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최응렬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최근 황당한 통계수치를 접했다. 경찰청이 매년 펴내는 ‘경찰백서’에 따르면, 2004년 경찰이 검거한 마약·밀수 분야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배는 267명. 2003년 검거된 3명에 비해 무려 8800%나 증가한 수치다. 해마다 검거되는 마약·밀수 관련 조폭이 10명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267명은 믿기 어려운 실적. 최 교수는 경찰청에 문의한 결과 “잘못 취합된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39명이 정확한 수치라는 것.
자치경찰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인 노모 교수는 경찰이 제공한 통계수치의 정확성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경찰이 보내온 전국 지구대(옛 파출소)별 관할면적, 관할인구의 수, 112신고 접수건수 등은 실제와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각 항목을 직접 더해본 것과 종합 수치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는 것. 심지어 ‘경찰통계연보’에서는 한 지방도시의 인구가 실제보다 1000만명 이상이 많게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통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경찰은 2000년 ‘정직한 경찰통계 원년’을 선포하고 사소한 사건·사고까지 누락 없이 통계에 포함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경찰 통계는 부정확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범죄통계가 누적되고 있지 않다는 점.
피부에 와 닿는 범죄정보 알 수 없어
자취생들이 많이 사는 서울 신림동 일대에서는 ‘대전 발발이 사건’과 유사한 가택 침입 강간사건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대리운전자 범죄는 어떤 유형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할까? 출퇴근 시간 지하철 2호선에서 성추행을 당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범죄정보에 관한 궁금증에 대해 현재 경찰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경찰청 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전체 살인사건 수치만 있지 청부살인 수치는 없고, 존속살인 수치만 있지 비속살인(부모가 자녀 살해) 수치는 따로 없어 외부의 ‘통계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이 일반에게 공개하는 범죄통계는 경찰청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찰백서’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경찰백서는 살인, 강도, 절도 등 주요 범죄의 발생건수와 검거건수를 단순 나열한 수준이기 때문에 범죄동향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해마다 범죄 특징을 분석해 제공하지만 항상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경제범죄 증가’ ‘범죄자 100명 중 21명이 여성 및 소년’ ‘검거된 범죄자 절반 이상이 재범자’라는 범죄분석은 2004년과 2005년 경찰백서에 똑같이 기재돼 있다.
몇몇 국립도서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경찰청이 해마다 발행하는 ‘범죄분석’은 경찰백서보다는 자세하지만 그 또한 효용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예가 범죄자들의 소득수준 통계다. 경찰은 범죄자 소득수준을 ‘상·중·하’로 표기하는데, 범죄학 연구자들은 통계자료로서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최소한 ‘월수입 100만원 이하’ ‘월수입 300만원 이상’ 하는 식으로 집계됐어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절도사건이나 절도범 수치는 파악되지만 ‘무엇을 훔쳤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경찰대 박현호 교수(경찰학과)는 “영국에서는 ‘차량절도’라고 할 때 차량에서 물건을 절취한 속칭 차털이인지, 차 자체를 훔친 것인지, 차를 파손한 것인지 구분해 통계를 내지만 우리나라는 차량절도 수치조차 파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우선하는 정책 필요”
현재 범죄통계는 죄명에 근거해 집계되고 있는데, 이 또한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2001년 이전에는 각종 특별법에 의해 처벌되는 경우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물건을 훔친 피의자라 하더라도 강도와 절도 통계수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강도·절도 통계수치에는 형법으로 처벌된 경우만 포함됐다. 대구대 박순진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이러한 통계 왜곡은 2001년 이후 시정됐지만, 통계 방식이 바뀌는 바람에 지금도 강도나 절도 범죄의 추이를 분석하는 데 애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살인미수 사건은 범죄통계에서 어느 항목으로 포함될까? 현재 모든 미수 범죄는 해당 범죄로 취급하도록 돼 있어 살인미수 사건도 살인사건 통계수치로 집계된다. 박순진 교수는 “전체 살인사건 중 20~30% 정도는 살인미수죄 등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현재의 살인사건 통계수치는 정확한 의미의 살인사건 통계라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해 동안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도 집계되고 있지 않다. 박현호 교수는 “영국은 2002년 사건 중심에서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범죄기록 기준을 만들었는데, 이처럼 피해자를 우선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은 국제적인 추세”라고 밝혔다.
이 같은 범죄통계의 미비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범죄피해 조사가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경찰의 범죄통계는 경찰에서 공식적으로 처리한 범죄들만 나타낸다. 즉 ‘드러나지 않는 범죄’는 아예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범죄동향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 절도 범죄의 경우 경찰 통계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2000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난 신고율은 5%에 불과했다. 즉 경찰 통계에서는 자전거 절도 범죄의 실상을 단 5%만 파악되는 셈.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 설문조사 방식의 범죄피해조사다. 영국은 매년 5만 가구를 대상으로 이 조사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형사정책연구원에서 1993년부터 2000년까지 4차례 한 것이 전부다.
범죄통계는 사회현상을 읽는 기초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자기 지역의 범죄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하고 좀더 효율적인 치안정책을 수립하는 중요한 자료다. 미국의 여러 경찰서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범죄통계, 범죄그래프, 범죄지도 등 최신 범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노상강도나 주거침입 절도, 자동차 절도 등 특정 범죄를 위주로 한 자세한 범죄 지도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범죄통계를 좀더 세밀화하고 다양화하라는 요구에 대해 우리 경찰은 난색을 표한다. 사건마다 자세한 통계원표를 작성하는 일은 일선 경찰들의 업무를 가중시킨다는 것. 경찰청 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각 지역별 범죄정보 공개를 고려한 적이 있지만, 그럴 경우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박현호 교수는 “각 경찰서마다 범죄정보 전담분석가를 두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으며, 알 권리 차원에서 국민들이 좀더 알기 쉬운 형태로 범죄정보를 가공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치경찰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인 노모 교수는 경찰이 제공한 통계수치의 정확성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경찰이 보내온 전국 지구대(옛 파출소)별 관할면적, 관할인구의 수, 112신고 접수건수 등은 실제와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각 항목을 직접 더해본 것과 종합 수치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는 것. 심지어 ‘경찰통계연보’에서는 한 지방도시의 인구가 실제보다 1000만명 이상이 많게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통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경찰은 2000년 ‘정직한 경찰통계 원년’을 선포하고 사소한 사건·사고까지 누락 없이 통계에 포함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경찰 통계는 부정확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범죄통계가 누적되고 있지 않다는 점.
피부에 와 닿는 범죄정보 알 수 없어
자취생들이 많이 사는 서울 신림동 일대에서는 ‘대전 발발이 사건’과 유사한 가택 침입 강간사건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대리운전자 범죄는 어떤 유형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할까? 출퇴근 시간 지하철 2호선에서 성추행을 당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범죄정보에 관한 궁금증에 대해 현재 경찰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경찰청 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전체 살인사건 수치만 있지 청부살인 수치는 없고, 존속살인 수치만 있지 비속살인(부모가 자녀 살해) 수치는 따로 없어 외부의 ‘통계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이 일반에게 공개하는 범죄통계는 경찰청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찰백서’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경찰백서는 살인, 강도, 절도 등 주요 범죄의 발생건수와 검거건수를 단순 나열한 수준이기 때문에 범죄동향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해마다 범죄 특징을 분석해 제공하지만 항상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경제범죄 증가’ ‘범죄자 100명 중 21명이 여성 및 소년’ ‘검거된 범죄자 절반 이상이 재범자’라는 범죄분석은 2004년과 2005년 경찰백서에 똑같이 기재돼 있다.
통계수치가 잘못 표기된 채 인터넷에 공개된 2005년도 경찰백서. 마약·밀수 사범은 39명이 정확한 수치다.
“피해자 우선하는 정책 필요”
현재 범죄통계는 죄명에 근거해 집계되고 있는데, 이 또한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2001년 이전에는 각종 특별법에 의해 처벌되는 경우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물건을 훔친 피의자라 하더라도 강도와 절도 통계수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강도·절도 통계수치에는 형법으로 처벌된 경우만 포함됐다. 대구대 박순진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이러한 통계 왜곡은 2001년 이후 시정됐지만, 통계 방식이 바뀌는 바람에 지금도 강도나 절도 범죄의 추이를 분석하는 데 애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살인미수 사건은 범죄통계에서 어느 항목으로 포함될까? 현재 모든 미수 범죄는 해당 범죄로 취급하도록 돼 있어 살인미수 사건도 살인사건 통계수치로 집계된다. 박순진 교수는 “전체 살인사건 중 20~30% 정도는 살인미수죄 등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현재의 살인사건 통계수치는 정확한 의미의 살인사건 통계라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해 동안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도 집계되고 있지 않다. 박현호 교수는 “영국은 2002년 사건 중심에서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범죄기록 기준을 만들었는데, 이처럼 피해자를 우선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은 국제적인 추세”라고 밝혔다.
이 같은 범죄통계의 미비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범죄피해 조사가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경찰의 범죄통계는 경찰에서 공식적으로 처리한 범죄들만 나타낸다. 즉 ‘드러나지 않는 범죄’는 아예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범죄동향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 절도 범죄의 경우 경찰 통계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2000년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전거 도난 신고율은 5%에 불과했다. 즉 경찰 통계에서는 자전거 절도 범죄의 실상을 단 5%만 파악되는 셈.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 설문조사 방식의 범죄피해조사다. 영국은 매년 5만 가구를 대상으로 이 조사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형사정책연구원에서 1993년부터 2000년까지 4차례 한 것이 전부다.
범죄통계는 사회현상을 읽는 기초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자기 지역의 범죄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하고 좀더 효율적인 치안정책을 수립하는 중요한 자료다. 미국의 여러 경찰서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범죄통계, 범죄그래프, 범죄지도 등 최신 범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노상강도나 주거침입 절도, 자동차 절도 등 특정 범죄를 위주로 한 자세한 범죄 지도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범죄통계를 좀더 세밀화하고 다양화하라는 요구에 대해 우리 경찰은 난색을 표한다. 사건마다 자세한 통계원표를 작성하는 일은 일선 경찰들의 업무를 가중시킨다는 것. 경찰청 수사과의 한 관계자는 “각 지역별 범죄정보 공개를 고려한 적이 있지만, 그럴 경우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박현호 교수는 “각 경찰서마다 범죄정보 전담분석가를 두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으며, 알 권리 차원에서 국민들이 좀더 알기 쉬운 형태로 범죄정보를 가공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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