도 많다. 그 외의 정보? 몰라도 된다. 당신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카오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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