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맨 오른쪽). 그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커다란 파급효과를 미쳤다.
이런 풍경이 어색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지금 20세기를 헤매고 있는 거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이런 여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대치동에 사는 최씨 대신, 도쿄 아오야마에 살고 있는 싱글 여성이나 상하이 타이캉루 근처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 또는 뉴욕 맨해튼 거리를 활보하는 캐리의 이름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글로벌 시대라서? 뭐, 그것도 어느 정도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건 바로 이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다.
1998년 첫 방송을 시작해 6년 동안 전 세계 ‘언니’들의 마음을 헤집어놓았던 TV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이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에 몸부림치던 이들을 위해 종영 4년 만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이들은 말한다. “그냥 드라마 아냐?”
그들은 모른다. 태평양 건너 이 나라에 캐리가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뉴욕 5번가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캐리가 신었다는 이유로 똑같은 구두가 이튿날 날개 달린 듯 많은 여성들의 발로 날아가고 있다는 걸. ‘시크’하고 싶은 패션지가 ‘섹스 앤 더 시티’를 성서처럼 여기며, 싱글 여성들은 ‘섹스 앤 더 시티’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 또는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걸.
그 시작은 구두였다. 캐리는 구두를 좋아한다. 아니, 숭배한다. ‘마놀로 블라닉’을 목숨처럼 사랑하고, ‘지미추’는 평생 배신할 리 없는 연인 정도로 여긴다.
캐리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는 건 화이트 마놀로 블라닉 때문인 듯 보였고, 끈 떨어진 샌들을 보며 울상짓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인 건 그것이 지미추이기 때문인 듯했다. 아무도 안 보는 발까지 신경 쓰는 센스를 통해 ‘패션 피플’이 됐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이만한 게 없었다.
이후 ‘프롬 런던(from London)’인 수제화와 말레이시아 출신 디자이너의 이름은 어느덧 패션 피플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필수용어가 됐다. 각 백화점 명품관에 마놀로 블라닉과 지미추가 들어섰고 강남에는 단독 매장도 등장했다. 모든 것이 단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정확히 ‘섹스 앤 더 시티’가 케이블채널을 통해 방송되던 그때를 기점으로.
6년 동안 방영된 드라마와 이번에 개봉할 영화까지 모두 합쳐 주인공 네 사람은 단 한 번도 똑같은 패션을 하고 나온 적이 없다. 저 아래 발치의 구두도 보이는데, 그 많은 다른 것에야 어찌 눈이 가지 않겠는가. 사만다가 할리우드 스타 루시 리우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어했던 에르메스 백도 눈에 자꾸 밟히게 되는 거다. 100개쯤 되는 가방이 장롱에서 잠자고 있어도 새로 나온 펜디는 사줘야 할 것 같은, 카드를 긁다가 다음 달 날아올 명세서가 걱정되면서도 마크 제이콥스 매장 앞에 서게 되는 여성이 늘어만 갔다.
하지만 ‘섹스 앤 더 시티’가 영향을 준 건 단지 구두를 비롯한 패션만이 아니다. 더 거대한 파급력을 발휘한 것은 이 드라마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먼저 열혈 시청자들에게 캐리가 살고 있는 뉴욕은 동경의 장소가 됐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뉴요커에 대한 동경이다. 뉴요커처럼 생활하고, 뉴요커처럼 이야기하고, 뉴요커처럼 즐기고 싶은 이들이 생겨났다. ‘아점’이 아닌, 캐리와 그의 친구들처럼 브런치를 먹는 것은 싱글 여성들의 주요한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청담동에는 브런치를 주메뉴로 하는 식당들이 사정없이 늘어났다. ‘된장녀’라고 이들을 폄훼하는 용어가 등장해도 대학가에 술집 대신 들어선 커피전문점에는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브런치 먹고 커피 마시며 섹스를 이야기하다
성(性)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도 드라마와 궤를 같이한다. 여자들이 ‘감히’ 섹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게이는 ‘패션 감각이 넘치는 정 많고 친근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이미지가 부여됐다. 뉴욕 여행책, 아니 정확히 말하면 뉴욕 사진책은 나오고 또 나와도 잘만 팔렸다. 캐리와 친구들이 돌아다녔던 곳만을 돌아다니는 관광상품은 언젠가 한 번쯤 해봐야 하는 인기 여행코스가 돼버렸다. 이런 얘기가 정말이냐고? 최소한 대한민국 20, 30대 여성에겐 이 모든 것이 진실이다.
멋진 언니들은 어느 드라마 속에서나 늘 있어왔다. ‘프렌즈’의 레이첼이 하고 나온 헤어스타일은 언제나 최고 히트상품이었고, ‘앨리 맥빌’의 앨리를 추종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그러나 ‘섹스 앤 더 시티’는 좀 달랐다. 왜냐하면 캐리, 사만다, 샬럿, 미란다의 고민은 우리의 그것과 다름없었고, 그들이 서로에게 해주는 충고는 절절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30대 싱글 여성은 안정적인 직장과 여유로운 통장, 그리고 멋진 남자를 원한다. 그런데 앞의 두 가지를 갖고 있음에도 남자가 없다는 건 그녀를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직장과 돈이 없어도, 멋진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성공한 인생처럼 으쓱해하는 여자들이 실제(!)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누군가는 미국 드라마가 우리나라 여자들을 다 망쳐놨다고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거다. 두 가지를 다 갖췄으나 제대로 된 남자만 없는 네 주인공. 겉으로는 화려하나 실은 매일이 딜레마의 연속이다. 보기엔 강하나 실은 참으로 약하다. 그들의 연애담에서 비롯된 리얼한 ‘성장기’는 20, 30대 싱글 여성에게 ‘나만이 아니었구나’로 이어진다. 1시즌 1회에서 “왜 멋진 미혼 여성은 많은데 멋진 미혼 남성은 없는 걸까?”라는 캐리의 내레이션부터 시청자는 그들과 동화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때부터 그들은 더는 남이 아닌 내가 된다. 또한 칼럼니스트, 변호사, 큐레이터, 홍보이사라는, 듣기만 해도 황홀한 직업을 가진 그들은 나의 아이돌이자 대리만족 상대가 된다. 그러니 그들처럼 해야 하고,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다.
‘된장녀’라고 아무리 불러대도 캐리의 ‘동생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소심해지는 건 캐리가 아니니까. 설령 마음속으로 뜨끔할지언정 언`니들은 앞으로도 당당히 지미추를 신고 브런치를 먹으러 갈 것이다. 패션쇼에서 넘어져도 당차게 일어나 친구들을 향해 웃으며 걸어가던 캐리처럼, 그 멋진 뉴요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