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인내심 한계 다다랐는데 전공의·의대생은 요지부동

의대 교수 “대안 없는 반대만” vs 전공의·의대생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백지화해야”

  •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5-03-2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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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9일 오후 서울 한 의과대학 1학년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동아DB

    3월 19일 오후 서울 한 의과대학 1학년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동아DB

    “(전공의와 의대생은)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1년을 보냈습니다. 오직 탕핑(躺平: ‘편안히 드러눕다’라는 뜻으로, 전공의·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나온 다음 무대응 기조를 이어가는 모습을 이르는 말)과 대안 없는 반대만 있을 뿐입니다.”(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4명이 낸 성명서 일부)

    “병원을 떠난 지 1년이 됐지만 해결된 상황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올해는 2000명 증원하지 않을 테니 일단 돌아와라’는 식의 제안은 양보가 아닙니다.”(사직 전공의 A 씨)

    “2000명 줄이는 건 양보 아냐”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지난해 2월부터 집단 사직, 동맹 휴학에 돌입한 지 1년이 됐다. 의료 공백 속에서 병원과 학교가 텅 빈 지 1년이 넘었지만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복귀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3월 17일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등 서울의대 교수 4명은 돌아오지 않는 의대생과 전공의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그러자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페이스북에 반박 글을 올리며 맞섰다.

    정부는 내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하겠다며 백기를 들었지만 이탈한 전공의와 의대생 3만 명은 요지부동이다. 이들은 의사 증원뿐 아니라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의 복귀를 막고 있는 것일까.

    주간동아 기자들이 만나본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직 전공의 A 씨와 B 씨는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군 미필 사직 전공의는 일반병으로 입대할 수 없기에 최대 4년간 군의관·공보의 입영 통지를 기다려야 한다. 의대생 C 씨는 수업을 듣는 대신 동네 인근 카페에서 과외를 하고 있다. 의대생 D 씨도 학교 공부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상을 보낸다.

    학교와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이들은 단호했다. 1년 전과 지금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라며 입을 모았다. 정부가 3월 내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을 증원 전(3058명)으로 돌리겠다고 했지만, 의료계는 반발했다. 의대생 증원뿐 아니라 필수의료정책 패키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B 씨는 “2000명이라는 숫자에 가려져 사람들이 필수의료정책 패키지의 허점을 잘 모르고 있다”며 “사실 의료계는 증원뿐 아니라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전체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복귀 안 하면 대규모 제적 예상

    의대생과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는 필수의료정책 패키지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패키지에는 의대 입학 정원 확대는 물론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의료사고 특화 형사체계 개선 등 그간 의료 현장에서 지적됐던 문제에 관한 대응책들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2월 정책의 대략적인 추진 방향이 발표된 이후 세부 사항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의료계는 패키지에 포함된 정책 중 특히 급여와 비급여 진료의 병행 금지를 문제 삼고 있다. 병행 금지는 급여와 비급여 진료가 함께 이뤄지는 일부 경우에서 급여 진료도 비급여로 처리하는 정책이다. B 씨는 “수면 내시경 진료에서 내시경은 급여, 수면마취는 비급여인데, 병행 진료가 제한되면 내시경을 급여로 인정받으려고 환자가 수면마취를 하지 못하거나 수면마취에 더해 내시경까지 비급여로 처리돼 환자가 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병행 진료 금지가 “환자의 선택권과 의료인의 진료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미용·성형 목적의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불필요하게 급여 진료를 병행하는 경우’로 병행 금지를 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패키지에 포함된 ‘가치 기반 지불제’도 반대한다. 이는 과거에는 수술·시술 등 각 의료 행위마다 수가를 지불했지만, 환자 치료 결과나 질적 개선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정책이다. 의료계는 가치 기반 지불제 도입이 정당한 진료에 대한 보상을 줄인다고 비판해왔다. A 씨는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외상외과의 경우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고 환자 사망 등 소송 위험도 있는데 어떻게 가치를 책정하냐”고 말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3월 19일 “수가는 수가대로 현실화하면서 추가로 지원하는 것이 정책 방향”이라고 해명했다.

    의대생들이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백지화를 주장하며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대규모 제적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 총장 전원이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의 휴학계를 3월 21일까지 반려하기로 19일 합의했기 때문이다. 21일 경북대·고려대·연세대를 시작으로 24일 가톨릭대·전남대, 27일 서울대·부산대 등 각 의대 등록 마감일까지 등록을 마치지 않은 의대생은 제적 처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