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9

2018.05.23

커버스토리

“국가적 차원에서 발효음식 연구 필요한 때”

인터뷰 |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 입력2018-05-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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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사진 제공·전경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사진 제공·전경수]

    인류 역사는 발효음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각 나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저마다 고유한 특산물을 현지 자연환경에 맞게 발효시켜 먹은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치즈, 와인, 낫토, 요구르트 등 다양한 발효식품이 계승, 발전돼 지금까지도 각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발효음식

    중국 대표 발효술 ‘마오타이주’(왼쪽)와 일본 대표 음식 ‘스시’. [동아DB]

    중국 대표 발효술 ‘마오타이주’(왼쪽)와 일본 대표 음식 ‘스시’. [동아DB]

    우리나라도 김치, 된장, 간장, 막걸리, 식초 등 고유한 발효음식이 적잖다. 발효음식들을 보노라면 자연의 신비나 다름없는 발효에 대해 절로 궁금증이 생긴다. 인류의 발효음식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로부터 발효음식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 교수는 먼저 발효음식의 기원과 관련해 “언제 시작됐는지 현대 고고학적 기술로는 알 수 없다. 발효음식은 다양한 식물과 식품이 시간이 지나면서 썩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기에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식량으로 전환됐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전 교수는 일본의 식용 소철을 예로 들었다. 

    “소철은 주로 관상용으로 기르는 식물이지만, 비상시 소철 둥치를 식용으로 발효시켜 먹기도 합니다. 소철 둥치를 잘라내면 안에 파인애플처럼 생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갈면 전분이 많이 나와요. 17세기 일본 사쓰마번이 오키나와를 점령한 뒤 전리품을 뺏으려 했는데 돈도 없고 특산물도 마땅한 것이 없었죠. 그래서 고구마밭을 갈아엎은 뒤 사탕수수를 심어 설탕을 상납하게 했고, 그 탓에 오키나와 사람들의 주식이 사라졌어요. 대용식을 찾던 이들이 소철 둥치를 먹었는데 거기에 포르말린이 들어 있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그때 ‘소철지옥’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니까요. 이후 소철을 땅에 묻어 발효시키면 포르말린이 사라져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식용으로 먹기 시작했죠.” 

    또한 발효는 인류의 음식문화사적 관점에서 중대한 기능을 했다. 과거에는 지역마다 얻을 수 있는 식재료가 확연히 구분됐다. 해안가에서는 어패류, 평야에서는 곡물과 과일, 산지에서는 구황작물을 구할 수 있었고 요리법과 저장고, 교통 등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이러한 특산물들을 특정 시기 그 지역에서만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발효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7~8월 멸치가 그물 한가득 잡히는 날이 몇 주씩 이어지면 두 달 동안만 소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젓갈로 담그면 1년 동안 먹을 수 있으니 유통기간을 늘린 측면이 있습니다. 공간 확장 차원에서 보면 멸치를 내륙으로 운송할 때 생물 형태로는 멀리 가지 못하죠. 젓갈로는 더 먼 거리까지 운송이 가능하니 음식지도를 넓힐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러한 발효과학은 지역 특수성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독특한 발전 과정을 거쳤다. 특히 지역 특수성은 오늘날 각국의 대표 발효음식을 만들어냈다. 이는 그 지역의 온도와 습도가 발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 전 교수는 “중국은 마오타이주로 유명한데 여러 지역에서 만든다. 그런데 구이저우성 마오타이주 거리에 가면 입구부터 특유의 냄새가 진동한다. 그만큼 그 지역 골짜기의 습도와 온도 등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발효는 시간과 공간 확장하는 역할해

    역사적 상황에 따라 새로운 발효음식이 탄생하기도 한다. 일본 스시(초밥)는 처음 등장했을 때 지금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차고 넘치는 식재료인 물고기를 주로 소금에 절여 식해로 발효시켜 먹었다. 시큼한 식해를 밥 위에 얹어 먹은 것이 초창기 초밥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식해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었다. 

    “17세기만 해도 초밥은 식해를 밥에 얹어 먹는 형태였어요. 그런데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구가 150만 명으로 증가했어요. 당시 영국 런던이나 프랑스 파리도 50만 명이 안 됐을 때니 굉장히 많은 수였죠. 국가적 차원에서 인공 강을 만드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인공 강 주변에 평야를 만들면서 식량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덩달아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도 넘쳐나 식해로 초밥을 만들려니 수개월씩 걸리는 문제가 생겼죠. 그래서 발효식초를 이용한 거예요. 초를 바르고 생선을 올린 초밥은 그 시절 패스트푸드였어요.” 

    우리나라의 대표 발효음식인 김치는 그동안 정부 차원의 세계화 노력에 힘입어 한국을 알리는 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일본 스시나 베트남 쌀국수 등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음식에 비하면 아직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또한 김치 이외에 막걸리, 된장, 식초 등 우리만의 다양한 발효식품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전 교수는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발효에 관한 국가적 프로젝트 연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중국 구이저우성에는 특산물인 마오타이주를 연구하는 ‘발효와 술 대학’이 있어요. 지금이야 마오타이주가 세계적으로 인기지만, 과거에는 독특한 냄새 때문에 세계화하기에 어려웠죠. 대학에서 그 냄새를 어떻게 줄이느냐를 계속 연구한 거예요. 그 결과 1915년 파나마세계박람회에서 마오타이주가 금상을 받았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전통 발효음식의 세계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없어요.”

    AI와 발효를 결합한 연구 필요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발효음식이란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라고 정의했다(왼쪽). 발효식초는 여러 발효음식 가운데 우수성이 입증된 바 있다. 사진은 보성천연발효식초 옹기. [사진 제공·전경수, 동아DB]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발효음식이란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라고 정의했다(왼쪽). 발효식초는 여러 발효음식 가운데 우수성이 입증된 바 있다. 사진은 보성천연발효식초 옹기. [사진 제공·전경수, 동아DB]

    과거 인간은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문화 영역이 확장됐고, 자연과 문화 사이에 인간의 삶이 자리 잡아 역사를 이뤘다.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소재가 발효음식이다. 현재 완성형처럼 보이는 발효음식도 꾸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전 교수는 그러한 노력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가 다양한 영역으로 파고드는 시대가 됐어요. 그런데 AI가 맛을 알까요? 성분을 분석하고 레시피를 만드는 일은 할 수 있겠지만 맛을 느끼고 표현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죠. 기계적으로 음식을 맛 하나로 통일해갈 수는 없으니까요. 앞으로 AI와 발효를 결합하고 발현하는 과제가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음식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학계와 관련 업계도 이에 공감해 다양한 연구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6월 22~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되는 ‘2018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에서는 국내 전통발효식초와 기업 제조식초를 접할 수 있다. 이번 식초문화대전에서는 발효식초와 관련해 대규모 학술대회인 ‘식초 문화 콘퍼런스’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전 교수는 ‘구극의 발효식품, 우위(牛胃) 즙장 : 중국 귀주 동족의 비에()’를 주제로 발표한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음식에 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식초 문화 콘퍼런스가 열리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콘퍼런스를 기점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차원의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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