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시민과 척수환자들이 모여 황 교수 복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믿음에서 의심으로
“양식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된 것이다.” 이성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나, 현실은 그와 달라, 정작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타고난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정신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을 기술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방법서설’이다.
왜 데카르트인가? 학부 시절에 읽었던 데카르트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최근의 황우석 사태 때문이다. 합리주의 철학이 등장한 지 400년이 흐르고 계몽의 역사가 시작된 지 200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아직 충분하게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게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나라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서는 데카르트가 아직 시의성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많은 잘못된 견해들을 참된 것인 양 받아들였고, 그렇게 불안정한 원칙들을 근거로 해서 내가 쌓아올린 것이 불확실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학문에서 어떤 확고부동한 것을 이룩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견해를 벗어나 아주 기초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깨달았다.”
‘확실한 지식성에 도달하기 위해 먼저 모든 것을 의심에 부치자.’ 이것이 그 유명한 ‘방법적 회의’다. 중세 이래로 서구인들에게 믿음은 ‘미덕’이요, 불신은 ‘악덕’이었다. 교회에서 믿음은 진리요, 불신은 거짓이라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이런 낡은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려면 먼저 불신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종교와 과학의 차이이자, 중세와 근대의 차이다. 황우석 사태를 보자. 황 박사는 과학자임에도, 이 사회는 그의 연구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도 황 박사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여전히 깨지지 않는다. 이 집요한 믿음은 과학적 신뢰일까? 아니면 종교적 신앙일까?
감각을 불신하라
방법적 회의의 원칙에 따라 이제 데카르트는 먼저 감각으로 받아들인 상들을 의심하라고 권한다. 왜 감각을 불신하라고 권하는 걸까? 예를 들어보자. 물속에 담근 숟가락은 휘어져 보인다. 감각은 우리를 속이나, 이성은 우리에게 ‘숟가락은 휘어지지 않았다’는 진리를 말한다. 따라서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되도록 “감각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감각을 믿지 말라고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감각에는 지동설보다 천동설이 더 옳아 보인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누가 감히 부정하겠는가. 바로 그래서 천동설이 그토록 오래 유지돼온 게 아닌가.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였다. 이렇게 과학적 진리는 종종 우리의 감각경험에 배치된다.
데카르트 시대와 달리 오늘날 세계는 주로 미디어를 통해 주어진다. 황우석의 찬란한 업적에 대한 인식도 실은 모두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인 허상에 불과하다. 그 이미지는 척추가 손상된 개가 펄펄 뛰어다니는 동영상일 수도 있고, 수염을 깎지 않은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황 박사의 사진일 수도 있고, 2004년과 2005년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의 사진일 수도 있다.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은 그 허상의 실재를 믿었고, 또 아직도 믿는다. 이들과 대조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준 것은 아마 ‘브릭’의 자연과학도들. 이미지를 의심하는 이들은 논문에 실린 사진에서 조작의 흔적을 찾아냈고, 황 박사가 연출한 수난극에서 촌스런 신파를 보았으며, 그가 배포한 선전용 동영상들의 진위에 의혹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철저한 합리주의자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상상력을 배제하라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내부에 있는 상상력은 (…) 나의 본성이나 본질에, 다시 말하면 내 정신의 본질에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귀에 이런 요구는 해괴하게까지 들린다. 오늘날에는 외려 상상력을 창의성의 근원으로 상찬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그런데 왜 그는 상상력을 멀리하라고 가르치는 걸까?
종교와 과학의 충돌 예를 보여준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장면.
황우석 지지자들이 모인 사이트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그들의 왕성한 상상력이었다. 누군가 줄기세포 기술을 빼앗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황 박사를 궁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즈메디 음모론, 서울대 음모론에서 CIA 음모론과 유대인 음모론을 거쳐, 프리메이슨 음모론까지 황 박사를 옹호하는 상상력은 참으로 풍부하고 다채롭기 한이 없었다.
이들과 대조가 되는 것이 바로 ‘브릭’ 사이트의 건조한 태도다. 그 사이트 글 목록을 보면 종종 괄호 치고 “추측성 내용 삭제”라고 표기한 글들이 눈에 띈다. 여기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이 추측의 날개를 펴는 글을 올리면 곧바로 관리자에 의해 가차 없이 삭제된다. 한마디로 이곳은 사실을 논하는 곳이지, 상상의 날개를 펴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엄격함이 데카르트가 말하는 합리주의적 태도다.
데카르트와 로크의 철학 형성에 도움을 준 뉴턴의 광학실험.
이 역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문명화 과정’에서 지적한 것처럼, 문명화 이전의 인간들은 정념을 요란하게 분출하는 경향이 있었다. 선악 이분법에 따라 친구에는 무한한 애정을, 적에게는 무한한 잔혹함을 드러내고, 감정의 진폭도 넓어 조증에서 울증으로 순식간에 넘어가곤 했다. 한마디로 ‘인성의 안정성’이란 게 아직 없었던 것이다.
황우석을 지지하는 사이트에서 상상력만큼 풍부한 것이 바로 다채롭게 표출되는 감정의 스펙트럼. 대문에 전투 공고가 나붙어 있는가 하면 (“사상 최대의 결전-2일”), 욕설은 물론이고(“진보 먹물이라는 진쭛쭛, 이놈을 뭐라 부를까요. 저는 개라 부르겠습니다”), 신체적 위해의 협박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이놈들은 집 밖을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의 향연인가.
그에 비해 ‘브릭’ 사이트의 게시판은 마치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 듯 차갑기만 하다. “펌글, 비방, 욕설, 추측성 내용에 대해서 더욱 강경하게 경고 조치할 예정이며,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적으로 규정을 위반하여 글을 작성하는 회원에 대해서는 강제탈퇴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이 규칙은 아주 철저하게 지켜져, 감정을 배설하는 글은 곧바로 삭제되고, 글의 작성자는 곧바로 추방된다. 이것은 ‘정념’을 대하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중세냐, 포스트모던이냐
데카르트 자신이 의심했던 악마의 시달림을 받다(풍자화).
보드리야르가 얘기했듯이 오늘날 세계는 점점 더 가상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있다. 플루서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가상과 현실을 가르는 분별력보다 가상을 현실로 바꿔놓는 상상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게다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합리적인 근대인에서 벗어나 정념의 자유로운 표출을 노래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마디로 황우석 신드롬은 탈근대의 창조적 가능성을 가지고 근대 이전으로 퇴행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황우석 신드롬을 ‘계몽’ 이전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없다. 글쓰기가 모든 이의 것이 되고, 인구의 80%가 대학에 들어가는 사회에서 과거에 지식인들이 누리던 계몽의 권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이른바 ‘황빠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배웠다고 믿기에 ‘지식인들의 훈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계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계몽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재미있는 것은, 황우석 박사가 늘 전문가 집단을 거치지 않고 대중을 향해 직접 말을 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가 살던 시대에 보통 사람들은 수도승과 과학자 중 누구 말을 더 믿었을까? 인터넷 시대의 대중은 황 교주가 내놓은 장밋빛 영생 약속과,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줄기세포 연구의 회색빛 현실 중에서 어느 것에 더 귀를 기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