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참관한 경기는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사진은 김대중 대통령과 동명이인이 구입한 한국 대 포르투갈전 입장권.
‘징크스’는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심리적 마술에 쓰이던 개미잡이(딱따구리의 일종)라는 새의 이름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불가해한 운명을 뜻하는데, 요즘은 불길한 징후를 나타낸다. 승패를 다투는 스포츠맨에게 징크스는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은 OB베어스 코치로 있을 때 징크스에 효험이 있다며 팬티를 갈아입지 않고 다녔을까.
수원 삼성에선 주장 맡으면 큰 부상 당하는 징크스
현영민(울산)은 경기 전에 꼭 샤워를 한다. 송종국(수원)은 발톱을 짧게 깎고, 안정환(수원)은 머리를 감지 않는다. 이영표(토트넘)는 경기가 있는 날 축구화 끈을 두 번 이상 만지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경계하는 편이고, 카를로스(레알 마드리드)는 패할 때 신었던 축구화는 두 번 다시 신지 않는다. 군대에서 다른 사병의 총을 만지는 일을 금기시하는 것처럼, 골키퍼들도 자신의 장갑을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이는 모두 승리에 대한 강박증이 낳은 심리적 행동이다. 물론 선배들과 심리치료사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듯, 징크스는 그것에 얽매일수록 더욱 강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되도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면서 편하게 대응해야 극복할 수 있다.
2003년 11월9일 대한축구협회 사무실에 도둑이 들었다. 그런데 축구협회 홍보국 직원들은 반가운 표정이었다고 한다. 5년 전인 98년에도 도둑을 맞았는데, 당시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이 중도 하차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도둑이 든 이후 아시아청소년대회 2연패, 브라질과의 평가전 승리 등 좋은 결과가 이어져 오히려 액땜이 됐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징크스와 관련한 경험이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 대 포르투갈전. 관중석에 혼자 앉아 있던 필자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좌석을 바꿔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애인과 같이 왔는데 표를 어렵게 구하는 바람에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양해를 구한 것이다. 그래서 좌석을 바꿔 앉았는데, 입장권을 보니 ‘김대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반인이 구입한 듯했는데, 그 무렵 김대중 대통령이 참관한 경기는 꼭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실제로 한국 팀은 포르투갈을 물리치고 16강에 진출했다. 선수들이 최고 기량을 선보인 점도 있지만, 김대중이라고 적힌 입장권을 손에 쥔 나의 간절한 소망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수원 삼성에는 오랜 징크스가 있다. 주장을 맡은 선수가 꼭 부상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박건하 서정원 김진우 이병근 최성용 안효연, 그리고 김남일에 이르기까지 주장을 맡은 선수들이 모두 큰 부상으로 고생했다. 지금은 ‘시리우스’ 이관우가 주장이다. 제발 이관우를 포함해 모든 선수들이 징크스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청춘기를 보내길 당부한다. 징크스, 이는 결국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