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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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2년 … 월가 지도가 바뀐다

금융회사들 엑소더스로 맨해튼의 빈 사무실 15% 달해 … 뉴욕증권거래소도 이전 검토

  • 뉴욕 = 김인영/ 서울경제신문 특파원 inkim@koreatimes.com

    입력2003-09-18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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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2년 … 월가 지도가 바뀐다

    뉴욕 맨해튼 남단에 위치한 월가의 전경.

    뉴욕 맨해튼을 하나의 거대한 배라고 한다면, 남단에 자리잡았던 100여 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두 동은 선수(船首)의 깃대와 같았다. 34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중간 깃대, 40~60가 미드 맨해튼의 마천루 군(群)은 맨해튼호의 중심 돛대를 이루었다. 선수의 두 깃대가 2년 전 붕괴된 후 맨해튼호의 금융거래 중심도 이동하고 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년이 흐른 지금, ‘그라운드 제로’ 현장엔 수십m 깊이의 거대한 구덩이가 패어 있고 주변엔 한국의 휴전선에서나 볼 수 있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미국이 아직도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이 피폭지점은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무역센터 주변에 있었던 건물은 여전히 복구공사가 진행중이다. 두 블록 건너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 빌딩 정도가 정상 영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테러로 월가 절반이 무너진 셈

    2년 전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대한 테러 공격은 세계 질서를 바꾸었고 미국과 세계 경제를 침체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현재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의 지도가 바뀌는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테러 전에 맨해튼 남단에 몰려 있던 금융기관들이 맨해튼 중부인 40~60가 또는 허드슨강 건너 뉴저지주 쪽으로 옮겨가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점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월가(Wall Street)’란 지리적으로 뉴욕 맨해튼 남단을 지창하는 거리 이름이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 지류인 이스트강, 서쪽으로는 1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트리니티 성당에 이르는 500m 남짓 되는 거리다. 이 짧은 거리 주변에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뉴욕 연방준비은행, JP 모건, 골드만 삭스 등의 건물들이 들어서 세계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월가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서쪽 지역에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었다. 고유명사인 ‘월스트리트’가 25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금융중심지라면, 1973년에 준공돼 28년 만에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는 글로벌 단일 시장이 형성된 시대에 조성된 ‘새로운 월가’를 의미했다. 9·11 테러로 인해 월가의 절반이 무너진 셈이다.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다가 참사를 당한 회사들은 테러 이후 대부분 미드 맨해튼으로 이사했다. 굴지의 금융회사인 모건 스탠리는 50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으로, 리먼 브라더스와 뮤추얼 펀드 회사 오펜하이머, 채권회사 캔터 피츠제럴드도 40가와 60가 사이로 사무실을 옮겼다.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테러 1주년을 맞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던 548개 회사 가운데 52.4%인 288개사가 미드 맨해튼으로 이동했고, 15.7%인 86개사가 월가 근처의 로어 맨해튼으로 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테러 2년 … 월가 지도가 바뀐다

    월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뉴욕증권거래소 역시 월가를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건너간 회사들이 로어 맨해튼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월가가 좁은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테러 위협을 당하면서 굳이 로어 맨해튼에 굳이 사무실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월가는 상업 중심지로 출발했다. 영국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유럽에서 수입한 모피, 담배를 이곳에서 거래했다. 독립 후엔 미국인들이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서 독립전쟁 채권을 매매하다가 거래장소를 커피숍으로 옮겼다. 전쟁 채권 트레이더 24명이 거래사무소를 오픈한 것이 오늘날 뉴욕증권거래소의 시초다. 그로부터 월가는 펀드 매니저들이 거래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서로 모여 토론하고, 거래하고, 식사와 술을 즐기던 장소였다.

    뉴욕시 정부 월가 살리기 안간힘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정 장소에 모여서 의논하거나 거래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휴대전화와 화상토론이 일반화되고 컴퓨터로 전자거래를 하는 시대에 월가는 필연적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기술주가 밀집한 나스닥 거래소가 테러 이전부터 미드 맨해튼의 타임스퀘어에 자리잡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9·11 테러는 뉴욕 금융회사, 금융인들로 하여금 월가를 떠나도록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테러 직전에 로어 맨해튼의 빈 사무실 비율(공실률)은 5%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5%에 달한다.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지면서 온전한 건물에 있던 금융기관들까지도 월가 엑소더스 현상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허드슨강 건너 저지 시티도 월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테러 후에 49개 회사가 뉴저지주로 건너갔고 이들은 대부분 저지 시티에 자리잡았다. 터널 하나만 건너면 월가에 진입할 수 있는 이곳은 뉴저지 주정부가 테러 이전부터 월가 회사들을 유치해왔던 곳이다.

    월가의 공동화를 부채질하는 가장 확실한 움직임은 210년 역사의 뉴욕증권거래소가 이사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NYSE는 그동안 상장회사가 늘어나고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빌딩을 증축하는 방안을 고려했었다. 그러나 테러가 발생하면서 맨해튼의 다른 지역, 퀸즈 지역 이나 뉴저지주로 건너가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뉴욕시 정부는 월가의 상징인 NYSE가 이사할 경우 로어 맨해튼의 상권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적극 말리고 있다.

    한편 뉴욕시 정부는 테러 이후 막대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시 입장에서는 시 정부의 주요 세수입이 월가에서 나오기 때문에 월가가 불황에 빠질 경우 세수가 부족해진다. 따라서 시 정부는 로어 맨해튼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노력의 일환으로 시 정부는 로어맨해튼개발공사(LMDC)를 만들어 월가에서 빠져나간 금융회사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덕분에 메릴린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도이체 방크 등 일부 회사들이 월가로 다시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테러 2년 … 월가 지도가 바뀐다

    9월3일 뉴욕무역거래소가 로어 맨해튼으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위). 로어 맨해튼에서 허드슨강을 건너면 나타나는 뉴저지주 저지 시티(아래)는 9·11 테러 이후 새로운 미국의 금융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거래소로는 퀸즈 지역으로 건너갔던 뉴욕무역거래소(NYBT)가 테러 2주년 직전인 9월3일에 로어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연간 30억 달러 규모의 커피, 설탕, 면화 등 농산물 선물상품이 거래되는 이 거래소는 뉴욕상품거래소(NYME) 건물에 입주해 거래를 재개했다. 이삿짐을 내려 거래를 재개하는 자리에는 테러 당시 복구를 진두지휘했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뉴욕 시 정부는 월가를 테러 이전의 금융중심지로 복구하기 위해 세계무역센터 자리의 재건축을 서두르고 있다. 연초에 조지 파타키 뉴욕주 지사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세계무역센터 재개발 설계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중견건축가 대니얼 리베스킨드의 설계안을 선정했다. 리베스킨드가 제시한 여러 구상 중 관심을 끄는 부분은 1776피트(약 541m)의 첨탑이다. 미국이 독립을 선포한 1776년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이 높이의 첨탑이 지어진다면 현존하는 전 세계 모든 건물의 높이를 추월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융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월가로 대변되는 로어 맨해튼이 많은 금융회사를 수용하기엔 비좁은 게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테러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월가는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하기 어렵다. 이제 월가라는 말은 고유명사에서 벗어나 전자거래 시대에 맞게 보다 넓은 의미의 금융시장으로 개념정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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