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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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바친 절규 “농업 근본대책 세워라”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9-18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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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TO kills brother Lee.”(세계무역기구가 이경해 형제를 죽였다.)

    제5차 WTO 각료회의가 열린 멕시코 칸쿤에서 벌어진 반(反)세계화 시위에서 시위대가 WTO 농업협상에 반대하며 9월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 고 이경해씨(56)를 애도하며 내건 구호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시위대는 9월14일 폐막된 각료회의가 멕시코 선언문을 채택하지 않고 폐막키로 하자 한국시위대를 중심으로 환호성을 올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씨의 자살은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고 한국시위대는 그의 죽음 이후 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칸쿤 시내 중앙공원 광장에 마련된 이씨의 분향소엔 세계 각국의 NGO(비정부기구) 관계자들과 정부대표단이 몰려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멕시코 농민단체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의 라파엘 알레그리아 회장은 “이씨의 죽음은 한국 농민뿐 아니라는 전 세계 농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죽음은, 각료회의가 결렬된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WTO 협상 대표들에게 농산물 수입국들의 농업이 처한 절박한 처지와 급속한 농업개방의 부작용을 일깨워준 사건이다. 각료회의가 결렬된 것은 무역 원활화, 정부조달 투명성 등을 우선적으로 다루기로 결정한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이견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에게도 이씨 사건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시장 개방정책에서 농민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계기가 돼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농산물 개방 확대는 불가피하더라도 그 규모와 속도가 조절돼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 당장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이번 협상은 2005년 1월1일이 시한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과정의 일부다. 2004년 3월께 각료회의를 다시 열어 재협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재협상에서도 한국의 입지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이씨의 죽음을 협상카드로 이용하기보다는 공식 언급을 자제하는 등 부작용을 더 우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속수무책으로 시간만 허비한 지난 10년의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재협상에서 농업 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농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1994년 UR(우루과이라운드) 이후 10년 동안 수십조원의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한국 농업의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졌고 그동안 생산유통 위주의 정책에 집착해온 것은 정부로서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중앙대 김성훈 교수(전 농림부 장관)는 “오늘의 농어촌 현실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그동안 농어업 생산유통 대책만 존재하다 보니 농어민은 정부 각 부처의 정책 대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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