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육군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경기 연천 총기난사 사건의 주인공 김모(23) 일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연천 총기난사 사건이란, 지난해 6월 경기 연천 최전방 소초(GP)에서 김 일병의 무차별 총격으로 장교와 사병 8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비록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긴 했지만, 김 일병은 ‘아직’ 사형수가 아니다. 현재 고등군사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고할 경우 대법원의 최종판결도 변수다. 한마디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군 사형수는 몇 명이나 될까. 취재 결과 단 한 명의 사형수가 있었다. 1996년 초병 살해, 상관 살해미수죄 등으로 기소돼 이듬해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김모(31) 상병이다. 2006년
2월 현재 국내 사형수는 모두 62명. 그중 군 사형수로는 김 상병이 유일하다.
김 상병은 현재 경기 장호원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군인 범죄자는 원칙적으로 군교도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중범죄로 징역 1년 6개월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군인 신분이 상실되는 제적 조치가 이뤄짐과 동시에 민간교도소로 이감된다. 다만 사형수는 예외다.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는 미결수로 분류하는 까닭에 민간교도소로 이감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장교의 경우엔 군사보안 차원에서 형이 확정되더라도 군교도소에 그대로 남게 된다. 그러나 군사법원법이 개정(현재 국회 계류 중)되면 앞으로는 장교 기결수도 민간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사형수인 만큼 김 상병에 대한 취재는 쉽지 않았다. 국방부와 육군본부, 헌병대를 통한 공식 취재는 별 소득 없이 끝났다. 교도소장과 군목(軍牧), 헌병 장교, 군 법무관 등 군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
총기로 3명 살해, 2명 부상 입혀
특별면회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초 육본 측은 당사자가 동의만 하면 취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김 상병은 ‘사형제 반대 여론이 확산되는 추세에서 군 사형수의 삶을 조명하고 싶다’는 취지의 인터뷰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가십거리 기사를 쓰게 할 마음이 없으며, 사형수로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가 직접 밝힌 면회 사절 이유였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김 상병은 자신이 일으킨 사고와 비슷한 연천 총기난사 사건이 터진 이후 매우 예민해져 있다고 한다. 분노한 여론의 불똥이 ‘잊혀진 존재’인 자신에게까지 튀어 자칫 신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김 일병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직후 몹시 불안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11월2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형폐지·종신형 입법화를 위한 결의대회’ 참가자들.
형 집행 방식도 다르다. 민간인은 교수형이지만 군인은 총살형이다. 다만 판결 확정 후 6개월 이내에 집행해야 하고(군사법원법 제508조), 장관의 명령이 내려지면 5일 이내에 형을 집행해야 한다(군사법원법 제509조)는 규정은 민간의 경우와 차이가 없다.
김 상병의 죄명은 상관 살해미수, 초병 살해, 살인, 살인미수 등
4가지. 판결문에 따르면, 김 상병의 범행 동기는 모욕감에 따른 분노로 보인다. 소속 중대장 K 대위 등에게서 업무처리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심한 욕설을 듣고 괴로워하던 중 보급품 관리 소홀로 선임인 K 상병한테서 혼나면서 감정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96년 10월1일 김 상병은 탈취한 K-2 소총으로 초소 근무를 서고 있던 사병 2명과 체력단련장에 있던 사병 1명을 사살했다. K 대위와 K 상병은 그에게 집중사격을 받았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96년 11월 육군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총기를 이용한 범행은 군의 존립 자체를 뿌리째 흔드는 중차대한 범죄로 군 조직사회 보호 및 범죄의 일반적 예방 차원에서도 극형의 선택이 불가피하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이듬해 4월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원심 양형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그해 6월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됐다.
군 당국에 따르면, 김 상병은 말수가 적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비교적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종교는 기독교로, 틈틈이 성경 필사를 하는 한편 교회 성가대 활동도 하고 있다. 열성적인 종교 활동은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그의 삶에 큰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종교 관계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접촉은 그에게 사랑과 이웃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사형수의 대부’로 불리는 박삼중 스님의 강연을 듣고서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취미도 다양하다. 붓글씨를 배우고 있고, 시간 나는대로 영어와 한자를 공부하고 있다. 운동도 좋아해 배구와 족구, 테니스를 즐기고 태권무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또 화초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어 교도소 내 화원을 관리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일구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독서량도 많은 편인데,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항공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사형 확정 직후부터 지금까지 월간 ‘항공’이라는 잡지를 꾸준히 구독하고 있다는 사실. 전역 후 공군 부사관에 지원할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엔 패션잡지와 지압, 마사지 등 건강 관련 잡지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의 심리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는 토끼 키우기다. 몇 년째 토끼를 키우고 있는데, 토끼 새끼가 태어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고 행복해하지만, 개에 물려 죽거나 하면 온종일 우울해하고 짜증을 낸다는 것.
97년 12월23일 이후 9년째 사형 집행 중지
비록 24시간 CCTV로 감시당하고 있긴 하지만, 모범수에 준한 처우를 받고 있는 터라 신문과 TV 시청이 허용되고 있다. 그의 부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그를 접견하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에 열린 ‘성탄절 가족 만남의 날’ 행사에는 동생들을 비롯해 모처럼 많은 가족과 친척이 찾아와 그를 기쁘게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제조업을 하는 그의 부친이 사건 당시 부도를 맞아 거듭 사업에 실패한 점도 범행심리에 영향을 미쳤다.
“사형수로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아직 많다”는 고백에 걸맞게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물을 멍하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시며 삶의 허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때로 맥없이 무너지고 참담해진다. 이유는 단 하나. 목숨을 저당 잡힌 사형수이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거나 한동안 면회를 와주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한다. 애써 기른 토끼 새끼들이 하루아침에 숨을 거둘 때면 가슴이 타 들어가는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교도소 당국은 상고 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된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그에게 통보했고, 그는 그 소식을 접한 뒤 상당 기간 괴로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몇 년 전 일련의 군 관련 사건·사고로 경계태세가 강화됐을 때는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는 얘기도 들린다. 피해자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반송됐을 때 그가 얼마나 상심했을지는 미뤄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97년 12월 23명의 사형수에 대해 무더기로 형이 집행된 이후 9년째 사형 집행이 중지된 상태다.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돼온 사형제 폐지 여론의 여파는 정치권과 사법부의 단단한 ‘보수 벽’을 허물고 있다. 2004년 여야 국회의원 175명이 발의한 사형폐지특별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형제도는 사라지게 된다. 설사 이 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해 현 대법관 13명 중 8명이 사형제 폐지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형 확정 판결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형 미집행에 대해 “법률상 형 확정 후 6개월 내에 하게 돼 있지만, 이는 강제조항이 아니다”면서 “더욱이 국회에 사형폐지법안이 계류 중이므로 당분간 사형이 집행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관계자도 “사형과 관련된 군사법원법 조항은 거의 사문화됐다고 봐야 한다”고 사형 집행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98년부터, 즉 97년 12월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지금까지 8년 동안 새로 사형이 확정된 사람은 지난해 3명을 비롯해 모두 36명이다. 연 평균 4.5명의 사형수가 배출된 셈이다. 김 상병은 2002년 대선이 끝난 뒤 언론 보도를 통해 새로 출범할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사형제 폐지에 관심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마음 한구석에 가냘픈 희망의 싹을 키워온 것으로 전해진다.
“누구도,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해도, 설사 악마의 화신이라 해도 그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지요.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선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누구도 결백하지만은 않으니까, 우리는 다만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악하니까, 산다는 것이 속죄를 하든 더 죄를 짓든 그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한테는 그걸 막을 권리가 없는 거니까….”
(공지영,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