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19세기 미국 남부를 무대로 한 영화에서는 직·간접적으로 노예를 다룰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꼽힌다. 노예제도 철폐 등을 둘러싸고 시작된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남부 지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였던 만큼 노예들이 빠질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노예제도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흑인 조역들은 모두 우스꽝스럽거나 개처럼 충실한 하인들에 불과했고, 거론할 가치가 있는 건 버릇없는 백인 귀부인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예역을 한 해티 맥다니엘이 이 영화로 최초의 흑인 아카데미 연기상의 수상자가 된 것이다. 애틀랜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는 뒷문으로 들어가야만 했다지만.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에서도 노예들이 자주 등장한다. 커크 더글러스가 노예 반란의 우두머리로 나왔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많은 영화팬이 기억할 것이다. ‘벤허’에서 찰턴 헤스턴이 연기했던 주역도 노예였고, ‘쿠오바디스’에서 페트로니우스가 사랑을 나눈 대상도 노예였으며 찰턴 헤스턴이 광야로 끌고 나왔던 유대인들도 모두 노예였다. 하지만 이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한 노예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노예보다 훨씬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 그나마 인종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는 종종 뜻밖의 영화에서 다뤄지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영화 ‘맨스필드 파크’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맨스필드 파크의 가부장인 토머스 버트럼은 안티과의 노예들을 학대하며 재산을 모은 잔인한 농장주로 등장한다. 제인 오스틴의 원작소설에는 없는 내용이 감독에 의해 삽입된 것이다. 하지만 버트럼이 안티과의 농장주였다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노예들을 부렸음이 분명하다는 게 정설이다. 책에서 노예들을 다루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 그건 문명화된 척하는 지금의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