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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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팬덤정치’의 값비싼 청구서, 정치테러

尹 탄핵 선고 앞두고 긴장 고조… “정치 양극화에 잘못된 신념 맞물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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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입력2025-03-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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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3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민주당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방탄복을 입고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3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민주당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방탄복을 입고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3월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민주당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직무유기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으니 몸조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을 겨냥한 말이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 방탄복을 입고 참석했다. 민주당 정치테러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전현희 최고위원은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경찰과 민주당 측 요청에 따라 이 대표가 방탄복을 입고 회의에 함께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따르면 최근 의원들에게 이 대표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제보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제보 문자메시지에는 “북파공작부대(HID), 707특수임무단 요원들이 러시아제 권총을 밀수해 이재명 대표를 암살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팬덤정치’ 확산 이후 본격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면서 주요 정치인을 겨냥한 정치테러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3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온라인에서 양쪽(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협박하는 사건이 꽤 많다”며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나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적극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조되는 정치테러 위협을 정치적 양극화의 극단 사례로 보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폭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팬덤정치’가 확산하면서 상대를 겨냥한 증오정치도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해방 공간에서나 난무하던 정치테러가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도 2000년대 이후 한국 정치에서 팬덤정치가 본격화된 이후다(타임라인 참조). 200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 커터칼 피습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때 한 40대 남성이 박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커터칼을 휘둘러 얼굴에 10㎝가량 깊은 상처를 입혔다. 박 전 대통령이 치료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대전은요?”라고 말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70대 남성에게 둔기로 가격당하는 일도 있었다. 송 전 대표는 2022년 3·9 대선을 이틀 앞둔 3월 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검은색 비닐에 망치 모양의 둔기를 싸온 70대 남성에게 4차례 가격당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 경내에서 폭행을 당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2018년 5월 국회 본청 앞에서 ‘드루킹 사건’ 특검을 요구하는 단식을 하던 중 30대 남성이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맞았다. 피습 후 당시 여야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법 처리에 합의했다.

    지난해에는 같은 달에 여야 의원이 각각 피습을 당했다. 이재명 대표는 1월 2일 부산 방문 일정 중 60대 남성으로부터 목 부위를 흉기로 찔렸다. 부산대병원에서 응급치료를 한 뒤 서울로 이송돼 서울대병원에서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 23일 만인 같은 달 25일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서울 강남구 한 건물에서 10대가 돌덩이로 머리를 공격,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분위기도 한 요인

    최근 정치테러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방 직후 정치테러는 대체로 정치인들의 당내 권력 투쟁 과정에서 벌어졌는데, 지금은 상대 진영에 일방적으로 증오와 혐오를 표출하다가 폭력으로 분출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특정 진영의 강성 지지자나 일반인이 가해의 중심에 서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 전문가들은 ‘확증편향적’ 증오·혐오 정치가 급기야 일반인을 정치테러 가해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윤 교수는 “관용의 정치가 사라졌고 민주적 절차와 제도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며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분위기에서 일부가 폭력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3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신속 파면 촉구 기자회견에서 생달걀을 얼굴에 맞은 뒤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3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신속 파면 촉구 기자회견에서 생달걀을 얼굴에 맞은 뒤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손쉬운 진영 중심 증오정치의 부메랑”

    실제 거리의 군중을 흥분케 하려고 발언 수위도 연일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열린 탄핵 관련 집회에서 ‘탄핵 반대’ 유튜버 한정석 씨는 “탄핵이 인용되면 그야말로 한강이 피로 물드는 내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고, ‘탄핵 찬성’ 유튜버 ‘사장 남천동’은 “기각되면 총을 드는 수밖에 없다” “총 들고 주요 요인을 암살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의 대통령정무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최근 주요 선거를 분석해보면 A당 후보가 이런 면에서 좋아서 찍었다는 ‘긍정적 투표’보다 B당 후보가 선출되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어서 A당 후보를 찍었다는 ‘부정적 투표’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정치인들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표를 결집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증오와 선동의 언어들을 방치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비전과 대안 경쟁은 뒷전이고 공격을 퍼붓는 것으로 지지층을 자극해 손쉽게 정치적 이익을 누리려 한 정치권이 ‘청구서’를 받아 든 것이라는 해석이다.

    증오·혐오 정치는 대규모 폭력 사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2021년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선거에서 패배하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의회에 난입한 사건이다. 유혈 사태로 확대돼 6명이 사망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타도하자’라는 워딩은 정치적 표현인데,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현실에서 정말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래서 외로운 늑대나 급진적인 개인이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투영된다는 진단도 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망상이나 왜곡된 신념 등 개인이 가진 내면의 심리적 특성이 유명 인사를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공 교수는 “극단적 주장을 펴는 유튜버 등 유해한 매체에 대한 정화가 우선 필요하다”며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피해의식을 가진 분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 차원의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도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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