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의 기초학문 분야가 온통 들썩이고 있다. 지난 2월 정부가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재단)을 통해 기초학문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12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각 대학의 인문·사회과학 계열 시간강사들이 프로젝트를 마련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것.
연구 과제에 참여하는 인원에 따라 2억원에서 10억원까지 지원하고, 박사학위 취득자 중 우수 연구자 150명을 선발해 1인당 연봉 30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인 이번 사업은 기초학문 부문에서 볼 수 없던 유례없는 정책이다. 때문에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에 의존해야 했던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각 대학 부설연구소마다 2∼3개씩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 지방대학의 경우 필요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K대 전임강사(철학) 이모씨(40)는 “자격이 될 만한 인력은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상태”라며 “지방대학에서 오래 강의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정해 가며 겨우 인원 수를 채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2000년 10월 말 현재 국내의 박사학위 소지 실업자 수는 1만6000여명.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1995년 이후 박사과정에 들어간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2001년에서 2006년까지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4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사 실업난이 이처럼 심각한 가운데 교육부 산하 연구지원단체인 재단에서는 그동안 학술연구 지원사업의 형태로 박사 실업 해소에 기여하고자 했다.
지난해 박사 후 연수과정 지원을 통해 월 125만원씩 연간 200여명에게 혜택이 돌아갔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부설연구소 소속 전임 연구교수 200여명에게 월 200만원을 지원했다. 또 중점연구소 지원을 받는 전국 70여개 연구소의 전임교수나 전임연구원의 형태로 월 180만원 정도의 급여를 보장했다. 지난해 지원된 금액은 600억원. 올해 예산은 총 2153억원으로 작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이중 1200억원은 기초학문 육성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 기초학문에 대한 학계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대규모 지원사업이 궁극적으로 박사 실업문제를 해소하고, 우수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박사학위 소지 시간강사, 연구원, 교수들은 이번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 육성사업에 대해 ‘`빈민구제책’ ‘`사회보장제도’ ‘`시혜’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서울·경기 지역의 3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시간강사(서양사학) A씨는 “이번 지원사업을 놓고 동료들 사이에서 정부가 정권 말기에 눈먼 돈을 풀어 선심을 베풀려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돈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오가는 것은 그동안 박사 실업자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궁극적으로 기초학문을 육성하기보다 박사 실업문제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비춰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유례없는 대규모 사업이다 보니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심사 과정에서 걸러지겠지만 몇 개월 만에 만들어내는 급조된 프로젝트도 많다. 심지어는 2∼3일 만에 뚝딱 연구계획서를 만들어내는 것도 보았다.” 중점연구소 지원을 받아 연구교수로 있는 김모씨(41)의 말이다.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이승열 교수(영문학)는 “학계에서는 이번 지원사업이 인문학 지원 정책의 물꼬를 트는 것이라며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물적인 공세로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은 졸속행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칫 두뇌한국(BK)21 사업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지원사업과 관련한 공청회에 참석했던 이교수는 “정책적 여론수렴과 결정부터가 일부 소수 대학 관계자들에 국한되어 있다”며 “이번 사업이 인맥과 학맥에 따라 나눠먹기를 반복하고, 지방대를 소외시키지는 않을까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국가 재정의 적지 않은 부분을 할애하는 대규모 지원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원대상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재단의 지원을 받으면 연수가 끝난 뒤 6개월 이내에 연구보고서를 제출하고, 이후 다시 1년6개월 내에 연구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도록 되어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재단에 따르면 매년 연수자들의 10∼20%가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원금을 받는 연수 기간이 끝난 뒤 재단에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고 외국으로 떠나는 일도 있다. 재단의 연구기반조성부장 권길화씨는 “지금까지 지원 대상자들에 대한 관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5개월마다 연구과정을 보고하고, 매달 책임교수가 연수자의 연구 진행 상황을 확인하며 연구비를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연수 종료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시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1~2년 단위로 소수에게 지원하는 단발성 사업보다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해 안정된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1999년부터 1년 동안 연수과정 지원금을 받았고, 현재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서어서문학)로 있는 S씨는 “재단의 지원을 받게 되면 일시적으로나마 고정 수입이 보장되고, 강의도 하나만 할 수 있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으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재단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할 경우 해당 연구소나 학교에서 책상은 제공하지만 실질적인 연구 여건은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1∼2년 단위로 머물게 되는 대학 입장에선 재단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가 뜨내기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한 대학의 중점연구소 전임교수(불문학)로 있는 B씨도 “현재의 단발성 지원 형태로는 이력서에 한 줄 끼워 넣을 경력을 추가할 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연구소나 학교에서 전임인력으로 흡수해 액수가 좀 적더라도 월 고정 급여가 있고, 의료보험 혜택 등 행정적으로 신분 보장을 해주는 게 실질적인 연구환경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제안했다.
전남대학교 연구원(한국사학) 김병인씨는 “번역이나 해석이 안 된 고문서들이 수두룩한 상태에서 개별 논문만 양산할 게 아니라 우수 연구 인력들이 규장각 고문서 등을 번역하게 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기초학문 연구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후세대의 학문연구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센터 진미석 소장은 “박사 실업문제는 심각한 상태지만 국가가 모든 고용을 창출해야 할 책임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진로 지도나 직업 전망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해 박사학위자를 과잉 배출했다는 점에서 일부 책임은 있다. 그러나 박사학위자들이 아카데미로 흡수되기만 고집하거나, 일반 기업체에서 30세 이상의 고급 인력을 신입사원으로 기용할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며 “정부가 대규모 지원사업으로 일시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고육지책”이라고 지적했다. 진소장은 “박사 실업 해소 및 지원 정책은 단순 실업문제와 달리 `고급 인적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경제 논리에 휩쓸려 위기에 처한 기초학문을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기초학문 육성사업.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학계에 생색이나 한번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규모 지원금이 좀더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연구 과제에 참여하는 인원에 따라 2억원에서 10억원까지 지원하고, 박사학위 취득자 중 우수 연구자 150명을 선발해 1인당 연봉 30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인 이번 사업은 기초학문 부문에서 볼 수 없던 유례없는 정책이다. 때문에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에 의존해야 했던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각 대학 부설연구소마다 2∼3개씩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 지방대학의 경우 필요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K대 전임강사(철학) 이모씨(40)는 “자격이 될 만한 인력은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상태”라며 “지방대학에서 오래 강의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정해 가며 겨우 인원 수를 채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2000년 10월 말 현재 국내의 박사학위 소지 실업자 수는 1만6000여명.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1995년 이후 박사과정에 들어간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2001년에서 2006년까지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4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사 실업난이 이처럼 심각한 가운데 교육부 산하 연구지원단체인 재단에서는 그동안 학술연구 지원사업의 형태로 박사 실업 해소에 기여하고자 했다.
지난해 박사 후 연수과정 지원을 통해 월 125만원씩 연간 200여명에게 혜택이 돌아갔고,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부설연구소 소속 전임 연구교수 200여명에게 월 200만원을 지원했다. 또 중점연구소 지원을 받는 전국 70여개 연구소의 전임교수나 전임연구원의 형태로 월 180만원 정도의 급여를 보장했다. 지난해 지원된 금액은 600억원. 올해 예산은 총 2153억원으로 작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이중 1200억원은 기초학문 육성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 기초학문에 대한 학계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대규모 지원사업이 궁극적으로 박사 실업문제를 해소하고, 우수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박사학위 소지 시간강사, 연구원, 교수들은 이번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 육성사업에 대해 ‘`빈민구제책’ ‘`사회보장제도’ ‘`시혜’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서울·경기 지역의 3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시간강사(서양사학) A씨는 “이번 지원사업을 놓고 동료들 사이에서 정부가 정권 말기에 눈먼 돈을 풀어 선심을 베풀려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돈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오가는 것은 그동안 박사 실업자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궁극적으로 기초학문을 육성하기보다 박사 실업문제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비춰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유례없는 대규모 사업이다 보니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심사 과정에서 걸러지겠지만 몇 개월 만에 만들어내는 급조된 프로젝트도 많다. 심지어는 2∼3일 만에 뚝딱 연구계획서를 만들어내는 것도 보았다.” 중점연구소 지원을 받아 연구교수로 있는 김모씨(41)의 말이다.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이승열 교수(영문학)는 “학계에서는 이번 지원사업이 인문학 지원 정책의 물꼬를 트는 것이라며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물적인 공세로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은 졸속행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칫 두뇌한국(BK)21 사업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지원사업과 관련한 공청회에 참석했던 이교수는 “정책적 여론수렴과 결정부터가 일부 소수 대학 관계자들에 국한되어 있다”며 “이번 사업이 인맥과 학맥에 따라 나눠먹기를 반복하고, 지방대를 소외시키지는 않을까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국가 재정의 적지 않은 부분을 할애하는 대규모 지원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원대상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재단의 지원을 받으면 연수가 끝난 뒤 6개월 이내에 연구보고서를 제출하고, 이후 다시 1년6개월 내에 연구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도록 되어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재단에 따르면 매년 연수자들의 10∼20%가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원금을 받는 연수 기간이 끝난 뒤 재단에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고 외국으로 떠나는 일도 있다. 재단의 연구기반조성부장 권길화씨는 “지금까지 지원 대상자들에 대한 관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5개월마다 연구과정을 보고하고, 매달 책임교수가 연수자의 연구 진행 상황을 확인하며 연구비를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연수 종료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시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1~2년 단위로 소수에게 지원하는 단발성 사업보다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해 안정된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1999년부터 1년 동안 연수과정 지원금을 받았고, 현재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서어서문학)로 있는 S씨는 “재단의 지원을 받게 되면 일시적으로나마 고정 수입이 보장되고, 강의도 하나만 할 수 있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으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재단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할 경우 해당 연구소나 학교에서 책상은 제공하지만 실질적인 연구 여건은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1∼2년 단위로 머물게 되는 대학 입장에선 재단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가 뜨내기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한 대학의 중점연구소 전임교수(불문학)로 있는 B씨도 “현재의 단발성 지원 형태로는 이력서에 한 줄 끼워 넣을 경력을 추가할 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연구소나 학교에서 전임인력으로 흡수해 액수가 좀 적더라도 월 고정 급여가 있고, 의료보험 혜택 등 행정적으로 신분 보장을 해주는 게 실질적인 연구환경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제안했다.
전남대학교 연구원(한국사학) 김병인씨는 “번역이나 해석이 안 된 고문서들이 수두룩한 상태에서 개별 논문만 양산할 게 아니라 우수 연구 인력들이 규장각 고문서 등을 번역하게 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기초학문 연구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후세대의 학문연구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센터 진미석 소장은 “박사 실업문제는 심각한 상태지만 국가가 모든 고용을 창출해야 할 책임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진로 지도나 직업 전망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해 박사학위자를 과잉 배출했다는 점에서 일부 책임은 있다. 그러나 박사학위자들이 아카데미로 흡수되기만 고집하거나, 일반 기업체에서 30세 이상의 고급 인력을 신입사원으로 기용할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며 “정부가 대규모 지원사업으로 일시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고육지책”이라고 지적했다. 진소장은 “박사 실업 해소 및 지원 정책은 단순 실업문제와 달리 `고급 인적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경제 논리에 휩쓸려 위기에 처한 기초학문을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기초학문 육성사업.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학계에 생색이나 한번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규모 지원금이 좀더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