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벌거벗은 남자 두 명이 끈적하게 끌어안은 광고를 볼 때도 그랬다. 김 씨에겐 명백한 동성애를 레슬링 장면인 듯 시침 뗀 휴대전화 광고가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두 딸은 “쿨하다!”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두 딸은 속칭 ‘야오이’라는 꽃미남 게이 만화에도 흠뻑 빠져 있었다. 동성애라면 비정상적인 성교를 먼저 연상하는 김 씨와 달리 두 딸에게 동성애자는 멋진 ‘사람’이었다.
공중파 TV 광고·드라마에도 동성애적 은유 확산
2000년 이후 홍석천, 하리수 같은 연예인들은 스스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임을 선언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음지에 숨어 있던 동성애자들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선 2005년 말 ‘시민결합법’이 통과됐고, 왕년의 팝스타 엘튼 존이 남성과 결혼식을 올렸다는 해외토픽도 보도됐다. 그러나 김 씨 같은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다른 세상의 일들일 뿐이었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왕의 남자’로 스타가 된 꽃미남 이준기가 세상의 ‘표준’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김 씨처럼 우락부락하고 배 나온 아저씨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현대사회의 ‘성적(性的) 소수자’가 된 것처럼 느끼지 않을까? ‘성적 소수자’는 이성애(異性愛) 중심의 사회에서 이성애 외의 성 정체성을 가진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을 통칭하는 용어다.
‘동성애 코드’는 이제 국내에서도 영화와 음악, 미술, 패션, 만화 등 모든 장르의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떠올랐다. 최근 ‘왕의 남자’가 몰고 온 열풍이 동성애에 대한 일반의 거부감을 대폭 낮추는 구실을 했다. 공중파를 타는 광고와 드라마에서도 동성애적 상징과 은유는 빠르게 확산되고 재생산된다.
게이 코드와 위트 있는 반전을 활용해 화제의 휴대전화 광고를 만든 TBWA코리아(기획 강상욱, 감독 최인봉) 측은 제작 의도에 대해 “휴대전화의 3D 입체음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며 “광고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었고 일반인의 반감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동성애 코드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1997년 영화 ‘해피투게더’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수입불가 판정을 받았던 것을 돌이켜보면 놀라울 정도다.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영화는 당시 “동성애가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입이 거부됐다가 1년간의 논란 끝에 개봉됐으나 저조한 흥행성적을 내고 막을 내렸다. 그 후 ‘패왕별희’ ‘결혼피로연’ ‘인앤아웃’ ‘바운드’ ‘프리스트’ ‘프리실라’ ‘헤드윅’ 등 다양한 동성애 및 퀴어 영화(동성애를 소재로 할 뿐 아니라 성 정치적 입장을 가진 영화)들이 국내에 소개됐고, 국내에서도 ‘내일로 흐르는 강’이나 ‘로드무비’ 같은 동성애 영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동성애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휴머니티’로 포장된 채 공개되곤 했다. 얼마 전까지 영화에 대해 동성애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그 영화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왕의 남자’는 제목에서부터 동성애를 다룬 영화임을 암시했다. 물론 ‘안전장치’는 마련해놓았다. 주인공들의 동성애를 관객의 성 정체성에 따라 제각각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 한 동성애자 영화인은 ‘왕의 남자’에 대해 “퀴어영화는 아니다. 동성애 장면들은 연산군의 심리적 갈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 데 비해 게이 소설가 한중렬 씨는 “잘 만든 동성애 영화”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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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길버트와 조지의 ‘알라’(오른쪽). 김두진의 ‘동성애 공포증’
최근 개봉된 동성애 영화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하려고 했던 과거의 퀴어영화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동성애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동성애 연인과 가족, 사회와의 관계와 심리적 갈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예술에서 영화보다 먼저 동성애를 소재로 삼은 분야는 현대 사진과 미술이었다. 동성애에 철학적인 무게를 실은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과 뤼시앙 프로이드(1922~), 팝과 동성애를 결합한 데이비드 호크니(1937~)나 앤디 워홀(1928~1987) 등이 그 선구자들이다. 레이건 시절에는 마약과 양성애, 자신의 동성애 사진으로 기성체제에 저항하며 미국 사진예술의 전성기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어낸 로버트 메이플소프 같은 동성애 작가들이 활동했다. 레즈비언이었던 낸 골딘, 영국의 길버트와 조지 커플, 프랑스의 피에르와 질 커플, 일본의 아라키 노부요시 등도 자신의 동성애 취향을 드러낸 작품들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됐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경우 다소 과장한다면 전체 출품작의 절반은 동성애에게, 나머지 절반은 페미니즘에 할애됐을 정도였다.
외국의 현대 미술과 영화가 가르쳐준 교훈은 동성애 코드가 보편성을 확보하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는 점, 그러기 위해서는 동성애자가 스스로 발언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9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동성애를 보여주마’ 식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대중의 선정적인 호기심만 부추긴 뒤 사그라진 경험도 이를 입증한다.
사진평론가 진동선 씨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후반까지 1년에 한 명 정도꼴로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다큐 사진작가들이 나왔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사진은 ‘신기한’ 동성애자들을 포기하고 ‘심심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에 자기 이야기를 한 동성애 사진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셈”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반성에서 미술과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다양한 개인들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여성작가 니키 리는 스스로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가 레즈비언이 된 뒤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흑인이 되어(분장을 한다) 흑인 커뮤니티에도 들어가고, 접대부로 취직해 접대부가 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예술이 성적, 인종적, 계급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예다.
2004년 6월19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동성애자들이 참여하는 퀴어 문화축제 ‘무지개 2004’.
“작가는 자기 작품이 보다 다양한 의미를 갖기 바란다. 커밍아웃하면 동성애 코드로 해석되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많아 아쉽다. 그러나 성 정체성은 나의 삶이고 양심인데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김두진)
커밍아웃하지 않은 동성애 작가들은 물론 훨씬 많다. 사회적 불이익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는 것이다. 김두진 씨는 “정체성을 부인당하기 때문에 때로 나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동성애 영화의 경우, 국내 최초의 게이 인권모임 ‘친구사이’ 10주년을 기념하는 ‘동백꽃’ 옴니버스 영화가 지난해 나왔다. ‘동백꽃’은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에 의한 프로젝트.
2001년 뉴욕에서 초연됐고, 국내에서도 장기 공연 중인 뮤지컬 ‘프로듀서스’(2월14일까지, 국립극장)는 유대인과 중년 관객이 많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금기시되던 동성애 코드를 곳곳에 배치한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선 ‘즐겁게이’로 번역된 노래 ‘Keep it gay’가 나올 때쯤이면 점잖은 관객들도 결국 배꼽을 잡는다.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관객들조차 게이들끼리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되는 손 동작이 무슨 뜻인지 알 정도이며, 동성애 시장규모는 61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동성애 코드의 일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찾기도 한다. 이성애 여성들이 남성 동성애를 소재로 한 만화와 소설, 즉 야오이라는 하위 문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여성 회화작가 김화현이 야오이에서 빌려온 회화 ‘와호’를 보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성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꽃미남 누드는 남자와 여자의 시선 모두를 즐기고 있다. 꽃미남에 대한 인기는 동성애를 넘어서 제4, 제5 성의 존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동성애 코드는 금세 사라지고 말 유행이 아니다. 더 많은 성들이 더 강력하고 더 분명하게 대중문화의 전면에 떠오를 일만 남았다. 니체가 일찍이 예언했듯, 현대 문명의 대전환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기존의 정형화된 성 역할을 끊임없이 부인하는 것으로부터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