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방돔 광장의 부쉐론 부티크. [부쉐론]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방영 50여 일이 지났을 뿐인데 전 세계 넷플릭스 TV 시리즈 부문 4위에 올랐다. 에밀리가 파리에 있는 마케팅 회사 사부아르에 1년간 파견을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회사는 패션과 럭셔리 브랜드 홍보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에밀리의 좌충우돌 파리 적응기도 흥미롭지만, 드라마의 큰 볼거리는 곳곳에 담긴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힌 지 어느새 거의 1년.
에펠 타워, 루브르, 그랑 팔레, 카페 드 플로르, 호텔 플라자 아테네 등 파리의 랜드마크를 드라마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주인공 에밀리의 동선을 통해서다. 에밀리가 화장품 브랜드 쇼에 인플루언서로 참석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때 전 세계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중심지가 된 장소가 등장한다. 바로 ‘방돔 광장(Place Vendôme)’.
방돔 광장은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광장으로, 팔각형 모양이다. 광장 가운데에는 나폴레옹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원기둥 기념탑이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음악가 쇼팽이 생을 마감한 리츠 파리 호텔(Hotel Ritz Paris) 등 고급 호텔과 명품 부티크, 유명 보석상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런 방돔 광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첫 번째 주얼러가 ‘부쉐론’이다.
1858년 부쉐론 메종 탄생
미국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넷플릭스]
그는 메종의 아이콘인 ‘퀘스천마크 네크리스’를 다시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최초로 선보이고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때가 1889년. 1884년 처음 제작된 퀘스천마크 네크리스는 부쉐론만의 독창성과 대담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가 만든 이 목걸이는 잠금 장치가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타인의 도움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첫 주얼리로 19세기 여성에게는 꼭 필요한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목걸이는 놀라울 만큼 가벼웠으며, 끝부분을 분리될 수 있어 따로 떼어 브로치나 헤어피스로도 착용이 가능했다. 하루에 여러 번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류층 여성에게 이러한 멀티 웨어 주얼리는 매우 편리했다. 한편으론 이 독립적이면서도 우아한 작품에 꽃 장식을 더해 화려함을 불어넣었다.
1893년에는 현존하는 컨템퍼러리 하이 주얼리 브랜드 중 최초로 방돔 광장 26번가에 부티크를 열었다. 방돔 광장 26번가는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오는 자리로 ‘빛의 주얼러’라는 수식에 걸맞은 최적의 위치였다. 부티크 오픈 이후 대담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에 더해 끊임없이 장인들의 현대적인 기술로 제품을 재창조하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부쉐론이 방돔 광장에 부티크를 오픈한 이래 방돔 광장은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중심지로 변화했다.
프랑스 보석상 최초로 러시아 진출
메종의 아이콘 퀘스천마크 네크리스. [부쉐론]
마하라자(인도 문화권에서 왕의 의미로 쓰이는 군주 칭호)는 당시 프레데릭 부쉐론에게 ‘역사상 가장 중대한 주문’이자 방돔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기록적인 오더로 회자되는 보석 제작을 의뢰했다. 개인 소장 보물 중 9000캐럿이 넘는 보석과 원석들을 부쉐론에게 가져가 프랑스 기술 노하우로 제작하되 모두 인도 스타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총 7571캐럿의 네크리스 6개를 포함해 149개 작품을 제작한 부쉐론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왕족을 상대로 주문을 받게 됐다.
1947년 리플레워치. [부쉐론]
리플레 워치는 보이지 않는 잠금장치와 교체 가능한 시곗줄을 통해 혁신을 이뤄냈다. 그의 디자인 기준은 심플한 세로 라인, 독특한 직사각형 케이스, 케이스를 감싸는 세밀한 곡선에 있었다. 또한 워치 케이스에 입김을 불면 방돔 광장의 홀로그램이 나타나도록 했다. 방돔 광장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비밀 시그니처였다. 1944년 처음 특허를 받은 ‘인비저블 클래스프’(보이지 않는 잠금장치) 덕분에 리플레 워치는 그날의 의상과 무드에 맞게 자유자재로 시곗줄을 교체할 수 있었다.
쎄뺑 보헴 주얼리워치(왼쪽). 잭 드 부쉐론. [부쉐론]
콩텅플라시옹 하이 주얼리 컬렉션
콩텅플라시옹 하이주얼리. [부쉐론]
파리에 간 미국인 에밀리는 어떻게 될까. 에밀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빠르게 소통하고 비즈니스와 바로 결합시키는 열정 마케터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탄생과 원조는 미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파리 사무실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우리 프랑스인들이 전문가”라고 주장한다. ‘빛의 주얼러’ 부쉐론이 포문을 연 방돔 광장에 선 에밀리가 이런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