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중심지 워싱턴이 잇따른 정치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동의 유혈사태가 원인이다. 10만명이 참가한 친(親)이스라엘 대중집회가 열린 바로 닷새 뒤 다시 10만명의 군중이 반(反)이스라엘 집회를 열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유혈극에 대한 전 세계적 비판에서 비롯된 위기의식을 떨치려 친이스라엘 집회가 열렸다면, 지난 4월20일 열린 대규모 반전(反戰) 집회는 정반대 성격을 지녔다. 팔레스타인에서의 학살을 샤론의 전쟁범죄 행위로, 부시를 그 방조자로 성토했다.
“걸프전 이래 워싱턴에서 열린 반전 군중집회로는 가장 큰 규모다.” 워싱턴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광장에서 열린 이 집회를 두고 미국 내 부시 비판 세력이 내린 평가다. 집회 참가자는 약 10만명(경찰 추산은 5만명). 백악관 바로 코 앞에서 열린 집회의 열기는 대단했다. 한국의 대규모 군중집회에 익숙한 필자조차 놀랄 정도였다. 참가자 가운데 많은 이들이 뉴욕,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 미 동부지역 도시에서 한밤중에 출발한 버스를 타고 왔다. 새벽 5시 뉴욕을 출발한 버스에서 필자의 옆자리에 앉은 뉴욕시립대 학생 피터 맥라이언(21)은 샤론을 히틀러에 빗댄 피켓이 행여 망가질세라 워싱턴에 도착할 때까지 5시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시위마다 10만명 운집 ‘열기 고조’
집회 군중은 백악관의 부시 대통령이 들으라는 듯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미국학생협회(USSA) 회장 줄리아 베티는 연단에서 이렇게 외쳤다. “해마다 이스라엘에 주는 20억 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중단하고 대신 우리 학생들을 위해 교육예산을 늘릴 것을 부시에게 요구한다.” 일부 젊은이들은 ‘제닌=아우슈비츠’(Jenin=Auschwitz)라는 문구를 넣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우슈비츠는 1942∼45년 유대인 100만명이 나치에 의해 살해된 곳이다.
집회엔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학살 중지’를 요구했다. 디트로이트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는 가산 무하마드(32)는 팔레스타인 제닌에서의 유혈 비극에 항의하며,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 사진을 들고 “샤론은 학살자”라고 외쳤다. 그는 사촌 한 명이 이번 사태로 사망했다며 “샤론은 국가 테러리스트”라고 규탄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에서 살다 왔다는 한 소녀(16)도 연사로 등장해 통역을 사이에 두고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샤론과 부시가 어떤 차이를 지녔는지 모르겠다. 난민수용소를 공격하는 병사들은 이스라엘군이지만, 그들이 손에 쥔 것은 미제 무기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미국이 이스라엘에 F-16과 탱크, 아파치 헬기를 공급해 우리를 죽고 다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 인디언 권익옹호 단체인 미국인디언운동(AIM) 지도자 베르논 벨로코트(79)도 연단에 섰다. 그는 “미국 인디언들이 대대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 ‘보호구역’이란 황무지로 쫓겨간 역사가 오늘날 중동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발언해 갈채를 받았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단한 처지를 두고 한 말이다.
샤론의 강공책에 비판적인 일부 유대인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뉴욕의 유대인들은 샤론의 강공책과 부시의 이스라엘 편향 정책에 비판적이다. 필자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일지라도 정치적 태도는 진보적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두꺼운 털모자를 쓴 유대교 랍비들도 있었다.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정통 유대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피켓은 ‘유대주의 예스, 시오니즘 노’(Judaism Yes, Zionism No). 뉴욕에서 왔다는 한 랍비는 “종교는 양심의 표현이다. 이스라엘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닷새 전 이곳 워싱턴에서는 약 10만명의 유대인 시위자가 모여 “아라파트는 테러 수괴”라는 구호를 외쳐댔었다. 이들은 미국 각지에서 전세 비행기를 타고 온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샤론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옹호하며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맥락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친이스라엘 집회에는 부시 행정부의 매파로 알려진 유대인 출신의 폴 월포위츠 국방차관이 찬조 연사로 참석, 부시 정권의 친이스라엘 입장을 그대로 드러냈다. 콜린 파월이 중동에 머물던 시각, 월포위츠는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이스라엘 편에 서려고 여기 모였다.” 이 말은 라말라 집무실에 갇힌 아라파트에게는 “나를 포함한 미국 정부는 샤론을 지지한다”는 말로 비쳐졌다. 이 친(親)샤론 집회에는 민주당 리더인 리처드 게파트를 비롯해 수십명의 민주-공화 양당 현역 정치인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반이스라엘 집회에는 부시 행정부의 그 누구도 얼씬대지 않았다. 반면 2시간쯤 진행된 집회의 마지막에 등단한 민주당 소속 여성 하원의원 신시아 메키니는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메키니 의원은 하원에서 9ㆍ11 테러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미국이 왜 공격받았는지 그 배경을 조사하자고 발언해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바 있다. 그는 “부시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이 오늘 같은 비극을 낳았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미 의회의 친이스라엘 분위기에 관한 한 민주-공화당은 큰 차이가 없다. 이런 현상은 특히 9ㆍ11 테러사건을 겪은 뒤 더 심해졌다. 이로 인해 민주당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걸프전 이래 워싱턴에서 열린 반전 군중집회로는 가장 큰 규모다.” 워싱턴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광장에서 열린 이 집회를 두고 미국 내 부시 비판 세력이 내린 평가다. 집회 참가자는 약 10만명(경찰 추산은 5만명). 백악관 바로 코 앞에서 열린 집회의 열기는 대단했다. 한국의 대규모 군중집회에 익숙한 필자조차 놀랄 정도였다. 참가자 가운데 많은 이들이 뉴욕,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 미 동부지역 도시에서 한밤중에 출발한 버스를 타고 왔다. 새벽 5시 뉴욕을 출발한 버스에서 필자의 옆자리에 앉은 뉴욕시립대 학생 피터 맥라이언(21)은 샤론을 히틀러에 빗댄 피켓이 행여 망가질세라 워싱턴에 도착할 때까지 5시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시위마다 10만명 운집 ‘열기 고조’
집회 군중은 백악관의 부시 대통령이 들으라는 듯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미국학생협회(USSA) 회장 줄리아 베티는 연단에서 이렇게 외쳤다. “해마다 이스라엘에 주는 20억 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중단하고 대신 우리 학생들을 위해 교육예산을 늘릴 것을 부시에게 요구한다.” 일부 젊은이들은 ‘제닌=아우슈비츠’(Jenin=Auschwitz)라는 문구를 넣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우슈비츠는 1942∼45년 유대인 100만명이 나치에 의해 살해된 곳이다.
집회엔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학살 중지’를 요구했다. 디트로이트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는 가산 무하마드(32)는 팔레스타인 제닌에서의 유혈 비극에 항의하며,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 사진을 들고 “샤론은 학살자”라고 외쳤다. 그는 사촌 한 명이 이번 사태로 사망했다며 “샤론은 국가 테러리스트”라고 규탄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에서 살다 왔다는 한 소녀(16)도 연사로 등장해 통역을 사이에 두고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샤론과 부시가 어떤 차이를 지녔는지 모르겠다. 난민수용소를 공격하는 병사들은 이스라엘군이지만, 그들이 손에 쥔 것은 미제 무기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미국이 이스라엘에 F-16과 탱크, 아파치 헬기를 공급해 우리를 죽고 다치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 인디언 권익옹호 단체인 미국인디언운동(AIM) 지도자 베르논 벨로코트(79)도 연단에 섰다. 그는 “미국 인디언들이 대대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 ‘보호구역’이란 황무지로 쫓겨간 역사가 오늘날 중동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발언해 갈채를 받았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단한 처지를 두고 한 말이다.
샤론의 강공책에 비판적인 일부 유대인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뉴욕의 유대인들은 샤론의 강공책과 부시의 이스라엘 편향 정책에 비판적이다. 필자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일지라도 정치적 태도는 진보적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두꺼운 털모자를 쓴 유대교 랍비들도 있었다.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정통 유대인’을 자처하는 이들의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피켓은 ‘유대주의 예스, 시오니즘 노’(Judaism Yes, Zionism No). 뉴욕에서 왔다는 한 랍비는 “종교는 양심의 표현이다. 이스라엘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닷새 전 이곳 워싱턴에서는 약 10만명의 유대인 시위자가 모여 “아라파트는 테러 수괴”라는 구호를 외쳐댔었다. 이들은 미국 각지에서 전세 비행기를 타고 온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샤론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옹호하며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맥락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 친이스라엘 집회에는 부시 행정부의 매파로 알려진 유대인 출신의 폴 월포위츠 국방차관이 찬조 연사로 참석, 부시 정권의 친이스라엘 입장을 그대로 드러냈다. 콜린 파월이 중동에 머물던 시각, 월포위츠는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이스라엘 편에 서려고 여기 모였다.” 이 말은 라말라 집무실에 갇힌 아라파트에게는 “나를 포함한 미국 정부는 샤론을 지지한다”는 말로 비쳐졌다. 이 친(親)샤론 집회에는 민주당 리더인 리처드 게파트를 비롯해 수십명의 민주-공화 양당 현역 정치인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반이스라엘 집회에는 부시 행정부의 그 누구도 얼씬대지 않았다. 반면 2시간쯤 진행된 집회의 마지막에 등단한 민주당 소속 여성 하원의원 신시아 메키니는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메키니 의원은 하원에서 9ㆍ11 테러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미국이 왜 공격받았는지 그 배경을 조사하자고 발언해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바 있다. 그는 “부시의 친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이 오늘 같은 비극을 낳았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미 의회의 친이스라엘 분위기에 관한 한 민주-공화당은 큰 차이가 없다. 이런 현상은 특히 9ㆍ11 테러사건을 겪은 뒤 더 심해졌다. 이로 인해 민주당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