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베이컨 ‘삼면화’(1976년)
이러한 전통은 19세기 중반 이후 실증주의, 사실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배척되기 시작했다. “내게 천사를 보여주면 그리겠다”던 쿠르베의 말처럼 사실주의자들은 이상적 관념을 몰아내고 눈앞의 현실에 주목하면서 종교적 주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대 아방가르드 미술은 미술에서 종교적, 신화적인 이야기를 제거하고 인간의 내면과 물질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런 와중에서 역설적이지만 종교화가로 크게 성공한 작가가 있다.
그는 피카소, 앤디 워홀과 함께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영국화가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이다. 그의 작품 ‘삼면화’는 얼마 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8628만 달러(약 906억원)에 낙찰됨으로써 전후 현대미술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의 괴기스러운 그림을 종교화라고 부르는 것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겠지만, 내용적으로 본다면 영생을 추구한 진정한 현대판 종교화가다.
베이컨이 고집스럽게 많이 제작한 삼면화는 원래 종교화의 전형이다. 그는 동물적 신체 속에서 기의 진동과 원초적 리듬을 보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이라고 주장한다. 즉 베이컨에게 작품은 두뇌의 작용에 의한 껍데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실체를 찰나적으로 작동시키고 그와 하나가 되는 종교의식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컨이 즐겨 그린 도살장이나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어리 같은 형태들은 일종의 ‘십자가의 책형(·#30932;刑)’인 셈이다. 시각적 허구를 희생시켜 영원한 생명력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영생에 이르고자 했다면 ‘내면의 종교화’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