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점심 무렵 찾아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이탈리안 카페는 ‘주부 세상’이었다. 10여 개의 테이블은 두세 명씩 짝지어 온 주부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1만~2만원짜리 차를 마시거나 샐러드와 파스타, 커피로 이뤄진 1만5000원짜리 런치세트를 주문한 채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 애 새로 생긴 체육학원에 보냈는데 2주 만에 쌩쌩이 실력이 2개에서 20개로 늘었어. 정말이라니깐.” “작년에 산 아파트 전세 값이 1억7000만원까지 올랐어. 은행에 돈 넣어둬봤자 이자 몇 푼 안 되는데 그 정도면 됐지 뭐.” 오가는 이야기는 주로 자녀, 부동산에 관한 것들이다.
분당의 새 명소 일명 ‘청자동 거리’
삼삼오오 짝지어 카페를 찾았다가 빈자리가 없자 아쉬워하면서 돌아가는 주부들도 꽤 됐다. 30대 주부 두 명이 차값 2만8000원을 계산하고 나가자 근처에서 배회하던 주부 세 명이 얼른 자리를 잡았다.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깍듯하게 손님들을 응대하던 카페 직원 김재범 씨는 “주부들의 생일파티나 부녀회 모임도 자주 열린다”면서 “절반은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귀띔했다.
“평일 점심때는 주로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날씨가 흐린 날에는 직장인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오질 않아 주부 손님들이 일찌감치 카페를 차지합니다. 오후 2~5시에도 거의 빈자리가 없는데, 대부분이 차 한잔 하러 나온 주부들이에요.”
분당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일명 ‘정자동 카페골목’. 주상복합건물 ‘파라곤’과 ‘상떼뷰’ 사이 골목을 따라 20여 개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어 붙여진 별칭이다. 카페마다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치장했을 뿐만 아니라 인도 쪽으로 원목으로 만든 데크(deck)에 테이블과 의자, 꽃장식, 야외용 난로 등으로 테라스를 꾸며놓아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붙은 또 다른 이름이 ‘청자동 거리’. 대한민국 부촌(富村)의 상징 청담동이 부럽지 않다는 뜻으로 청담동의 ‘청’자를 따왔다.
저녁이면 퇴근한 인근 직장인들, 주말이면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이 거리를 ‘점령’하지만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단연 분당 정자동의 신(新)상류층 주부들, 이른바 ‘테라스 맘(Terrace Mom)’들이 주인공이다. 절반이 인근 분당 지역이나 용인, 수원 그리고 서울에서 놀러 온 주부들이라 해도 나머지 절반은 파라곤, 아이파크, 파크뷰 등 카페골목 인근의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다.
“예전에는 대한민국에서 살 만한 곳이 청담동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강남이 뉴욕이라면 분당은 뉴저지주(州)에 해당한다고 할까요. 가까이에 산과 하천이 있는 데다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는 뉴욕 맨해튼에서나 볼 수 있는 초현대식 거주시설이라 매우 만족스러워요.”
실명을 밝히기 꺼린 30대 중반의 ‘미시족’ 최모 씨가 한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들려준 이야기다. 최 씨는 “예전에는 친구들과 차 한잔 하려면 청담동까지 나가야 했지만 요즘엔 이런 멋진 카페골목이 생겨 친구들을 이곳으로 초대하곤 한다”고도 덧붙였다. 3년 전 서울 대치동에서 정자동 아이파크로 이사 왔다고 밝힌 50대 전업주부 이모 씨는 “카페에 자주 나와 커피 한 잔씩 하는데 공기가 맑아 목이 따끔거리지도 않는다”면서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좋다”고 했다. 다른 카페 테라스에서 조각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30대 주부 4명을 만났다.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동네 친구 사이’라는 이들에게 “차값이 좀 비싸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엔 아저씨들이나 싼 것 찾지 아줌마들은 비싼 걸 좋아한다”며 웃어넘겼다.
“엄마들의 카페 모임은 보통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에 있어요. 브런치세트를 먹으면서 점심때까지 수다 떠는 거죠. 요새 엄마들은 집으로 손님 초대하는 걸 싫어해요. 아무래도 신경 쓰이고 귀찮잖아요.”(파라곤에 사는 한 주부)
카페골목 상인들은 “이곳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분당 최고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평당 3000만~3500만원에 달하는 고급주택에 사는 주민들이 밀집되어 있어 생활수준 또한 높다는 것이다.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석준 씨는 “생크림 케이크보다는 치즈·무스·쉬폰 케이크가 훨씬 인기가 높고 1인당 객단가가 다른 지역보다 20% 정도 높다”고 전했다. 카페골목에서 커튼숍을 운영하는 김영미 씨의 말.
“손님들이 주로 찾는 커튼 가격대가 평당 15만원 안팎입니다. 50평이면 750만원, 70평이면 1000만원이 넘습니다. 손님들 대다수가 전업주부인데 남편은 의사, 변호사, 아니면 사업가예요. 자녀들은 해외유학을 보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비어 있는 아이들 방을 꾸미는 일이 자주 있어요.”
다른 동네 주부들 사이 최고 관심사
카페골목이 형성된 것은 2004년 겨울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도 ‘구조조정’이 있었다. 지난해 초에만 해도 철물점과 문방구, 반찬가게 등이 있었는데 이러한 서민적인(?) 상점들은 반년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노천카페와 와인숍, 인테리어숍, 옷가게, 꽃집, 주얼리숍 등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보세 옷가게가 많았지만 요즘 들어 고가의 옷가게가 들어서는 추세다. 미시족이 많은 까닭에 대다수 옷가게가 여성 의류와 함께 아동복을 취급한다.
프랜차이즈화를 목적으로 이곳에 본점을 내는 곳들도 여럿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20만~30만원대 미국 수입의류를 판매해왔던 ‘아일랜드 스타일’은 5월 말 이곳 카페골목에 첫 번째 오프라인 숍을 개장했다. 여정구 매니저는 “본사가 정자동 주민들의 구매력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안다”면서 “30, 40대 미시족들이 주 고객층이고 한 번에 50만원어치씩 사가는 게 보통”이라고 전했다. 상권이 형성된 지 아직 2년도 되지 않았지만 권리금이 2억~3억원에 달하는 등 고급 상권으로 이미지가 굳었다.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의 사회적 계층은 ‘중산층 이상, 청담동 이하’로 요약된다. 최근 2~3년간 분당의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자산가치가 높아진 ‘신흥 부동산 부자’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카페골목에서 테라스 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카페로 꼽히는 ‘아마폴라 델리’의 이태완 매니저는 이들에 대해 “지갑에 든 돈은 청담동 주민들보다 적지만 소비문화적 욕구는 그들 못지않다”고 평가했다.
“이곳 주민들은 2000~3000원도 아까워하며 알뜰하게 소비하지만 최상의 서비스를 요구합니다. 그만큼 까다로운 고객들입니다. 그래서 요즘 ‘청담동에서 성공한 장사꾼도 정자동에 오면 망하기 쉽다’는 말이 오고 갑니다.”
어느덧 카페골목에도 날이 저물었다. ‘테라스 맘’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뜨며 총총히 사라졌다. 밤 9시 무렵. 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잔 즐기는 퇴근족들 사이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남편의 팔짱을 끼거나 아이 손을 잡고 있는 주부들이 곳곳에 보인다. 산책하면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쇼핑도 하는 이들 가족을 위해 카페골목 상점들은 밤 10시 넘어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카페골목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요즘 분당의 다른 동네에 사는 주부들 사이에서 카페골목은 최고의 관심사”라고 전했다.
“한 아주머니가 ‘카페골목에 놀러 가려면 근사한 명품 선글라스는 쓰고 가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며?’라고 물었어요. 그게 요즘 이 동네의 분위기입니다.”
분당의 새 명소 일명 ‘청자동 거리’
삼삼오오 짝지어 카페를 찾았다가 빈자리가 없자 아쉬워하면서 돌아가는 주부들도 꽤 됐다. 30대 주부 두 명이 차값 2만8000원을 계산하고 나가자 근처에서 배회하던 주부 세 명이 얼른 자리를 잡았다.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깍듯하게 손님들을 응대하던 카페 직원 김재범 씨는 “주부들의 생일파티나 부녀회 모임도 자주 열린다”면서 “절반은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귀띔했다.
분당 정자동 카페골목의 오후 풍경과 고급 상점들이 즐비한 카페골목.
분당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일명 ‘정자동 카페골목’. 주상복합건물 ‘파라곤’과 ‘상떼뷰’ 사이 골목을 따라 20여 개 노천카페가 늘어서 있어 붙여진 별칭이다. 카페마다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치장했을 뿐만 아니라 인도 쪽으로 원목으로 만든 데크(deck)에 테이블과 의자, 꽃장식, 야외용 난로 등으로 테라스를 꾸며놓아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붙은 또 다른 이름이 ‘청자동 거리’. 대한민국 부촌(富村)의 상징 청담동이 부럽지 않다는 뜻으로 청담동의 ‘청’자를 따왔다.
저녁이면 퇴근한 인근 직장인들, 주말이면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이 거리를 ‘점령’하지만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단연 분당 정자동의 신(新)상류층 주부들, 이른바 ‘테라스 맘(Terrace Mom)’들이 주인공이다. 절반이 인근 분당 지역이나 용인, 수원 그리고 서울에서 놀러 온 주부들이라 해도 나머지 절반은 파라곤, 아이파크, 파크뷰 등 카페골목 인근의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다.
“예전에는 대한민국에서 살 만한 곳이 청담동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강남이 뉴욕이라면 분당은 뉴저지주(州)에 해당한다고 할까요. 가까이에 산과 하천이 있는 데다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는 뉴욕 맨해튼에서나 볼 수 있는 초현대식 거주시설이라 매우 만족스러워요.”
실명을 밝히기 꺼린 30대 중반의 ‘미시족’ 최모 씨가 한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들려준 이야기다. 최 씨는 “예전에는 친구들과 차 한잔 하려면 청담동까지 나가야 했지만 요즘엔 이런 멋진 카페골목이 생겨 친구들을 이곳으로 초대하곤 한다”고도 덧붙였다. 3년 전 서울 대치동에서 정자동 아이파크로 이사 왔다고 밝힌 50대 전업주부 이모 씨는 “카페에 자주 나와 커피 한 잔씩 하는데 공기가 맑아 목이 따끔거리지도 않는다”면서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좋다”고 했다. 다른 카페 테라스에서 조각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30대 주부 4명을 만났다.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동네 친구 사이’라는 이들에게 “차값이 좀 비싸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엔 아저씨들이나 싼 것 찾지 아줌마들은 비싼 걸 좋아한다”며 웃어넘겼다.
“엄마들의 카페 모임은 보통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에 있어요. 브런치세트를 먹으면서 점심때까지 수다 떠는 거죠. 요새 엄마들은 집으로 손님 초대하는 걸 싫어해요. 아무래도 신경 쓰이고 귀찮잖아요.”(파라곤에 사는 한 주부)
카페골목 상인들은 “이곳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분당 최고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평당 3000만~3500만원에 달하는 고급주택에 사는 주민들이 밀집되어 있어 생활수준 또한 높다는 것이다.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석준 씨는 “생크림 케이크보다는 치즈·무스·쉬폰 케이크가 훨씬 인기가 높고 1인당 객단가가 다른 지역보다 20% 정도 높다”고 전했다. 카페골목에서 커튼숍을 운영하는 김영미 씨의 말.
“손님들이 주로 찾는 커튼 가격대가 평당 15만원 안팎입니다. 50평이면 750만원, 70평이면 1000만원이 넘습니다. 손님들 대다수가 전업주부인데 남편은 의사, 변호사, 아니면 사업가예요. 자녀들은 해외유학을 보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비어 있는 아이들 방을 꾸미는 일이 자주 있어요.”
다른 동네 주부들 사이 최고 관심사
카페골목이 형성된 것은 2004년 겨울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도 ‘구조조정’이 있었다. 지난해 초에만 해도 철물점과 문방구, 반찬가게 등이 있었는데 이러한 서민적인(?) 상점들은 반년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노천카페와 와인숍, 인테리어숍, 옷가게, 꽃집, 주얼리숍 등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보세 옷가게가 많았지만 요즘 들어 고가의 옷가게가 들어서는 추세다. 미시족이 많은 까닭에 대다수 옷가게가 여성 의류와 함께 아동복을 취급한다.
프랜차이즈화를 목적으로 이곳에 본점을 내는 곳들도 여럿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20만~30만원대 미국 수입의류를 판매해왔던 ‘아일랜드 스타일’은 5월 말 이곳 카페골목에 첫 번째 오프라인 숍을 개장했다. 여정구 매니저는 “본사가 정자동 주민들의 구매력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안다”면서 “30, 40대 미시족들이 주 고객층이고 한 번에 50만원어치씩 사가는 게 보통”이라고 전했다. 상권이 형성된 지 아직 2년도 되지 않았지만 권리금이 2억~3억원에 달하는 등 고급 상권으로 이미지가 굳었다.
정자동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의 사회적 계층은 ‘중산층 이상, 청담동 이하’로 요약된다. 최근 2~3년간 분당의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자산가치가 높아진 ‘신흥 부동산 부자’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카페골목에서 테라스 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카페로 꼽히는 ‘아마폴라 델리’의 이태완 매니저는 이들에 대해 “지갑에 든 돈은 청담동 주민들보다 적지만 소비문화적 욕구는 그들 못지않다”고 평가했다.
“이곳 주민들은 2000~3000원도 아까워하며 알뜰하게 소비하지만 최상의 서비스를 요구합니다. 그만큼 까다로운 고객들입니다. 그래서 요즘 ‘청담동에서 성공한 장사꾼도 정자동에 오면 망하기 쉽다’는 말이 오고 갑니다.”
어느덧 카페골목에도 날이 저물었다. ‘테라스 맘’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뜨며 총총히 사라졌다. 밤 9시 무렵. 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잔 즐기는 퇴근족들 사이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남편의 팔짱을 끼거나 아이 손을 잡고 있는 주부들이 곳곳에 보인다. 산책하면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쇼핑도 하는 이들 가족을 위해 카페골목 상점들은 밤 10시 넘어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카페골목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요즘 분당의 다른 동네에 사는 주부들 사이에서 카페골목은 최고의 관심사”라고 전했다.
“한 아주머니가 ‘카페골목에 놀러 가려면 근사한 명품 선글라스는 쓰고 가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며?’라고 물었어요. 그게 요즘 이 동네의 분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