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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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동성애 ‘보일 듯 말 듯’

고려 공민왕, 신라 사다함 등 사료에 모호하게 묘사 … 세종대왕 며느리들도 동성애 의심

  • 이덕일/ 역사평론가

    입력2006-02-08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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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 동성애 ‘보일 듯 말 듯’

    성리학적 엄숙주의가 지배한 조선에서 동성애에 대한 서술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나 동성애가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신윤복의 ‘유곽쟁웅’은 질탕한 성풍속도이며, 김홍도는 ‘춘화’(상자 안)에서 매우 노골적으로 동성애 행위를 그렸다.

    연산군의 남색을 다룬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여장 남자로 나오는 공길(孔吉)은 ‘연산군일기’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공길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운운했다가 불경하다는 이유로 귀양 간 ‘배우’다. 정사에서는 연산군과 동성애 사이라는 암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이는 원작자의 창작인 것이다.

    이처럼 동성애에 관한 사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시대의 금기를 거스르며 나누는 사랑이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했고, 그 결과 관련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리학적 엄숙주의가 지배했던 조선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뜻밖에 세종대왕 시대에 동성애라고 의심받았던 사건들이 있다.

    세종은 재위 동안 두 세자빈, 즉 며느리들을 폐출시켰는데 동성애 때문이라는 야사가 있었다. 첫 번째 세자빈은 판돈녕부사 김구덕(金九德)의 손녀이자 상호군 김오문(金五文)의 딸로 세종 9년(1427) 휘빈에 봉해졌는데, 2년 만에 폐출되어 사가로 쫓겨간다. 그러나 야사와 달리 ‘세종실록’ 11년 7월조에 드러나는 휘빈의 폐출 이유는 세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주술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평양 출신의 기생 하봉래에게 세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을 불에 태워 가루를 낸 뒤 술에 타서 마시게 하면 세자가 휘빈만 찾게 된다는 주술을 하다 쫓겨났다는 것이다.

    세종은 휘빈을 폐출한 지 석 달 만에 종부소윤 봉여(奉礪)의 딸을 새 세자빈으로 간택하고 순빈으로 봉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세종 18년(1436) 11월 폐출된다. 이에 대한 세종의 설명은 학습 태만과 투기, 그리고 상중 음주였다. 여사(女師)로 하여금 ‘열녀전’을 가르치게 했는데, 잘 배우지 않고 투기했으며 부친의 상중인데도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폐출 이유를 설명하는 세종의 말에 세자빈 봉씨가 “혹 어떤 때는 시중드는 여종으로 하여금 업고 뜰 가운데로 다니게 했다”라는 말이 있다. 즉 여종이 순빈을 업고 나다녔던 모습이 야사에 동성애자로 전하게 된 원인인지도 모른다.

    사방지와 연산군



    조선 세조 때는 사방지(舍方知)가 동성애인가 통간인가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행상호군 이순지(李純之)의 딸이자 김귀석(金龜石)의 아내인 과부 이씨가 여러 해 동안 동침한 사방지가 여성이 아니라 여장 남자라는 혐의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세조실록’ 11년 6월조는 “(이씨가 사방지에게) 항상 여복을 입혀 여러 비녀(婢女) 속에 나란히 있게 하였다가 함께 동침하여 대관(臺官)의 탄핵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세조는 국문을 청하는 신하들의 요청에 “남자 같으나 실은 성년이 되지 않은 사람이다”라며 거부했다고 나온다. 양성에 가까운 인물로서 남성 구실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둘의 동침은 동성애가 될 텐데, 이에 대해 실록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리 역사 속에서 최초의 동성애자로 여겨진 인물은 화랑 사다함(斯多含)이었다. ‘삼국사기’ 열전 ‘사다함’조는 “사다함은 처음에 무관랑(武官郞)과 사우(死友)가 되기로 약속했는데 무관랑이 죽자 7일간 통곡하다가 그 또한 죽었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따라 죽은 것은 우정을 넘어서는 사랑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사다함이 죽은 것은 무관랑의 죽음과도 연관이 있지만 그보다는 빼앗긴 미녀 미실(美室)에 대한 상사병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고려사’ 세가(世家) ‘공민왕’조는 공민왕이 ‘꽃미남’ 경호부대 자제위(子弟衛)를 설치하고 홍륜(洪倫) 등과 동성애를 나눴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왕이 “항상 스스로 여장을 하고, 한번 동하면 수십 명을 갈아치웠으며, 홍륜에게 여러 왕비를 강간케 했다”고까지 전한다. 익비(益妃)가 거절하자 공민왕이 칼을 뽑아 치려고 하니 왕비가 겁나 복종했다는 것이다. ‘고려사’ 열전 ‘조준(趙浚)’조는 “인간의 도가 말살되었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는 한탄도 곁들인다.

    그러나 정조 때의 실학자 안정복(安鼎福)은 ‘동사강목’ ‘고이(考異)’편에서 “조준은 개국원훈(開國元勳)이 되었으니 그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궁중의 비밀과 방 안에서 희롱한 일을 사관이 어떻게 알고 기록하였겠는가?”라며 조선 개국공신들이 지어낸 말을 사신(史臣)이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고 부정했다.

    ‘고려사’가 우왕(禑王), 창왕(昌王)을 신우(辛禑), 신창(辛昌)이라며 공민왕의 후손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처럼 조선 개창을 합리화하기 위한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 사료상으로 살펴본 동성애는 대부분 모호하게 묘사된다. 다양성과 개인주의가 정당화되는 현재도 동성애는 사실상 사회적 금기로 인식되지 않는가. 다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특수성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인정할 때 동성애는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연극 ‘이’의 연출자 김태웅 씨

    “광대들의 동성애는 많이 전해진 사실”


    역사 속 동성애 ‘보일 듯 말 듯’
    ‘왕의 남자’가 10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고지를 앞에 둔 설 연휴, 영화의 ‘원본’이 된 연극 ‘이’도 긴급 앙코르 공연 중이었다. ‘이’의 원작자이자 연출자인 김태웅(41) 씨는 무대로 전해지는 객석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관객 대부분이 ‘왕의 남자’와 ‘이’를 비교한다고 말하자 그는 “배우들은 부담스럽겠지만 연출자들은 ‘오픈 마인드’로 즐길 수 있다”며 웃었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 ‘황산벌’ 때문에 ‘이’를 영화화하겠다는 제의를 받았을 때 무척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만날수록 생각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광대의 존재 상황을 연극에는 없는 ‘줄타기’로 표현한 건 매우 좋은 아이디어다.”

    ‘왕의 남자’에서 동성애는 연산군의 ‘마더 콤플렉스’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에서 동성애는 연산과 공길 두 사람의 권력관계의 상징이다. 특히 극이 시작하자마자 연산의 폭정과 두 사람의 ‘사도-마조히스트’적 관계를 교차시킨 장면은 충격적이다.

    “연산군일기에 ‘배우 공길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유배 갔다는 기록이 있고, 광대들 사이에 동성애가 횡행한 것은 많이 전해진 사실이어서 둘을 연결한 ‘허구’를 만들었다. 연산군과 공길, 공길과 장생의 동성애 관계는 세 인물을 엮는 ‘엔진’의 구실을 한다. 따라서 ‘애정’관계로 한정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이’에서 연산은 무오, 갑자 사화를 통해 비판적인 세력과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인 뒤의 ‘허무’를 동성애와 ‘유희’로 채우려 하나 결국 장생을 죽이고, 공길은 자살에 이르며 스스로 파멸로 치닫는다.

    “‘이’는 결국 죽음에 대한 것이다. 삶 어디에나 죽음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광대들이 뛰노는 무대 자체가 거대한 관의 널로 설정돼 있고, 연산은 왕좌가 아닌 관 위에 앉아 있다.”

    ‘이’는 또한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광대, 즉 예술가란 ‘장바닥에 나가 빌어먹어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가 정치적 은유를 낳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김태웅 씨는 이에 대해서는 꽤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예술작품이란 보편성을 가진 것이고, 권력을 가진 집단 역시 비슷한 속성을 갖게 마련이다. 특정 정치세력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영화로 다시 태어난 ‘이’는 2월25일부터 대구·부산·대전을 도는 지방공연을 시작하고, 그가 드라마투르기를 쓴 뮤지컬로 만들어져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될 예정이다. 관객들이 제각각 자신의 성과 죽음, 놀이와 웃음에 대해 각기 다른 ‘이’를 품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가 가진 대중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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