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가로수 조명 등 볼거리가 풍부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연말 모습.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2km에 가까운 거리의 가로수가 조명으로 연결된 모습은 매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세밑을 맞는 곳이 아닐까 싶다.
지난 주말 늦은 밤에 나가 본 샹젤리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 성수기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겨울 이맘때면 샹젤리제는 낮보다 밤이 훨씬 아름답다. 가로수 조명 말고도 거리 양옆에 늘어선 매장들이 제각각 치장한 조명 장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동경하는 곳답게 샹젤리제에 대한 파리 사람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샹젤리제를 꼽는다. 그런 샹젤리제이기에 이 거리를 지키기 위한 파리지앵들의 노력 역시 대단하다.
최근 스웨덴의 패션 그룹 H·M은 파리지앵의 이런 자부심 때문에 분루를 삼켰다. 샹젤리제에 매장을 열려던 계획이 파리시의 반대로 좌절됐기 때문이다. 트렌디하면서도 싼 옷을 만드는 유명 저가 브랜드 H·M은 5000만 유로(약 600억원)를 들여 샹젤리제에 매장을 열 계획이었다.
그런데 ‘파리 상업계획위원회’는 최근 이를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위원회 측은 “H·M에 반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단지 샹젤리제가 평범하고 진부한 장소로 전락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샹젤리제가 옷가게, 화장품가게, 패스트푸드 음식점 등으로 채워져 그저 그런 쇼핑 거리로 변해가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 샹젤리제는 과거의 모습을 이미 많이 상실했다. 개선문이 보이는 곳에 맥도날드가 자리잡았고 갭(GAP), 자라(ZARA) 같은 중저가 패션 브랜드가 거리를 점령했다. 통계에 따르면 샹젤리제에 있는 가게의 39%가 옷가게다. 패션 브랜드들이 샹젤리제에 매장을 열기 위해 경쟁하다 보니 임대료는 계속 오른다. 그 와중에 비싸진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든 영화관과 카페, 레스토랑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그런 이유로 ‘샹젤리제엔 옷만 잔뜩 있고 문화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판론자들은 특히 영화관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다. 파리지앵들은 주로 영화를 보기 위해 샹젤리제에 간다. 비싸고 관광객이 들끓는 레스토랑과 카페는 이미 파리지앵들에게 외면당한 지 오래다. 따라서 영화관마저 사라진다면 파리 사람들이 샹젤리제에 갈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샹젤리제는 ‘파리지앵 없는 파리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옛 멋을 지키려는 파리지앵들의 노력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외신들은 H·M이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럭셔리 브랜드였다면 파리시의 결정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옷가게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파리시의 주장을 ‘싸구려 옷가게는 더 이상 필요 없다’로 바꾸는 게 더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다른 옷가게가 샹젤리제에 문을 여는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