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30일 임기가 시작된 18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초선의원은 137명. 그중 ‘차세대 리더’ ‘주목받는 초선’으로 꼽히는 28명을 7주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1962년생<br>대구 계성고<br>성균관대 행정학과<br>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
-왜 국회의원이 됐나.
“정치가 몹시 하고 싶었다.”
그는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해양수산부 등에서 일하다 7년 만에 관료생활을 접었다. 그러곤 한국의 미래 전략을 다룬 저서들을 잇따라 써냈다. ‘한국인은 위대한 한국을 원한다’(1992), ‘현경병의 전략 칼럼-국면돌파’(1997), ‘현경병의 비전21-신부국강병’(1998), ‘현경병의 비전21-밀레니엄 한국 경영전략’(1999)….
책 제목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듯, 그의 관심사는 ‘강한 한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8대 국회의원으로서 그가 가진 화두는 선진화다.
“국운을 융성시켜야 한다. 우리는 위대한 나라를 원한다.”
-정치란 뭐라고 보나.
“정치는 정책과 정권으로 나뉜다. 정권은 약육강식의 측면이 있다. 정책은 자원을 배분하고 이해를 조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쇠고기 논란 때 야당들이 정권 측면에서 대응했다고 본다. 이는 정책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입법을 통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가.
“선진화하려면 규제완화가 가장 중요하다. 국회에 규제개혁특위가 꾸려진다면 꼭 참여할 것이다.”
그는 존경하는 인물로 세종대왕을 꼽았다.
-왜 세종대왕인가.
“늦은 시각 집현전에서 잠든 신하에게 세종대왕이 이불을 덮어준 일이 있다. 그 일화가 따뜻한 왕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구전되지만,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신하들이 밤늦게까지 일하는지를 감시한 것이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리더십, 즉 일하는 리더십이다. 그래서 존경한다. 벼슬자리를 가진 사람은 모름지기 일을 잘해야 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치를 하겠다는 바람을 갖고 관료생활을 접은 지 16년 만에 국회에 입성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는 경기 과천·의왕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고, 2004년 17대 총선 때는 정봉주 전 의원에게 패했다.
통합민주당 경기 광명갑 백재현 의원“밑바닥 정치부터 차근차근 올라갈 것”
1951년생<br>검정고시<br>경기대 무역학과<br>세무사·경기도의원, 광명시장
그는 1988년 평민당 창당 때부터 동교동 청년조직 ‘연청’에서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경기도 조직을 만들었다. 또한 93년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이 386운동권 중심의 싱크탱크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 때 초대 감사로 참여해 참여정부 인사들과도 교류를 이어온 흔치 않은 이력의 정치인이다.
-정치이력이 입지전적이다.
“그렇지 않고 일관성 있게 정통 야당의 길을 걸어온 증거라 생각한다.”
-희망하는 상임위원회는 어디인가.
“세무서에서의 10년 근무를 포함해 27년째 세무 전문가로 활동했다. 국세청 개혁과 감시를 위한 재정경제위원회를 원하지만, 지방자치 실무를 오래했기 때문에 환경위원회에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한 발 한 발 전진한 ‘성취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광명시민들은 그의 장점으로 ‘소탈함’과 ‘외유내강’을 꼽는다. 시의원 4년, 도의원 3년, 시장연임 8년 등 15년간 부정비리 시비에 단 한 번도 연루되지 않은 ‘청렴함’도 내세울 만한 이력이다.
-광명의 가장 절박한 이슈는 무엇인가.
“태생적으로 광명은 부천과 안양에 끼여 있는 도시다. 경기도 변두리 지역이기에 독자적 정체성을 갖고 커나가기가 어렵다. 중요 세수가 되는 KTX 역세권 개발이나 경륜장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음악도시’ 같은 문화사업을 키워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회의원으로서의 목표는?
“시민들은 과정을 잘 아는 만큼 어떤 정치인이 잘하고 못하는지를 금방 안다. 진심으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 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손숙미 의원“후진적 영양정책 잘 요리하고 싶다”
1954년생<br>부산 경남여고<br>서울대 식품영양학과, <br>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이학박사<br>가톨릭대 교수
“각급 학교의 영양교사를 포함해 산업체, 병원, 복지시설,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영양사가 10만명이 넘는다. 대한영양사협회는 3만여 명의 영양사가 가입돼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영양 개선에 앞장설 국회의원이 뒤늦게 탄생한 셈이다.”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9년부터 가톨릭대에서 식품영양학을 가르쳤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로 일하면서 여성문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한국 영양정책의 후진성을 꼬집는다.
“보건복지가족부에 영양문제만을 다루는 ‘과’는커녕 전담 ‘사무관’조차 없다. 영양문제를 다루는 한국 시스템은 필리핀보다도 뒤떨어졌다. 웰빙 바람이 분 것에서 알 수 있듯, 국민은 먹을거리와 영양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 식탁을 풍성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게 국회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라 믿는다.”
그는 한나라당 민생대책특별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정치인으로서 첫걸음을 뗐다. 4년 뒤엔 학교로 돌아갈 계획이다.
“책 쓰고, 논문 쓰는 게 본업이다. 4년간 봉사한 뒤 더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칠 것이다. 교수 출신으로 국회에 들어간 사람을 폴리페서라며 비딱하게 보는데, 내가 만나본 교수 출신 의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분들이다. 나 역시 식품영양 분야에서만큼은 어떤 의원보다도 많은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확대와 관련해 정부의 사후 대처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과학적 시각에서만 보면 광우병은 문제 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쇠고기 수입 협상은 자존심과 관계된 사안이다. 또 사람들은 먹을거리에 민감하다. 지금 국민은 정서적으로 반응하는데, 정부는 ‘안전하다’는 식의 논리적 수사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게다가 정치권의 논의 구조 역시 정쟁으로만 흘러갔다.”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박선영 의원“여성과 생명의 존엄성 제도화 힘쓸 터”
1956년생<br>이화여대 법학과<br>서울대 법학과 박사<br>MBC 기자, 동국대 법학과 교수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3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박선영(52) 의원은 방송기자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인지 곧장 마이크를 잡았다.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정부와 청와대를 준엄하게 질책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참신하고 올곧은 이미지로 다가갔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박 의원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12년간 방송기자 생활을 하다 방향을 틀어 법학자의 길을 걸었다. 이화여대 법학석사에 이어, 서울대에서 마흔 살에 법학박사를 취득했다. 그 사이 남편을 따라 프랑스와 독일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국회 진출 직전까지 동국대 법학교수로 일하며 언론법과 법여성학을 개척한 대표적 여성 법학자다. 이제 국회의원으로 ‘입법학’ 실무까지 경험하게 됐으니 언(言)·학(學)·정(政)계를 두루 섭렵하게 되는 셈이다. 박 의원의 남편은 민일영 법원도서관장이다.
-정치권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법조계 선배인 이영애 최고위원의 권유으로 입문하게 됐다. 기사나 논문으로 현실을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국회에서 직접 부조리를 개선하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학교수로서 국회 실무를 경험해보고도 싶었다.”
-자유선진당은 낡은 보수 이미지가 강한데….
“우리나라에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잘못 정착됐다. 만일 보수라는 의미가 ‘자유와 법치 인권’을 뜻한다면 나는 당당하게 보수라고 선언할 수 있다. 따뜻한 보수의 의미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자유선진당을 택했다.”
대화는 자연스레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정책연대 이슈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20석이라는 교섭단체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다. 소수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국회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수긍할 만한 일이다. 특히 우리보다 의회역사가 깊은 독일은 극좌인 녹색당과 보수인 기민당이 연정을 펴기도 한다.”
-국회의원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우리나라에선 생명이 너무 경시되고 있다. 여성과 생명의 존엄성을 제도화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그런데 이에 동조하는 의원이 적은 것 같아 고민이다.”