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5일(이하 현지 시간) 쿠웨이트 쿠웨이트시티에 있는 쿠웨이트 국제공항의 연료저장 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아 연기가 치솟고 있다. 뉴시스
당시 이라크군은 철수하면서 쿠웨이트의 유정 700여 개와 각종 정유시설에 불을 지르고 폭탄을 터뜨리는 등 파괴 행위를 자행했다. 화재는 9개월간 계속됐고, 연기는 우주에서도 보였으며, 환경 피해는 10여 년이나 지속됐다. 쿠웨이트 국민들은 지금도 걸프전의 ‘악몽’을 떠올리면 치를 떤다. 특히 쿠웨이트는 상당기간 원유를 생산하지 못해 수출을 중단하는 등 경제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석유 수출 막혀 GDP 14% 감소 예상
쿠웨이트가 36년 만에 ‘두 번째 악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걸프전 당시에는 유전이 파괴돼 원유를 생산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원유를 운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선박추적업체 탱크트래커스닷컴은 쿠웨이트가 4월 한 달 동안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원유를 수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란이 미국과의 전쟁에 따른 보복 조치로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라비아반도 북동쪽에 있는 쿠웨이트는 북쪽과 서쪽으로 이라크, 남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만과 접해 있다. 쿠웨이트가 원유를 수출하려면 유조선에 적재해 호르무즈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페르시아만 가장 안쪽에 자리한 쿠웨이트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과 달리 육상 파이프라인 등 우회로도 없다.
사우디는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자 유전이 집중된 동부 지역에서 서부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연결된 1200㎞ 길이의 ‘동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운송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이 파이프라인으로 하루 200만 배럴을 보내다 최근 최대 용량인 700만 배럴까지 규모를 늘렸다. 그런가하면 UAE은 유전 지대인 합샨에서 오만만 푸자이라항과 연결되는 길이 400㎞의 아부다비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150만~180만 배럴의 원유를 운송하고 있다.
반면 쿠웨이트 원유 수출을 총괄하는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는 4월 16일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원유 계약 물량 선적이 어려워지자 계약사들에 서신을 보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불가항력 선언은 전쟁과 자연재해 같은 통제 불능 사태가 발생하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책임을 면제하거나 이행을 미뤄주는 절차다. 쿠웨이트는 지난해 기준 하루 258만 배럴을 생산하는 세계 9~10권의 주요 산유국이다. 원유 매장량은 101조 배럴로 세계 원유 매장량의 약 6%다. 쿠웨이트는 2024년 기준 288억 달러(42조 원) 상당의 원유를 수출했다. 원유 수출은 쿠웨이트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0%, 정부 총 예산 수입의 최대 90%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지난해 기준 사우디, 미국, 이라크, UAE에 이어 한국에 다섯 번째로 많은 원유를 공급한 나라였다. 이 때문에 한국은 쿠웨이트 원유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체 국가를 확보해야만 했다.
쿠웨이트 경제는 원유수출 중단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쿠웨이트의 올해 GDP가 마이너스 14%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쿠웨이트는 세계에서 석유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쿠웨이트의 최근 원유 생산량은 하루 120만 배럴에 불과하다. 현재 1조72억 달러(약 1565조1900억 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국부펀드인 쿠웨이트 투자청(KIA)은 신규 투자를 중단하는 등 원유 수출 중단 장기화에 따른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레베카 패터슨 미국외교협회(CFR) 연구원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발생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피해, 안보 위협, 석유 수익 감소로 쿠웨이트 등 걸프 국가들은 자금을 (해외 투자 대신) 국내 수요에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단기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 우선순위의 변화”라고 지적했다.

아라비아반도 북동쪽에 있는 쿠웨이트는 북쪽과 서쪽으로 이라크, 남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토 동쪽은 페르시아만과 접해 있다. 쿠웨이트가 원유를 수출하려면 유조선에 적재해 호르무즈해협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구글 맵스
뱃길 막히고 하늘길도 공격 당해
실제로 쿠웨이트는 이란의 반복적인 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쿠웨이트는 4월 8일 미국·이란의 휴전 발효 이후 두 달 동안 최소 여섯 차례 공격을 받았다. 특히 6월 3일 밤에는 이란 드론 30대가 날아들어 쿠웨이트 국제공항과 인근 군사기지를 타격하면서 휴전 이후 최대 규모의 피해를 일으켰다. 당시 공격으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을 입었다. 쿠웨이트 정부는 국제공항의 모든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착륙 예정이던 항공기들을 대체공항으로 회항시키는 등 한동안 공항을 폐쇄했다.쿠웨이트 입장에서 이란의 국제공항 공격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쿠웨이트의 필수 물자 수입은 항공 운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쿠웨이트는 항공유 등 일부 석유 제품을 국제공항을 통해 수출해왔다. 국제공항이 공격받을 경우 쿠웨이트는 하늘길마저 막혀 경제와 물류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쿠웨이트는 이미 2월 말부터 시작된 전쟁 기간 여러 차례 공격을 받으며 훼손된 국제공항을 복구하는 데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왔다.
쿠웨이트는 미군 1만3500여 명이 주둔하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1990년 걸프전 이후 미군은 캠프 아리프잔,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 등 쿠웨이트 내 5개 군사기지에 주둔해왔다. 쿠웨이트는 당시 이라크의 침공에 따른 트라우마 때문에 중동 지역에서 가장 많은 미군 기지주둔을 허용해왔다. 미군은 6월 1일 호르무즈해협에 있는 게슘 섬의 통신탑과 레이더 등 이란측 군사시설을 공격한 데 이어 다음 날 이란 유조선을 미사일로 무력화했다.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알리 알 기지를 공격했다.
이란은 쿠웨이트 공습이 미국의 침략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 외무부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해 역내 국가들의 영토와 시설을 사용한 것을 규탄한다. 쿠웨이트 통치자에게도 직접적이고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쿠웨이트뿐만 아니라 미 해군 제5함대가 주둔한 바레인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이란의 공격에 따른 피해가 갈수록 커지자 외교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쿠웨이트 외무부는 이란 정부에 자국 주재 외교관 수를 줄일 것을 요구하고, 이란 외교관 2명에게 24시간 내 출국하라고 통보했다. 바데르 알 사이프 쿠웨이트대 역사학과 교수는 “쿠웨이트는 이란과 미국의 갈등 비용을 부당하게 떠안고 있다”며 “양국 사이에 낀 쿠웨이트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쿠웨이트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신세가 된 셈이다.

미군이 3월 7일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열린 전사자 유해 반환식에서 사망한 미군의 유해를 담은 운구함을 옮기고 있다. 이란이 3월 6일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보복공격을 가하면서 쿠웨이트 작전지휘소에 있던 미군 6명이 전사했다. 뉴시스
‘지정학적 인질’로 전락하나
쿠웨이트는 앞으로 자국이 ‘지정학적 인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이 개방되더라도 이란이 언제든 해협을 봉쇄하면 원유 수출이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고 국가 생존을 지키고자 쿠웨이트는 원유 수출 우회로 개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쿠웨이트 등 걸프 국가들이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기 위한 신규 파이라인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는 해상 초크포인트(choke point·급소 구역)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보도했다.우회로 확보가 쉽지는 않다. 에너지 자문 업체 우드 매켄지의 석유 시장 담당인 앨런 겔더 부사장은 “파이프라인 건설은 대개 국경을 넘나드는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의미한다”면서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하며 단기간에 완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쿠웨이트로선 우회로를 확보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셰이크 칼레드 알 사바 KPC 이사는 “사우디와 이라크 등 이웃국가들과 잠재적 노선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웨이트가 원유 수출 우회로를 확보해 지정학적 인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