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협처’에 들어선 대안학교인 녹색대학 전경.
이같이 풍수가 유행하는 현상에 대한 학문적 논의도 드물지 않아 2001년 제주대에서 ‘국제 풍수 학술대회’가 열렸는가 하면, 같은 해 ‘한국사상사학회’에서도 풍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풍수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진지하게 이루어져 올해 초 일본의 학술지 ‘아시아 유학(遊學)’에서는 풍수를 특집으로 다룰 정도였다.
동아시아의 그 어떤 대학에도 풍수학과가 없었는데 어떻게 수많은 풍수 술사와 풍수학자들이 배출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최초의 풍수학자는 고 배종호(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다. 그는 동양철학, 특히 유학을 전공했지만 풍수에도 능하여 1960년대에 풍수 관련 논문을 남겼다. 이어 ‘한국의 풍수사상’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풍수학자임을 선언한 최창조 교수가 그 뒤를 잇는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에야 그가 거둔 풍수학적 성과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올 3월 ‘교수신문’에서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라는 주제로 최교수의 ‘자생풍수’를 다룬 것이다.
그러나 그의 풍수이론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도 많지만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학계뿐만 아니라 풍수 술사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풍수 술사들이 이렇게 ‘잠재적 우군’에서 ‘적’으로 돌아선 까닭은 최교수가 그들의 밥벌이가 되는 ‘묘지 풍수’를 부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묘지 풍수를 부정하면 풍수 술사들의 존립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교수는 묘지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발복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묘지 풍수 술사들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여긴다.
그런 최교수가 올해 초 대안학교인 ‘녹색대학’(총장 장회익 전 서울대 교수)의 대학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거둔 제자 김현욱 교수(상지 영서대 겸임교수)를 데리고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갔다.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지 10여년 만에 강단에 복귀한 것이다.
그가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은 제도권 학교가 아닌 ‘도제식’ 교육이 가능한 곳에서 풍수학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곳 대안학교 터의 성격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다음은 이곳 녹색대학 터에 대한 최교수의 평이다.
녹색대학 교수로 10여년 만에 다시 강단에 선 최창조 교수.
풍수 전문용어로 말하면 녹색대학이 ‘과협처(過峽處)’에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많은 풍수 술사들은 과협처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 최교수는 땅의 성격과 그곳에 들어설 건물의 용도가 어떻게 부합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일반 술사들은 기계적으로 땅을 보아 주산과 청룡백호의 유무 및 그 미추(美醜)만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많고 설도 구구한 것이 풍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피어라! 녹색대학’이라는 녹색대학의 슬로건처럼 이곳에서 풍수학도 함께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