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최강의 공중지배 전투기인 F-22. [위키피디아]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인 항공우주기술을 집대성한 F-35 시리즈를 배치 중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F-35 따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는 J-20과 Su-57을 양산 중이다. 유럽은 그 Su-57과 같은 스텔스기를 잡을 수 있다는 ‘스텔스 잡는 전자망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만들고 있고, 한국도 KFX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압도적인 성능 우위에 있는 전투기
제각각 스스로를 최강자라 부르며 성능을 뽐내는 이 전투기들은 모두 2000년대 이후 개발된 4.5~5세대 등급의 기종들이다. 이 전투기들은 모두 21세기에 등장한 첨단 항공우주 기술들이 집약돼 있고, 객관적인 성능에 있어서 기존 4세대 전투기들과 차원이 다른 성능을 지니고 있지만, 실제 하늘에 올라가면 이 모든 전투기들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바로 세계에서 오로지 미 공군만 운용하는 F-22A 랩터(Raptor)다.F-22A의 개발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 공군은 1980년대에 사용할 차세대 제공 전투기 개발 사업으로 ATF(Advanced Tactical Fighter)라는 사업을 추진해 1973년 작전요구성능 초안을 완성했다. 당초 이 사업은 지상 공격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지만, 1980년 사업 계획을 틀어 공대공 전투 임무에 비중이 쏠리기 시작했고, 1982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스텔스 설계를 적용한 대형 제공 전투기로 사업 방향이 굳어졌다.
미 공군은 이 차세대 전투기에서 ‘공중우세(Air Superiority)’ 개념을 넘어 ‘공중지배(Air Dominance)’ 개념을 요구했다. 즉, 기존 전투기들과 맞섰을 때 단순히 우월한 성능에 있는 수준이 아니라 적이 도전 자체를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성능 우위에 있는 전투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 사업에는 여러 업체가 입찰했지만 결국 결승 단계에는 록히드마틴과 노스롭만 살아남았고, 이들 두 업체가 내놓은 YF-22와 YF-23이 맞붙어 최종 승자가 된 것이 바로 오늘날 F-22였다. 1970년대에 구상해 1980년대 기술을 가지고 1990년에 첫 시제기가 탄생한 것이 바로 F-22라는 말이다.
당초 F-22는 F-15를 대체하는 차세대 제공 전투기로 750대 이상이 생산될 예정이었지만, 냉전의 붕괴로 인해 양산 수량이 반의반토막이 났다.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실험용 기체 포함 195대가 생산됐고, 현재 미 공군에 남아 있는 기체는 183대 뿐이다.
1대 가격이 3억 6000만 달러, 우리 돈 4000억 원에 육박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투기인 F-22의 가격은 일반적인 4세대 전투기의 3~4배에 달하는 살인적인 가격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미 공군이 이 전투기를 183대나 찍어내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개발 3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시점에서도 다른 그 어떤 전투기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성능 우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공군은 1996년 초기 배치 버전인 F-22A Block 10 버전부터 꾸준히 개량을 거듭해 왔고, 현용 주력 버전인 Block 30/35 버전을 넘어 Block 40과 Block 50 단계까지 넘어가고 있다. 현재 순차적으로 입고되어 개량 중인 Block 50 버전은 25년 전 배치됐던 기체와는 완전히 다른 기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능이 향상됐다.
기존의 레이더로는 탐지 불가능
F-22가 배치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시점에서도 최강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보이지 않는’ 능력 때문이다. 기존에 알려진 F-22A의 정면 레이더 반사 면적(Head-on Radar Cross Section)은 0.0001㎡ 수준이다. 비슷한 덩치의 F-15가 5㎡, 훨씬 작은 F-16이 1~3㎡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수천분의 1 수준으로 기존의 레이더로는 탐지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미 공군은 지난 30여 년간 전파 흡수 코팅 등 성능 개량을 통해 기존의 레이더 반사 면적을 더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만에 하나 기적적으로 F-22를 탐지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적기가 F-22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투기가 적기를 향해 미사일을 쏘려면 레이더로 락온(Lock-on)을 해야 한다. 락온이란 레이더가 STT(Single Target Tracking) 상태, 즉 하나의 표적에 지속적으로 전파를 쏴서 미사일 등 무장의 센서가 표적을 인식하도록 해주는 과정인데, F-22는 상대 전투기가 락온을 위해 레이더 전파를 방사하면 그 레이더 전파와 같은 종류의 방해 전파를 쏴서 락온을 풀어버린다. 즉 F-22에 미사일 조준 자체를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상대 전투기는 F-22가 자신을 락온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F-22의 레이더는 이른바 LPI(Low Probability of Intercept) 기술이 적용돼 레이더 전파를 변조·도약해 방사하기 때문에 적기의 레이더 경보 수신기가 이를 인식할 수 없다. 즉 F-22와 싸우는 적기는 자신이 무엇에 맞아 죽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사냥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F-22는 현재까지 실전에서 단 한 차례도 탐지되지 않았다. 지난 2006년 노던 엣지 훈련에서 F-15/16/18로 구성된 가상적과 싸워 144대를 가상 격추시키는 동안 단 1대의 손실도 없었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2009년 훈련에서 미 해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가 정말 우연히 근거리를 날던 F-22를 포착하고 최대 출력으로 전자전을 걸어 F-22의 전자장비를 다운시킨 뒤 바짝 따라 붙어 공대공 미사일로 가상 격추한 것과 2012년 레드 플래그 훈련에서 정말 우연히 F-22를 근거리에서 발견한 유로파이터가 근접 공중전으로 기습해 가상 격추한 것이 F-22 가상 격추 기록의 전부다. 두 전과 모두 조사 결과 F-22 조종사가 지나치게 방심해 일어난 일이었다.
실전에서 F-22는 단 한 차례도 격추되거나 탐지되지 않았다. F-22는 지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S-300과 판치르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강의 방공 시스템이 도배되어 있는 시리아에 204회나 정찰·공습 임무를 수행했지만, 시리아군은 물론 이 지역에 주둔하는 러시아군은 단 한 차례도 F-22를 탐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2017년에는 시리아 상공에서 시리아 정부군 소속 Su-24 전투기를 발견한 F-22가 600미터 거리까지 따라 붙어 15분을 따라다녔지만, 시리아 전투기는 물론 지상의 방공포대 그 누구도 F-22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전쟁 양상 바꾸는 게임체인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AP=뉴시스]
특히 지난 2007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북한의 핵실험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이에 대한 강경 대응책의 일환으로 F-22 100대 도입을 선언하고 백악관에 막대한 로비를 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과 호주까지 나서 F-22 판매를 요청했지만 결국 미국은 F-22를 팔지 않았다.
무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산품이다. 생산량이 많아야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져 생산 단가와 운용 유지비가 낮아지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미덕이지만, F-22는 단 195대만 생산됐다. 이 때문에 미 공군은 살인적인 획득 비용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지비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그래도 F-22의 해외 판매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전투기는 우스갯소리로 ‘외계인을 고문해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기존의 전쟁 양상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나라가 가져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월31일, 이스라엘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현지시각 26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베냐민 간츠 이스라엘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F-22 판매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현지 매체들은 UAE의 F-35 구입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이스라엘이 에스퍼 장관의 방문 직후 UAE의 F-35 구입을 용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는데, 그 이유가 바로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F-22 판매를 승인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UAE에 F-35 판매를 추진하면서 “이스라엘의 군사력 우위를 보장하겠다”라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바로 F-22 제공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F-22를 판매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이익이다. 이스라엘의 군사력 우위를 확실하게 보장함으로써 중동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세계전략에 부합하고, F-22 생산 라인을 되살려 부품을 다시 생산함으로써 미 공군의 F-22 전력 유지비용을 크게 낮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 미국은 최근 6세대 전투기 1:1 스케일 시제기를 만들어 날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5세대 전투기인 F-22는 상대적으로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예전보다는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도 F-22의 해외 판매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F-22는 최종 납품가격 기준 1대 가격이 4000억 원에 육박할 정도로 고가의 전투기다. 이스라엘이 1~2개 비행대 20~40대 정도를 도입할 경우 직접 비용은 8~16조 원에 달하며, 이미 없어진 생산 라인을 다시 까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전체 비용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제3의 파트너를 끌어들여 판을 더 크게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파트너는 일본과 호주다. F-22의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이미 지난 2018년부터 일본에 F-22의 하드웨어와 F-35의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투기를 일본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의 기반 모델로 제시해온 바 있다.
日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기반 모델
일본이 만들려는 F-3는 6세대 전투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비용 절감과 신뢰성 제고 차원에서 F-22의 기술과 부품을 상당 부분 전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미일 관계를 고려했을 때 올 연말 결정되는 일본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의 해외 파트너 업체로 록히드마틴이 선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본의 차세대 전투기에는 F-22의 기술이 녹아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호주 역시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F-22 양산 초창기부터 구입을 희망해 왔던 호주는 현재로서는 차세대 전투기로 F-35A 기종을 도입 중이지만, F-22 판매 승인이 나면 갈아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호주군 특성상 장거리 해양 작전이 많아 단발 엔진인 F-35보다 쌍발 엔진 스텔스 전투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스라엘이 먼저 달려든 이른바 ‘랩터 봉인 해제’ 사업에는 예전부터 F-22를 노려왔던 일본과 호주, 그리고 미 공군이 합세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렇게 확산된 랩터는 핵무기만큼이나 중동과 서태평양 일대의 전략 환경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등극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국이다. F-22라는 최강의 전투기는 우리의 동맹인 미국이 가지고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현 정부 들어 급격히 ‘적국’처럼 되어가고 있는 일본이 F-22 또는 그 기술이 적용된 차세대 전투기를 손에 넣을 경우 동북아 지역의 전략 균형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F-22급의 전투기를 손에 넣게 되면 중국은 더 강력한 6세대 전투기 개발과 배치를 서두르게 될 것이고, 러시아 역시 Su-57은 물론 현재 개발 중인 6세대 전투기 개발과 배치를 더욱 서두를 것이다. 이러한 전투기 경쟁은 일본의 차세대 전투기가 완성되는 203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이 시기에 한국공군이 도입하려는 전투기는 4.5세대 전투기인 KFX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공중지배 전투기를 향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이라도 F-22 부활 움직임에 숟가락 하나라도 얹을 궁리를 해야 한다. 물론 그 숟가락을 얹을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초대권이라도 얻으려면 풍비박산난 한미동맹부터 복원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