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떤 전문가도,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한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도, 팔레스타인의 여론조사기관도 하마스의 압승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입법의회 선거 직후 이뤄진 출구조사 결과도 53대 48로 현 집권정당인 파타흐의 근소한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선거 이튿날인 1월26일. 팔레스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공식 결과는 하마스의 승리였다. 하마스 74석, 파타흐 45석으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입법의회 132석 중 과반의석을 훌쩍 넘어버렸다. 이로써 하마스는 어떤 정당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0여 년간 집권여당이었던 파타흐는 실각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 정국이 되고 말았다.
여당에 실망한 민심 하마스 선택
하마스의 압승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이해 못할 상황은 결코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권력을 독점한 파타흐의 부패와 족벌주의는 이미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당초 ‘협상전문가’로 기대를 모았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정책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반면 하마스는 정착촌 건설이나 분리장벽 설치 같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조치들에 대해 무력 대응으로 맞서왔다. 또한 ‘유사국가’라고 불릴 만큼 잘 발달된 사회봉사 조직을 갖추고 있다. 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 학교, 병원, 모스크, 구호기관 등에는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민중이 몰렸다. 자연스럽게 하마스는 그들의 보호자가 됐고, 이것이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선거 결과에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쪽은 역시 이스라엘이다. 2000년 2차 인티파다 발발 이후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전개해온 하마스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한 것은 이미 인지된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번 선거에서 하마스가 전체 의석 중 30~40% 정도를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고, 따라서 하마스가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막기 위해 “하마스가 참여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인정할 수 없고 협상도 없다”고 미리 엄포를 놓는가 하면, 미국과 유럽연합을 상대로 하마스가 연정에 참여할 경우 팔레스타인에 대한 각종 경제원조를 중단해줄 것을 설득해 부분적인 동의를 얻어놓은 상황이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의 테러단체 목록에 올라 있는 단체다. 87년 설립된 하마스가 88년 채택한 이른바 ‘하마스 강령’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시온주의자들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전 영토를 이슬람으로 통일”하는 것이 강령에 명시된 하마스의 설립 목적이다.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은 2004년 하마스 창시자인 아흐메드 야신과 그의 후계자 압둘 아지즈 란티시를 표적 암살하는 등 그간 하마스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현 하마스 지도부인 마흐무드 자하르와 이스마일 하니야도 몇 차례 이스라엘의 암살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자하르는 이 과정에서 아들을 잃기도 했다.
이 같은 배경을 확인이라도 하듯,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리엘 샤론 총리를 대신해 내각을 이끌고 있는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대리는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파트너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에 배당된 1월분 세금 수입의 양도도 거부했다.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된 살인자들”에게 자금을 댈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반면 현 상황을 호기로 보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평화협상에 일관되게 내세운 전제조건이 바로 ‘테러 근절’이다. 팔레스타인 내 무장단체들의 무장을 해제시켜야만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그런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협상 무산의 주역은 항상 하마스였는데 그런 하마스가 자치정부를 이끌게 됐으니 비로소 이스라엘이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났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미묘한 입장 변화도 앞으로 이-팔 간 평화협상에 진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선거 후 이들이 밝힌 입장은 “테러라는 수단을 버리지 않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마스를 팔레스타인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고 원조도 없다”는 것. 테러라는 수단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팔레스타인의 대표로 인정할 수 있고 관계도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번 선거결과로 이스라엘 못지않게 딜레마에 빠진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중동평화의 선결조건을 ‘민주화’로 못 박았고 현재도 이라크에서 이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딜레마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팔레스타인의 대표가 하마스라는 점이다. 중동지역 이슬람 국가 중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을 바꾸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민주선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라는 점이 미국과 국제사회가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분이라면, 테러단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이다. 이 둘 사이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조건이 바로 ‘테러를 버리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 셈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 향후 관계에 대한 질문에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없다”라는 원론적인 대답만을 되풀이한 채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3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하마스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하마스와의 협상 가능’ 같은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은 곧바로 표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집권여당은 아리엘 샤론 총리가 우파정당인 리쿠드당을 탈당하고 나와 만든 신당으로 3월 총선에서도 승리가 예상되는 카디마당이다. 카디마의 지지자들 상당수가 리쿠드당에서 이탈한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로서 하마스에 대한 유화 제스처는 이들 지지자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입장 표명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관계 설정은 3월 총선이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하지만 선거 이튿날인 1월26일. 팔레스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공식 결과는 하마스의 승리였다. 하마스 74석, 파타흐 45석으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입법의회 132석 중 과반의석을 훌쩍 넘어버렸다. 이로써 하마스는 어떤 정당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0여 년간 집권여당이었던 파타흐는 실각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 정국이 되고 말았다.
여당에 실망한 민심 하마스 선택
하마스의 압승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이해 못할 상황은 결코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권력을 독점한 파타흐의 부패와 족벌주의는 이미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당초 ‘협상전문가’로 기대를 모았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정책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반면 하마스는 정착촌 건설이나 분리장벽 설치 같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조치들에 대해 무력 대응으로 맞서왔다. 또한 ‘유사국가’라고 불릴 만큼 잘 발달된 사회봉사 조직을 갖추고 있다. 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 학교, 병원, 모스크, 구호기관 등에는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민중이 몰렸다. 자연스럽게 하마스는 그들의 보호자가 됐고, 이것이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선거 결과에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쪽은 역시 이스라엘이다. 2000년 2차 인티파다 발발 이후 대(對)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전개해온 하마스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한 것은 이미 인지된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번 선거에서 하마스가 전체 의석 중 30~40% 정도를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고, 따라서 하마스가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막기 위해 “하마스가 참여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인정할 수 없고 협상도 없다”고 미리 엄포를 놓는가 하면, 미국과 유럽연합을 상대로 하마스가 연정에 참여할 경우 팔레스타인에 대한 각종 경제원조를 중단해줄 것을 설득해 부분적인 동의를 얻어놓은 상황이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의 테러단체 목록에 올라 있는 단체다. 87년 설립된 하마스가 88년 채택한 이른바 ‘하마스 강령’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시온주의자들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전 영토를 이슬람으로 통일”하는 것이 강령에 명시된 하마스의 설립 목적이다.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은 2004년 하마스 창시자인 아흐메드 야신과 그의 후계자 압둘 아지즈 란티시를 표적 암살하는 등 그간 하마스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현 하마스 지도부인 마흐무드 자하르와 이스마일 하니야도 몇 차례 이스라엘의 암살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자하르는 이 과정에서 아들을 잃기도 했다.
|
이 같은 배경을 확인이라도 하듯,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리엘 샤론 총리를 대신해 내각을 이끌고 있는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대리는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파트너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에 배당된 1월분 세금 수입의 양도도 거부했다.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된 살인자들”에게 자금을 댈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반면 현 상황을 호기로 보는 분석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평화협상에 일관되게 내세운 전제조건이 바로 ‘테러 근절’이다. 팔레스타인 내 무장단체들의 무장을 해제시켜야만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그런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협상 무산의 주역은 항상 하마스였는데 그런 하마스가 자치정부를 이끌게 됐으니 비로소 이스라엘이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났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미묘한 입장 변화도 앞으로 이-팔 간 평화협상에 진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선거 후 이들이 밝힌 입장은 “테러라는 수단을 버리지 않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마스를 팔레스타인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고 원조도 없다”는 것. 테러라는 수단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팔레스타인의 대표로 인정할 수 있고 관계도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번 선거결과로 이스라엘 못지않게 딜레마에 빠진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중동평화의 선결조건을 ‘민주화’로 못 박았고 현재도 이라크에서 이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딜레마는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팔레스타인의 대표가 하마스라는 점이다. 중동지역 이슬람 국가 중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을 바꾸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민주선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라는 점이 미국과 국제사회가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분이라면, 테러단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이다. 이 둘 사이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조건이 바로 ‘테러를 버리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 셈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현재 향후 관계에 대한 질문에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없다”라는 원론적인 대답만을 되풀이한 채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3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하마스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하마스와의 협상 가능’ 같은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은 곧바로 표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집권여당은 아리엘 샤론 총리가 우파정당인 리쿠드당을 탈당하고 나와 만든 신당으로 3월 총선에서도 승리가 예상되는 카디마당이다. 카디마의 지지자들 상당수가 리쿠드당에서 이탈한 우파 성향의 유권자들로서 하마스에 대한 유화 제스처는 이들 지지자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입장 표명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관계 설정은 3월 총선이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