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미국 남서부를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퇴적과 침식작용이 만든 이 지질 구조물은 지구의 역사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의 어떤 인공 조형물도 따라올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그랜드캐니언에 대한 찬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문이 막힌다!”이다. 진부한 듯한 이 표현이 그랜드캐니언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곳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말문을 막는 그랜드캐니언의 웅자(雄姿)는 수백만 년이라는 지구의 시간이 그야말로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말 속에는 단순히 풍광의 거대함에 대한 감탄뿐 아니라, 그 공간에 스며 있는 오랜 세월에 대한 경외가 배어 있다.
‘넥스트’는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넥스트의 ‘2분’과 그랜드캐니언의 영겁의 시간을 대조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닐까. 또 ‘델마와 루이스’에서 낭떠러지를 향해 돌진하는 두 여자 주인공이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던 곳도 왜 하필이면 그랜드캐니언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찰나의 지상’을 떠나 자유를 찾아 영원으로 비상하려는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을 아예 ‘그랜드캐니언’으로 내건 영화도 있다.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이 영화는 그러나 그랜드캐니언의 모든 것을 소개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랜드캐니언이 주요 무대도 아니다. 그랜드캐니언은 영화의 끝 장면에야 잠깐 등장할 뿐이다.
안온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변호사 맥은 중년의 나이에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그는 늦은 밤 흑인 슬럼가를 달리다 차가 고장으로 멈춰서는 바람에 흑인 청년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위기에 처한 그를 트럭 운전사인 흑인 사이먼이 구해준다. 사이먼은 인생의 의미를 잃고 흔들리는 맥에게 스승 같은 깨우침을 준다. 그리고 맥을 그랜드캐니언으로 데려간다. 이 영화에서 그랜드캐니언은 경박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침묵의 스승으로 그려진다.
진짜 그렇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게 어디 그랜드캐니언뿐이랴’ 하는 것이다. 모든 자연은 ‘그랜드’하고 위대하다. 우리에겐 그랜드캐니언 같은 곳이 없다는 아쉬움은 갖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 등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그랜드캐니언’은 우리 도처에 많이 숨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