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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여의도 샛별 | 18대 초선의원 릴레이 인터뷰 ⑤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최영희 당선자 外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최영희 당선자 外

  • 5월30일 임기가 시작되는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다는 초선의원은 137명. 그중 ‘차세대 리더’ ‘주목받는 초선’으로 꼽히는 28명을 7주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최영희 당선자“청소년 복지정책 확대 노력할 터”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최영희 당선자 外

1950년생
서울 이화여고
이화여대 사회학과
내일신문 부회장,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

최영희(58) 당선자는 ‘청소년 인권문제의 대모’로 불린다. 1995년 (사)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이하 내일여성센터)를 열어 운영한 그는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을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 3년간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청소년보호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국가청소년위원회를 만든 산파 구실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청소년위원회가 폐지됨에 따라 그 마지막도 함께한 셈이다.

이화여대 69학번인 그는 대학 2학년 때 통합민주당 이미경 의원,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과 함께 ‘새얼’이라는 지하서클을 조직, 이화여대에 학생운동의 뿌리를 심은 ‘이대 학생운동 1세대’다.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한국여성민우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1993년에는 남편인 장명국 현 내일신문 대표이사와 함께 최초의 사원주주 언론사 ‘내일신문’을 창간했다. 주로 여성 노동자 인권문제에 힘썼던 그가 본격적으로 청소년 운동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부터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권익 신장운동은 향상됐지만 소수의 엘리트 여성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었어요. 다수의 여성이 관심 갖는 분야가 무엇인지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청소년 문제였습니다.”

내일여성센터는 국내 최초로 아동·청소년 성상담센터소를 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센터를 개설할 당시 최 당선자가 회장, 성교육 운동가로 유명한 구성애 씨가 부회장을 맡았다. 이 밖에 2001년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공개를 주도했고, 2002년에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를 구성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국가청소년위원회 시절에도 청소년 사회안전망 구축에 힘쓰는 등 청소년 복지에 관심이 많다.



최 당선자는 손학규 대표의 권유로 정치 입문을 결심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시급한 아동청소년 관련 법률 하나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서 의미를 찾기로 했다”는 그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정활동 역시 사회운동의 연장선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입니다. 청소년 문제는 사회 모든 분야와 관련된 문제고요. 국회에서 제가 할 일은 각 의원들에게 청소년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정책이 지금보다 확대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통합민주당 전북 전주 완산을 장세환 당선자“사회적 약자 위한 정치에 앞장설 것”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최영희 당선자 外

1953년생
전주고
전북대 법학과
한겨레신문 기자,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장세환(55) 당선자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 출신이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멤버로 참여했을 즈음의 일이다.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언론이 자유의 빛을 보기 시작하면서 감춰졌던 과거의 진실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장 당선자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원들에게 테러를 당했던 ‘박창신 신부 테러사건’과 군산 제일고 교사들을 간첩으로 몰아넣었던 ‘오송회 용공조작사건’ 등이 바로 그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그가 국회의원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총선 때부터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전주가 낙후된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지역 발전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직접 뛰어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설명. 하지만 쉽지 않았다. 2000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그는 2004년 열린우리당 공천에서도 탈락하고 말았다. 올해는 공천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지역구 경쟁률이 11대 1로 당내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역이었던 이광철 의원이 호남 현역 30% 배제기준에 따라 탈락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공천받기 힘들었다. 결국 삼세번 만에 힘겹게 꿈을 이룬 셈이다.

2000년 총선 직후부터 1년간 맡았던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경력은 그가 당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다.

“취재 주체에서 객체 입장이 된 경험도 남달랐지만, 행정 경험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덕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에 임할 생각이다. 그가 희망하는 상임위원회는 문화관광위원회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대 취업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해법으로 전통문화와 유적지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주라는 지역 여건상 대단위 공단이나 대기업을 유치하기 어려운 만큼 파리나 로마처럼 문화관광 사업을 유일한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지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개발을 추진중인 새만금과 연계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정치적 소신과 포부를 묻는 질문에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좀더 편안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한나라당 서울 강서갑 구상찬 당선자“국민 살리고, 챙기고, 보살피고 실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최영희 당선자 外

1957년생
부산 경남고
동국대 체육교육학과
한나라당 부대변인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하는 길은 약속대로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서 예우하고 끌어안는 것이죠.”

서울 강서갑에서 신기남 의원을 꺾고 당선된 구상찬(51) 당선자에겐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친박(親朴·친박근혜)과 중국통이 그것.

그는 지난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공보특보로 일했으며, “역대 중국대사 3명이 내 친구”라고 밝힐 만큼 중국 고위직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2005년 구 당선자가 서울과 베이징을 당일치기로 오가면서 박 전 대표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면담을 성사시킨 일은 유명하다.

“한·중 친선협회장이던 이세기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할 때 사귄 중국 친구들이 지금은 고위관료가 돼 있습니다. 젊었을 때 쌓아둔 인맥이 뒤늦게 힘을 발휘하는 셈입니다.”

그는 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과정에서 탈락할 뻔했다. ‘박의 남자’로 분류되면서 어려움을 겪은 것.

“1월 박 전 대표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 대통령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대통령 측근들이 공천과 인사에서 ‘만행’을 저질렀죠.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조언을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강부자 내각’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두 달 만에 대통령 측근들이 당 지지율을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죠.”

당직자, 보좌관 등으로 28년 동안 ‘여의도’에서 일한 그는 “정치란 보석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같이 살피고, 챙기고, 보살피는 게 정치라고 여깁니다. 국회에 들어가서 보석 같은 정치를 해 보이겠습니다.”

호방한 성격 덕분에 별명이 ‘탱크’인 그의 좌우명은 ‘조금 손해 보면서 살자’다.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봐야 친구를 깊게 사귈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좌우명은 어머니가 저한테 해주신 말씀입니다. ‘너는 재주가 많으니 손해 보면서 살라’고. 그렇게 해야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고 말입니다. 물론 작은 손해는 보더라도 큰 손해는 보면 안 되겠죠. 하하.”

한나라당 비례대표 나성린 당선자“효율적 예산심의, 국가 부채 관리”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최영희 당선자 外

1953년생
부산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나성린(55) 당선자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줄곧 주장해온 재정학 전문가다. 서울대에서 철학과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최적조세 이론에 관한 논문을 썼다. 감세와 규제 개혁을 강조해왔으며 지난해 대선 때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에게 조세 및 선진화 정책에 대해 조언했다.

한나라당의 제안으로 뜻하지 않게 여의도에 입성한 나 당선자는 스스로를 “정치인이 아니라 정책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평소 연구해온 정책을 국회에서 입안해 우리나라를 선진국 반열에 올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그의 꿈이다. 나 당선자는 “여야 구별 없이 뜻있는 의원들로 구성된 의원연구단체 ‘선진화정책포럼’을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4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예비 국회의원으로서 ‘현장체험’에 열중하고 있다. 한나라당 민생대책특위 서민경제1분과위원장을 맡은 그는 경기 안성에서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했고, 재래시장으로 상인들을 직접 찾아갔다. 택시기사들과도 만나 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었다.

나 당선자는 “그동안 이론적 연구만 하다 현장을 체험해보니 서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정책 만들기가 쉽지 않겠구나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특히 “어떤 이슈든 반대하는 세력이 있을 텐데, 그런 이해상충을 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선택 기준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나 당선자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선택을 하겠다”고 밝혔다. 분배보다 경제 활성화가 서민들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사회복지비는 우리나라 경제 능력에 맞게 증가시켜야 한다”면서 “현재의 사회복지비 규모는 우리 경제 능력에 비춰볼 때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나 당선자는 전문분야를 살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속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되려면 규모, 규제정책, 예산 세 분야에서의 축소가 필요한 만큼, 재경위에서 우리 정부의 예산이나 국가 부채가 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주간동아 2008.05.27 637호 (p52~53)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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