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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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깨도 양보 못해” 전쟁 같은 지옥훈련

선수들 감독 눈도장 받기 위해 도전적 발언과 행동 … 치열한 경쟁 속 집중력과 의지 담금질

  • 두바이·리야드·홍콩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입력2006-02-08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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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었다 깨도 양보 못해”  전쟁 같은 지옥훈련

    ①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훈련에서 제외됐던 최태욱은 각오를 다지기 위해 삭발했다. ②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은 김영광이 어두운 표정으로 그라운드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③ 1월 17일 오전(현지시각) 두바이 알 나스르 스타디움에서 선수들이 훈련이 끝난 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입심 좋기로 소문난 김상식(30)이 침묵하고 있다. 아드보카트호의 지옥훈련 때문이다. 김상식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오락 반장. 배꼽을 잡게 하는 농담으로 팀 분위기를 띄우는 청량제 같은 존재다. 그런 그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걸쭉한 입담을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료들은 그의 우스갯소리가 그리운 눈치지만, 다물어진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경쟁심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온 한국 축구선수들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도전적인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2006독일월드컵 그라운드를 밟는 것은 이들의 공통 목표. 그러나 5월 초 해외파가 대표팀에 합류하면 이들 중 상당수는 보따리를 싸야 한다. 호텔이나 식당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친하게 지내다가도 운동장에만 들어서면 눈빛이 매서워지는 이유다.

    1월20일 오후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 래디슨호텔 4층 피트니스센터. 점식식사 후 숙소에서 토막잠을 자는 전지훈련의 낯익은 모습이 사라지고, 선수들은 삼삼오오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몰려들었다. 휴식 시간을 쪼개 근력운동에 나선 것이다. 조준호(부천), 조원희(수원), 김두현(성남), 정조국(서울)은 새벽에도 이곳을 찾아 흥건하게 땀을 뺀 뒤 아침식사 테이블에 앉았다.

    쉴 때는 어깨동무 … 운동장 들어서면 눈빛 매서워져

    코칭스태프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각오를 다지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껴 정상훈련에서 제외됐던 최태욱(시미즈)은 “독일행 비행기에 반드시 올라야 한다”면서 헤어클리프로 머리칼을 밀고 투혼을 불살랐다.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삭발로 달랜 것. 같은 해, 같은 날(1981년 7월9일)에 태어난 조재진과 이천수는 독일월드컵 때까지 수염을 기르겠다는 ‘수염 결의’를 맺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코발트빛 해안과 휘황찬란한 홍콩의 밤거리도 이들에게는 사치일 뿐이었다.



    ‘차세대 수문장’ 김영광(전남)은 재활훈련 중이다. 오른쪽 무릎 인대를 다쳤기 때문. 그는 부상으로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생각에 눈물을 쏟기도 했으나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조엘 오스틴이 지은 ‘긍정의 힘’을 읽고 있다는 그는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다’는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반드시 독일행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첫 경기에서 35m 중거리골을 작렬시킨 ‘금빛날개’ 김동진(서울)의 양말은 훈련을 마치고 나면 핏빛으로 물든다. 그리스전을 마치고 샤워를 하다가 대형 거울이 깨지면서 발등에 거울 파편이 박혀 세 바늘을 꿰맸기 때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잠시 쉬라”고 말했으나, 김동진은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축구화 대신 조깅화를 신고 훈련장에 나타났다. ‘조깅화 투혼’을 보인 그는 1월29일 크로아티아전에서 짜릿한 골로 국민들에게 설 선물을 안겼다. 이날은 그의 스물네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이국에서의 합숙훈련이 고될 법도 하건만 선수들의 집중력과 의지는 나날이 단련돼가고 있다. 담담하기로 소문난 이동국은 “골을 못 넣어 자존심이 상한다. 미국 전지훈련에서는 무조건 골을 넣겠다”고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정조국은 “내 숨은 장점을 모두 드러내 보이겠다. 보여줄 게 너무나 많다”고 대선배들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독일의 그라운드를 누비겠다’는 선수들의 집념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대표팀을 똘똘 뭉치게 한다. 붙박이 터줏대감과 이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젊은 피’.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들의 경쟁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 누가 지옥훈련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6월까지 경쟁은 계속된다.

    박 터지는 주전 경쟁

    포지션별 선발 출장은 1명뿐 … 서로 자극 상승 효과


    아드보카트호 전지훈련의 작전명은 ‘생존’. 포지션별로 선발 출장할 수 있는 선수는 1명뿐이다. 이름값만으로는 주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여겨진 이동국과 ‘축구 천재’ 박주영도 벤치워머로 전락할 수 있다.

    “죽었다 깨도 양보 못해”  전쟁 같은 지옥훈련
    ▶ 김남일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 vs 이호 “50대 50이죠”

    중원에서 모래 바람이 일고 있다. ‘원조 진공청소기’ 김남일(수원)과 ‘신형 진공청소기’ 이호(울산)가 굉음을 내며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경쟁자를 평가하는 말엔 뼈가 숨겨져 있다. 김남일은 이호를 두고 “제대로 된 라이벌이다. 하지만 이호는 경험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자 이호는 “라이벌이라고 불러준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나는 아직 배울 게 많다. 그러나 주전에 오를 가능성은 50대 50이다”라며 경쟁심을 숨기지 않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들을 번갈아 투입하면서 경쟁을 통한 ‘상승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김남일을 대표팀에 천거했고, 다듬어지지 않았던 그를 옥석으로 만든 핌 베르베크 코치는 “이호가 정말 잘하고 있다. 김남일은 분발해야 한다”며 김남일을 자극하고 있다.

    “죽었다 깨도 양보 못해”  전쟁 같은 지옥훈련
    ▶ 이동국·조재진의 동상이몽 “황새의 권좌는 내 것”

    ‘황새’ 황선홍이 떠난 자리를 놓고 두 킬러가 경쟁하고 있다. ‘사자왕’ 이동국(포항)과 ‘작은 황새’ 조재진(시미즈)이 그들이다. 98년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포항에서 황선홍과 방을 함께 썼다. 당시 황선홍은 “대표팀의 대형 스트라이커가 되어달라”고 이동국에게 당부하곤 했다. 그러나 2002한일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하면서 이동국은 일생일대의 좌절을 겪는다. 그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면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으나 골이 터지지 않아 속이 타 들어간다. 어린 시절부터 황선홍의 18번을 달고 뛴 조재진의 별명은 ‘작은 황새’다. 황선홍을 보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왔다는 조재진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재진은 2월1일 덴마크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면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동국과 조재진은 해외파와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죽었다 깨도 양보 못해”  전쟁 같은 지옥훈련
    ▶ 이천수·박주영 “유럽파도 무섭지 않다”

    지난해 K리그 MVP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이천수(울산)와 박주영(서울). 대표팀에서 이들은 윙포워드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 그리스전에서 박주영은 이천수의 오른발 프리킥을 감각적인 헤딩골로 연결시켰다. 해외파가 가세하면 주전 자리를 내놓을 수도 있는 불안한 처지의 이들은 이번 전지훈련에서 활발한 플레이를 펼치며 차두리, 설기현 등 유럽파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정경호는 윙포워드 경쟁의 다크호스. 이름값은 경쟁자들보다 떨어지지만 출전한 경기마다 맹활약하고 있다. 선수층이 두터운 윙포워드는 후반 ‘조커’ 자리를 놓고도 경쟁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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