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동안 공석이던 서군 요코즈나를 차지한 하쿠호(오른쪽)는 몽골 출신이다.
일본 스모협회가 주최하는 여섯 번의 정기대회 가운데 봄 대회는 오사카에서 열린다. 이 대회 우승자는 오사카 지사가 주는 상을 받게 되지만, 현 오타 후사에(太田房江) 지사는 한 번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오타 지사는 모래판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스모협회는 “여자가 모래판에 올라간 전례가 없다”며 거절했다. 그만큼 일본 스모는 전통을 중시하고 자존심 또한 강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스모계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외국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국기인지 국제기인지 모를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스모협회는 2002년 ‘국기를 지키기 위해’ 외국 출신 선수를 베야(部屋·선수양성기관)당 1명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먼저 스모선수의 등급 중 최고에 해당하는 요코즈나(橫綱)를 보자. 1700년대부터 지금까지 요코즈나는 모두 69명이었다. 이중 1대부터 63대까지는 전부 일본인이었다.
이런 전통이 깨진 것은 하와이 출신의 아케보노가 요코즈나에 등극한 1993년 3월. 그의 뒤를 이어 다카노하나와 와카노하나 형제가 연예인 이상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일본인 요코즈나 시대를 다시 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1999년 7월 하와이 출신의 무사시마루가 요코즈나가 된 데 이어 2003년 3월에는 몽골 출신의 아사쇼류가 68대 요코즈나에 올랐다. 아사쇼류는 몽골 씨름으로 단련된 다양한 기술로 역대 우승횟수 5위(20승)를 기록하는 등 현재의 스모계를 평정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아사쇼류는 일본인들이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선수였다. 거친 욕설을 내뱉거나 방석을 집어던지는 등 요코즈나 품위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할 때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사쇼류가 이길 때는 관중석이 썰렁해지고 질 때는 열광적인 환호가 터져나오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3년 반 동안 공석이던 서군 요코즈나에 하쿠호가 취임하면서 아사쇼류(동군)의 1인 군림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하쿠호 또한 아사쇼류와 마찬가지로 몽골 출신. 3대 연속 외국 출신 요코즈나가 탄생한 것이다. 7월8일 개막하는 나고야대회에서는 두 명의 외국 출신 요코즈나가 모래판에 오르는,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인들로서는 씁쓸한 일이 벌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