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구곡의 여러 절경 가운데 가장 풍광이 수려한 금사담. 오른쪽 바위 위에 송시열의 서재였던 암서재가 있다.
산 높고 물 맑은 괴산군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맨 먼저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을 찾아가는 편이 좋다. 속리산국립공원 화양지구에 속하는 화양구곡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은거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과 유리처럼 투명한 계류, 그리고 울창한 솔숲과 역사적 사연이 한데 어우러진 화양구곡의 자연풍광은 한 폭의 진경산수(眞景山水)처럼 아름답다. ‘택리지’를 쓴 실학자 이중환도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수려하다.
전체 길이가 5km쯤 되는 화양구곡에는 아홉 곳의 절경이 있다.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곶 등이 그것이다.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가 중국 주자학을 창시한 주희(朱熹)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서 이름 붙였다. 그중에서 맑은 물에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2곡 운영담은 주희의 ‘천광운영(天光雲影)’이라는 시구에서 따왔고, 3곡 읍궁암은 효종의 기일에 송시열이 엎드려 통곡한 바위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아홉 절경의 대부분은 계곡 입구부터 물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감상할 수 있다. 계곡 중간쯤에 이곳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 겸 민박집이 즐비해 좀 어수선하지만, 시선을 물가 쪽으로 돌리면 옛사람들의 풍류와 사연을 간직한 절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 하늘을 찌를 듯한 위세를 남용해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게 했던 화양서원과 만동묘의 옛터도 이곳 길가에 자리한다. 화양서원 옛터를 뒤로하고 조금 더 가면 화양구곡 중에서도 가장 풍광이 빼어난 금사담에 이른다. 맑은 계류 속에 금빛 모래가 깔려 있다는 금사담의 우뚝한 바위 위에는 송시열의 서재였던 암서재가 남아 있다.
선유동·쌍곡계곡·각연사 등 명승지 즐비
화양구곡의 상류에는 선유구곡이 있다. 이곳에도 옛날부터 선유동문,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 등의 아홉 절경이 전해온다. 퇴계 이황이 이곳 경치에 매료돼 아홉 달 동안 머물면서 이름 붙였다는 절경이다. 그중 6곡인 난가대와 7곡인 기국암은 옛날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나무꾼이 난가대에 도끼를 놓아둔 채 기국암에서 신선들이 바둑 두는 모습을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5대 후손이 주인 노릇을 하더라는 이야기다.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화양구곡에서는 취사와 야영, 물놀이와 차량통행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시원한 물가에 앉아 탁족(濯足)을 즐기는 정도의 물놀이는 허용된다.
선유동 위쪽의 찻길을 따라가다 보면 금세 경상도 땅에 들어선다. 화양천 상류의 가녀린 물길이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탓이다. 특이하게도 인근의 백두대간 마루금 대신 실낱같은 개울을 두 도(道)의 경계선으로 삼았다. 도계 지점의 상관평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다시 괴산 땅이다. 그리고 이내 제수리재를 넘어서면 찻길은 다시 물길과 나란히 어깨를 맞댄 채 이어진다. 괴산 땅의 비경 중 하나인 쌍곡계곡에 들어선 것이다.
쌍계(雙溪)라고도 불리는 쌍곡계곡은 두 개의 군자산(827m, 948m)과 보배산(709m), 칠보산(778m) 등의 준봉 사이로 흐르는 심산유곡이다.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의 명성에 눌려 외지인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계곡의 웅장한 풍광과 때묻지 않은 자연미는 오히려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약 10km의 물길 양쪽으로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이 즐비해 사시사철 다채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게다가 계류의 수량이 풍부해 피서를 즐기기에도 아주 좋다. 이곳에도 ‘쌍곡구곡’으로 꼽히는 절경이 있는데, 특히 제2곡 소금강은 금강산 골짜기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장관을 보여준다.
쌍곡계곡으로 물줄기를 흘려보내는 칠보산의 북쪽 자락에는 괴산군 제일의 고찰(古刹)인 각연사가 있다. 장연면 대성리의 첩첩산중에 자리잡은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고찰의 비로전에는 준수하게 생긴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이 봉안돼 있다. 원만하면서도 준엄해 보이는 상호가 세련된 솜씨로 표현된 석불이다. 어린아이처럼 곱고 부드럽게 조각된 팔과 손등도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하지만 각연사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산사다운 고즈넉함이다. 주변에 상가도 없거니와 작은 구멍가게도 10여 리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각연사 경내에 들어서면 속세와의 단절감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