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새 사령탑 핌 베어벡.
기자는 지난해 6월 세계청소년축구대회가 벌어진 네덜란드에서 우연히 핌 베어벡을 만났다. 당시 독일 묀헨글라트바흐의 코치직을 그만둔 그는 자신의 노트에 한국 선수들의 특징을 빼곡히 적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 대표팀과 전혀 관계가 없던 그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은 항상 내 관심사다. 2002년 이후에도 선수들의 활약상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3개월 후 한국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베어벡은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라는 ‘족집게 과외사’들을 보좌했던 최고의 참모로, 타고난 전술 적용력을 갖추었으며 차분하고 냉철하게 사안을 바라본다. 그는 다혈질인 히딩크를 달래며 2002년 신화의 한 축을 담당했고, 한국 축구를 몰랐던 아드보카트에게 2002년의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원정 첫 승의 성과와 16강 탈락의 한계를 동시에 체감한 한국 축구는 4년 동안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갈 ‘관리형 지도자’가 절실한 형편이다. 그렇다면 베어벡은 적임자일까?
그는 감독으로서 검증받지 못했다. 1991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의 감독 대행으로 네덜란드FA컵에서 우승한 게 가장 눈에 띄는 이력이다. 이후 네덜란드 그로닝겐(1992~93), 일본 오미야(1998~2000)와 교토 퍼플상가(2003),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국가대표팀(2004) 감독을 맡았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만으로 그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자격 미달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명성이 높은 감독이 온다고 해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은 이미 코엘류와 본프레레를 통해 확인했다. 한국 선수들을 잘 알고 두 차례 월드컵을 코치로서 치른 그의 경험은 대표팀을 위해 훌륭히 활용될 수 있다.
2001년 말 히딩크 감독이 선임될 당시에도 그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와 레알 베티스에서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던 것을 예로 들며 “한물간 지도자다” “실패에 익숙한 감독이다”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18개월의 시간을 두고 자신의 능력을 검증했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지도자를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포함될 만큼 저명인사가 됐다.
베어벡은 최종결정권자로서의 위기관리 능력과 팀 장악력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한국 축구의 영원한 숙제인 기술축구로의 방향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는 2007년 아시안컵을 통해 확인해도 늦지 않다. 그가 밝힌 대로 4년 반 동안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등 최고의 지도자들과 함께했던 경험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