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국내 저작 가운데 좋은 책이 한 권 나왔다. 서두에 ‘좋은 책’이라고 전제하는 이유는 내용도 의미가 있지만 ‘인권을 외치다’(푸른숲 펴냄)란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의 노고가 먼저 고려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2년 이후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인권운동에서 얻는 수익은 개인의 몫으로 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모든 수입을 인권운동에 써왔다. 자신의 생계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해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전문 연구자가 아닌데도 문헌을 찾고 공부를 시작했다. 인권에 대해 자주 인용되는 문건들은 있지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한두 줄의 인용문이거나 그에 대한 해석뿐인 현실이 답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족한 영어’(저자의 겸양일 수 있다)로 원전을 찾아 해석하고, 국내 저작을 참조하고, 논문을 모으고 수집하며 인권 공부를 했다.
그러기를 십수 년, 이젠 6권의 공동저작물과 ‘어린이를 위한 읽기 교과서’에 이어 이 책을 썼고, 현재는 방송통신대학에서 ‘류은숙의 인권문헌 읽기’라는 강좌를 진행한다. 저자가 인권운동에 투신한 계기는 책에서 밝히지 않았으나, 보통사람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가 밥 먹는 데 불러서 갔다. 앉으려는데 이런 말을 한다. ‘쟤 누가 불렀니?’ 이러면 정말 화나고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참고 억지로 앉아서 대화에 끼려고 하니 이번에는 ‘여기가 어디라고 네가 입을 열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식탁에 도사리는 것은 구분과 배제, 차별과 억압이고, 여기에 차려진 권리가 아무리 풍성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권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인간 존중의 식탁에 누구나 둘러앉아 같이 먹고 마시며, 누구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인권에 대해 이보다 쉽고 와닿는 설명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한 주제에 몰두해온 내공이 느껴진다. 이 책에선 ‘인권’을 ‘자연권’과 구별한다. 자연권은 자연적으로 인간에 속한 권리라는 의미다. 즉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질 수 있는 근본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자연권은 ‘이성’이라는 인간의 특질을 앞세워, 이성을 가진 인간과 갖지 못한 인간을 자의적으로 구분한다.
그 결과 노예, 이교도, 야만인, 식민지인, 원주민, 여성, 아이, 빈민, 광인을 구별하고 차별한다. 자연권은 인간의 권리를 외쳤지만 실상은 배제의 원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은 자연권처럼 본성에 내재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뜻밖이다. 인권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노예, 식민지, 인종차별 등 불의하고 부정한 것을 자연적 질서라며 정당화하는 대신 모든 인간을 위한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고 그 정의의 요소가 되는 게 인권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서문에 밝힌 저자 견해의 일부다. 한번 만나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그의 내공을 호흡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 만큼 글 곳곳에서 진정성이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면 저자의 개인적 견해나 이야기는 깊숙이 잠복한다.
대신 저자의 공부 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8세기부터 진행된 인권의 역사와 사건들, 인권에 대한 투쟁, 유럽과 미국, 우리나라의 인권 관련 자료가 연대기별로 정리돼 있다. 특히 ‘인권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인권으로 미래를 약속하다’ ‘지금 여기 우리 인권’이라는 4개의 큰 단락 안에, 세계 인권선언과 파리코뮌선언, 노예해방선언 등 인권사의 중요한 고비뿐 아니라 정치, 사회, 종교, 여성, 장애 등 세부 항목별로 인권에 대한 자각과 치열한 도전의 기록도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사실 이 정도면 사료적 관점이나 인권에 대한 레퍼런스로도 손색없을 정도다. 더욱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권사의 중요한 지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권의 길이 왜 그리도 멀어 보이는지, 또 스스로 ‘이제 이만하면…’이라고 말하는 우리네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허위적이고 둔감한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해준다. 아니, 눈을 번쩍 뜨게 해준다.
물론 이 책 자체가 특성상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가독성이 높고, 현대사의 고비들 속에서 인권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각 장이 흥미롭기 그지없다. 특히 마지막 장인 ‘지금 여기 우리 인권’에 와서는 잠시 책을 덮고 한 번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만든다. 마침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문제가 화제가 된 시점에서 인권의 참가치, 그것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에 대한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져준 의미 있는 책이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저자는 1992년 이후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인권운동에서 얻는 수익은 개인의 몫으로 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모든 수입을 인권운동에 써왔다. 자신의 생계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해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전문 연구자가 아닌데도 문헌을 찾고 공부를 시작했다. 인권에 대해 자주 인용되는 문건들은 있지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한두 줄의 인용문이거나 그에 대한 해석뿐인 현실이 답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족한 영어’(저자의 겸양일 수 있다)로 원전을 찾아 해석하고, 국내 저작을 참조하고, 논문을 모으고 수집하며 인권 공부를 했다.
그러기를 십수 년, 이젠 6권의 공동저작물과 ‘어린이를 위한 읽기 교과서’에 이어 이 책을 썼고, 현재는 방송통신대학에서 ‘류은숙의 인권문헌 읽기’라는 강좌를 진행한다. 저자가 인권운동에 투신한 계기는 책에서 밝히지 않았으나, 보통사람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가 밥 먹는 데 불러서 갔다. 앉으려는데 이런 말을 한다. ‘쟤 누가 불렀니?’ 이러면 정말 화나고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참고 억지로 앉아서 대화에 끼려고 하니 이번에는 ‘여기가 어디라고 네가 입을 열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식탁에 도사리는 것은 구분과 배제, 차별과 억압이고, 여기에 차려진 권리가 아무리 풍성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권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인간 존중의 식탁에 누구나 둘러앉아 같이 먹고 마시며, 누구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인권에 대해 이보다 쉽고 와닿는 설명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한 주제에 몰두해온 내공이 느껴진다. 이 책에선 ‘인권’을 ‘자연권’과 구별한다. 자연권은 자연적으로 인간에 속한 권리라는 의미다. 즉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질 수 있는 근본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자연권은 ‘이성’이라는 인간의 특질을 앞세워, 이성을 가진 인간과 갖지 못한 인간을 자의적으로 구분한다.
그 결과 노예, 이교도, 야만인, 식민지인, 원주민, 여성, 아이, 빈민, 광인을 구별하고 차별한다. 자연권은 인간의 권리를 외쳤지만 실상은 배제의 원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은 자연권처럼 본성에 내재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뜻밖이다. 인권은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노예, 식민지, 인종차별 등 불의하고 부정한 것을 자연적 질서라며 정당화하는 대신 모든 인간을 위한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고 그 정의의 요소가 되는 게 인권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서문에 밝힌 저자 견해의 일부다. 한번 만나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그의 내공을 호흡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 만큼 글 곳곳에서 진정성이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면 저자의 개인적 견해나 이야기는 깊숙이 잠복한다.
대신 저자의 공부 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8세기부터 진행된 인권의 역사와 사건들, 인권에 대한 투쟁, 유럽과 미국, 우리나라의 인권 관련 자료가 연대기별로 정리돼 있다. 특히 ‘인권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인권으로 미래를 약속하다’ ‘지금 여기 우리 인권’이라는 4개의 큰 단락 안에, 세계 인권선언과 파리코뮌선언, 노예해방선언 등 인권사의 중요한 고비뿐 아니라 정치, 사회, 종교, 여성, 장애 등 세부 항목별로 인권에 대한 자각과 치열한 도전의 기록도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사실 이 정도면 사료적 관점이나 인권에 대한 레퍼런스로도 손색없을 정도다. 더욱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권사의 중요한 지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권의 길이 왜 그리도 멀어 보이는지, 또 스스로 ‘이제 이만하면…’이라고 말하는 우리네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허위적이고 둔감한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해준다. 아니, 눈을 번쩍 뜨게 해준다.
<B>박경철</B><BR>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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