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와 진주 귀걸이를 착용한 그레이스 켈리(1956). [Getty images]
6월 탄생석인 진주 주얼리를 유독 즐겨 하던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1929~1982)의 말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 ‘갈채(The Country Girl)’로 195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국 영화배우였다.
기품 있는 미모와 연기로 인기를 끌었고 1956년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가운데 모나코 왕 레니에 3세와 결혼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역대 영화배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손꼽히는 그레이스 켈리는 유럽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나라 모나코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미혼남이던 레니에 왕자와 결혼해 일약 동화 속 주인공이 됐다.
우아함의 대명사로도 불리는 왕비 그레이스 켈리를 더 우아하게 만든 것이 주얼리, 바로 진주였다. 진주는 그녀가 가장 애용하던 보석이다. 1950년대 초 그녀에게 가장 좋아하는 보석을 물었을 때 “나는 영화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진주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나아가 그녀는 “여성에게는 로프(rope·배꼽 아래까지 내려오는 42인치의 긴 목걸이)와 진주로 된 로프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레이스 켈리가 평생 사랑한 진주는 6월 탄생석이기도 하다. 진주는 어떤 보석일까.
바다의 선물, 진주
진주 목걸이, 지그펠드 컬렉션. [티파니]
우아하고 은은하며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보석이라는 점, 예부터 귀히 여겼다는 점은 여느 보석과 같다. 다만 하나의 진주가 탄생하기까지 조개가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로마인들은 진주를 ‘조개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은 진주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까지 천연 진주는 매우 인기가 있었으나 희귀했다. 당시 천연 진주는 금보다 귀했고, 잠수부에게는 요즘 시대 복권과도 같은 바다의 선물이었다. 1947년 한 선원이 일주일간 3만5000개의 진주조개를 채취했는데, 그중에서 21개만이 진주를 가지고 있었고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은 단 3개뿐이었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주는 무척 희귀한 보석이었다. 그만큼 가격이 매우 비쌌고, 왕족과 부호들 정도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16년 일본 미키모토(Mikimoto)가 양질의 진주를 양식한 후부터 여러 나라에서 진주를 손쉽게 생산, 보급하고 있다. 다만 천연 진주는 공해와 오염으로 인해 고갈된 상태다.
그레이스 켈리의 진주 컬렉션
그레이스 켈리가 남편인 모나코 왕 레니에 3세로부터 결혼선물로 받은 진주 주얼리 세트. [Getty images]
반클리프 아펠 부티크에서 만남은 단순한 쇼핑 이상이었다. 모나코에는 다른 왕실처럼 왕실 보석 컬렉션은 없지만, 주얼리가 필요한 공식 행사가 많았다. 주얼리가 드레스 코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결혼선물을 위해 만나고 3개월 후 프랑스 보석상 반클리프 아펠은 ‘모나코공국의 공식 주얼러’로 지명된다.
이곳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고른 것이 진주, 구체적으로는 1953~1955년에 만들어진 진주 주얼리였다. 다이아몬드 클립으로 고정한 세 줄로 된 진주 목걸이, 다이아몬드 꽃 모티프가 있는 세 줄의 진주 팔찌, 진주 귀걸이와 진주 반지였다. 그레이스 켈리는 평생 동안 결혼할 때 고른 이 진주 세트를 반복적으로 착용했다.
영화 ‘이창(Rear Window)’에서 진주 초커와 진주 참 팔찌를 착용한 그레이스 켈리(왼쪽). 세 줄로 된 진주 초커와 진주 귀걸이를 착용한 그레이스 켈리. [영화 캡처]
그레이스 켈리는 53세인 1982년 자동차 충돌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녀가 죽은 이후 진주 주얼리를 착용한 고혹적인 모습은 더는 볼 수 없게 됐지만, 오늘날까지 그녀의 진주 주얼리는 고전으로 회자되면서 수많은 패션·주얼리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2019년 3월 모나코에서 열린 로즈 볼(Rose Ball) 행사에 그레이스 켈리의 딸 카롤린 공주가 엄마의 결혼선물 진주 주얼리 세트 전체를 처음으로 착용하고 참석해 대를 이은 진주의 아름다운 자태에 의미를 더했다. 진주가 그레이스 켈리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엄마의 진주 주얼리 세트를 착용한 모나코 카롤린 공주(2019). [Getty images]
영화 ‘위대한 개츠비’와 지그펠드 컬렉션
영화 ‘위대한 개츠비’ 포스터.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1920년대 미국 뉴욕 재즈 시대 글래머와 스타일을 재현한 데이지 뷰캐넌의 주얼리. [ⓒ2013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All rights reserved.]
1920년대 화려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감독 배즈 루어먼은 전략적 파트너를 선정할 때 주저 없이 티파니(Tiffany)에 러브콜을 보냈다. 티파니는 디자이너 캐서린 마틴과 협업을 통해 영화 속 시대적 배경의 의상을 완성했다. 극 중 플래티넘 세팅 다이아몬드와 윤기가 흐르는 진주를 소재로 한 최상의 컬렉션이 그렇게 탄생했다. 이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대담하고 화려한 주얼리들은 펜트하우스 파티와 웅장한 맨션 파티에서 상류사회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 크게 일조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중심을 이루는 주제는 바로 데이지 뷰캐넌(캐리 멀리건 분)을 향한 개츠비의 열정적 사랑이다. 영화에는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데이지(daisy) 꽃 모티프가 진주가 술 모양으로 장식된 태슬 네클리스, 다이아몬드와 양식 진주가 정교히 수놓인 헤드피스, 핸드 장신구, 개츠비의 블랙 에나멜 커프스단추와 블랙 오닉스 반지 등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지그펠드 컬렉션. [티파니]
지그펠드 컬렉션. [티파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라 페레그리나’
라 페레그리나를 착용한 1972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Getty images]
라 페레그리나를 착용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1992년(왼쪽). 1969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인스타그램]
라 페레그리나. [christies.com]
몇백 년 동안 주인을 바꿔가면서 순례자처럼 떠돈 이 목걸이의 마지막 주인은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다. 1969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 리처드 버턴은 경매에서 약 3만7000달러를 주고 아내에게 줄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라 페레그리나를 구입했다. 라 페레그리나의 전 소유주들은 거의 왕족이었다. 그중에는 영국 여왕이던 메리 1세(재위 1553~1558)도 있다.
라 페레그리나를 착용한 1554년 영국 여왕 메리 1세. [Wikimedia Commons]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 전시된 라 페레그리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인스타그램]
라 페레그리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후 2011년 12월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는데, 익명의 사람에게 낙찰됐다. 언제 또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이름처럼 라 페레그리나의 순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