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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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탈출! 북촌에 살어리랏다”

‘전통의 멋’ 찾아 한옥마을에 새 둥지 붐 … 최근 가격 급등 속 ‘투기’ 지적도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09-18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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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탈출! 북촌에 살어리랏다”
    사진작가 K씨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자리한 낡은 한옥(대지 43평)을 평당 1100만원이란 높은 가격에 구입했다. 그가 5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치르면서까지 상권 좋은 강남이 아닌 이곳을 택한 까닭은 삼청동 인근에 갤러리들이 몰려 있어 정보 교환하기가 쉽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옛 정취가 묻어나는 한옥에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을 넘긴 L씨는 강남에서만 20년을 살아왔다. 이제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 8학군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청계천 복원 소식에 귀기울여왔던 그는 과감하게 종로구 가회동의 널찍한 한옥 한 채를 매입했다. 7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을 현대식 주거공간으로 바꾸는 3개월 간의 리모델링 공사에 1억원 이상을 들이며 정성을 쏟았다. “답답한 아파트에서 찌들어 살았는데 이제는 마당 있는 집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그는 어린 시절 살던 종로에서 다시 살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통화랑·유명 출판사들도 속속 입주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는 나무대문, 환한 빛깔을 뽐내는 듬직한 적송기둥, 창호지 바른 격자무늬 창, 하늘이 보이는 툇마루에 아기자기한 정원까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에 적잖게 남아 있던 주거형 한옥은 현대화에 밀려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언론과 문화계 인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려하게 부활한 곳이 바로 900여채의 한옥이 몰려 있는 서울 북촌(北村) 한옥마을이다. 앞서 언급한 한옥들은 2년 전만 하더라도 평당 400만~500만원 선, 목 좋은 대로변이라도 평당 700만원을 넘지 않던 대표적 저개발지구였다. 주민들은 점차 슬럼화하는 마을 현실에 자신감을 잃고 건축업자에게 땅을 넘기면서까지 한옥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제는 북촌을 떠나지 않겠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새 한옥 가격은 두 배 가까이 폭등했고 법원경매 낙찰률은 서울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2년간 북촌은 놀랄 만큼 빠르게 변모했다.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통학로에 지나지 않던 좁은 옛 골목길은 이제 문화예술인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전통화랑과 유명 출판사들로 채워졌다. 대학교수 및 문화계 인사들이 앞 다투어 몰려왔고, 모던한 양식을 뽐내는 근사한 한옥들이 생겨났다. 마을의 품격이 높아지자 땅값은 자연스레 상승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북촌 바람에 거품이 끼여 있으며 장기적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경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과연 북촌은 살기 좋은 주거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아니면 투기꾼들로 채워진 한옥 전시장으로 남을 것인가.



    사대문 안에서 북으로 북한산 자락, 남으로 종로통을 두고 동서로 경복궁과 창덕궁을 둔 아늑한 주거공간인 북촌. 안국동 가회동 원서동 재동 계동 등에 군집을 이뤄 남아 있는 옛 양반들의 거처가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부각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북촌으로 쏠리고 있다. 인사동이 상업화의 물결을 견뎌내지 못하고 술집과 카페 골목으로 바뀐 뒤 이런 관심이 더욱 커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서울시가 마련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844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북촌 가꾸기 사업’은 현재 300여억원을 사용하면서 북촌의 미래를 바꿔놓았다. 1차 사업 목표는 주거환경 개선. 20세기 초에 지어져 쇠락해온 한옥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서울시가 북촌에 마련한 현장사무소 격인 ‘북촌문화센터’에 가면 지난 3년간의 이곳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서울시 주택국 최홍규 주임은 “서울시가 마련한 한옥등록제, 개보수 공사비 지원, 한옥 매입과 활용 등 세 가지 정책이 어울리면서 북촌이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탈출! 북촌에 살어리랏다”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한옥 모텔 ‘서울게스트하우스’의 아늑한 안뜰. 현재 원거주민들이 급속하게 북촌을 떠나면서 한옥 매물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 가회동과 계동 골목에는 북촌문화거리 탐방로 조성공사가 한창이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결과적으로는 서울시가 뿌린 종자돈이 큰 역할을 했다. 서울시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한옥을 매입해 중요무형문화재에게 장기 임대하는 식으로 북촌을 전통 문화인들의 거리로 부각시켰다. 900여채에 이르는 일반 한옥에 대한 보상도 개별적으로 실시됐다. 재건축비의 3분의 2, 최대 3000만원까지 지원되는 공사지원금은 250여 가구가 한옥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계기가 됐다. 옛길 정비, 주차장 확보, 복잡한 전신주 정비 등 서울시가 해야 할 일들도 차분히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를 측면에서 지원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지역주민들의 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북촌문화포럼’(대표 김홍남) 소속 인사 등 전통문화와 직·간접으로 연계된 지식인들은 1990년대 인사동 붐을 조성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로 서울시를 압박하면서 북촌 되살리기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또 다양한 학술행사를 개최해 북촌에 문화적 상징성을 부여해갔다.

    북촌 한옥의 가치를 따질 때에는 특별히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현재 북촌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한옥은 1920년대를 전후해 지어지거나 개축된 건물이다. 대출받기 위해 은행을 찾아도 잔존가치가 ‘0’원에 불과한, 그야말로 낡은 목조건물일 뿐이다. 그러나 한옥에는 ‘한옥’의 가치가 따로 있다.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은 크기와 위치뿐만이 아니다. 한 건축가는 “북촌 한옥은 은행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가치를 인정받는 유일한 주거형태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떤 집 나무재료에는 전부 최고급 옷칠이 돼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품격을 자랑한다. 북촌의 대표격인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이나 인촌 김성수 선생 저택 같은 역사적 가치를 가진 한옥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한옥까지도 적지 않은 내력을 품고 있다.

    현재 평당 가격은 600만~1600만원까지 다양하다. 큰길에 접근성이 좋고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지하철역(안국역)이 가까워 인사동 상권에 편입된 지역이라면 단연코 최상급이다. 여기서 한두 가지가 빠지면 상급이다. 이런 입지조건에는 못 미치지만 대지가 넓고 건물이 수준급이라면 중급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물건들은 이미 용도가 정해져 있다. 안국역에서 멀리 떨어져 상권이 형성되지 못하는 데다 학생들 때문에 번잡스럽다면 가치는 자연스레 떨어진다. 가장 나쁜 경우는 크기도 작고 접근성이 확연하게 떨어지는 뒷골목에 자리한 작은 한옥들이다.

    문제는 지가가 상승하면서 실수요자가 아닌 전문 투기꾼들과 강남의 큰손들이 투자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 같은 투기 바람은 지식인들과 문화예술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혹의 시선도 존재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인사들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한옥은 겨울에는 너무 추워요. 한옥에 살면서 좋은 시기는 5월부터 9월까지뿐이에요. 영하 10℃에 외부 화장실에 갈 생각을 해보세요. 기름값도 적지 않게 들고….”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모텔인 ‘서울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미자씨는 한옥의 불편함에 대해서 이렇게 토로한다. 실제로 전통한옥에 대한 환상을 갖고 이곳을 택한 몇몇 유명인사 가운데는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아파트로 돌아간 사람도 적지 않다. 겨울철 난방은 물론이고 화장실, 주차, 쓰레기 문제 등 실제로 한옥에 살아보면 불편함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문제는 집을 구입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붕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 이 공사에는 1억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서울시의 지원금은 30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울시가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900여채나 되는 집의 수리비를 전액 지원하거나 전부 매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좋은 집을 제외한 작은 한옥 주인들로서는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세대주택이나 빌라로 고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난방·화장실 등 불편 … 적응 쉽지 않아

    현재 19만평에 이르는 북촌에 남아 있는 900여채의 한옥 가운데 대지면적 33평 이하의 한옥이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이들 한옥 주인들은 리모델링비를 구하지 못해 철거 신청을 하고 있다. 대대로 가회동에서 살아온 김수자 할머니는 “지난 50년간 정부에 속아 살아왔다”면서 “서울시가 공시지가가 아닌 시가에 매입해준다면 당장에라도 떠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탈출! 북촌에 살어리랏다”

    북촌 주요 사적지(자료제공:서울시 북촌문화센터 http://hanok.seoul.go.kr)

    초기부터 북촌 가꾸기 사업에 참여해온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정석 박사는 거품론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땅값이 오른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제 가치를 인정받아야 자기 집을 아끼고 오래 살려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북촌 거주자들 또한 투기바람이니, 거품이니 하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과거 ‘한옥보존지구’로 묶여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높은 땅값은 북촌에 이롭지 못하다는 전망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인사동에 근거를 둔 문화인들은 근대화 이후 소외됐던 북촌을 재발견해 인사동을 버리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삼청동과 가회동은 제2의 인사동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인사동의 높은 땅값을 피해 도망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업지구인 인사동의 땅값은 평당 4000만원에 육박한다. 현재 인사동에서 거주용으로 쓰이는 집은 단 3채에 불과할 정도로 철저하게 술집 거리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현상이 벌써부터 북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주택전문가의 말이다.

    “정독도서관 앞쪽과 총리공관 앞 삼청동은 이미 인사동의 폐해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투기꾼들이 몰리면서 땅값만 상승시켜 놓아 결국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책적 문제들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삶의 인프라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촌이라는 이름만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관광지화하면서 주민들의 안락한 삶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 북촌의 한 주민은 “짜증날 정도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이제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주거지역인 북촌은 현재 자그마한 상점들과 주거용 빌라, 그리고 고색창연한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걷거나 살고 싶은 동네다. 그러나 북촌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서울시가 잠시 관심을 늦추는 사이에 북촌 가꾸기 사업은 형식에 그치고 있고 주민 사이에는 집을 높은 가격에 팔고 떠나려는 심리가 팽배해졌다. 집값 비싼 동네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고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한 북촌 주민의 충고를 서울시가 귀기울여야 할 시점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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